누군가 만나고 싶다면
마라도는 사면이 절벽이고 한쪽이 1,250m, 다른 쪽이 500m쯤 되는 타원형의 섬이다. 백여므나믄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인구가 백이 십에서 백사 십 명이라고도 하는데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을 세어보면 예순 명이 채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태풍 예보가 있는 날이면 주민들이 미리 모슬포로 나가 버리기 때문에 때론 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열 명 미만일 때도 있다. 태풍이 오면 장사도 낚시도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 마라도에 간 건 고향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어릴 적 동네 친구인데 그 후에 ‘조직’에 있었나 보다. 교도소를 들락거린단 소리를 들었는데 어느날 내게 전화가 왔다.
인터넷이 되지 않던 마라도에 어느 통신사가 자기네 전화가 터지면 대한민국이라고 광고를 하면서 마라도에 인터넷을 설치했다. 해저 케이블 방식이 아닌 무선으로 받아서 유선으로 분배하는 방식이었다. 마라도 친구는 내게 컴퓨터를 부탁했다.
컴퓨터를 들고 난생 처음 마라도에 갔다. 그날 돌아올 생각은 애초에 없었기에 친구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다 섬도 한바퀴 돌고 낮잠도 잤다. 친구 집은 야트막한 언덕에 있고 민박을 겸하고 있었다. 가끔 낚시 손님들이 있었다. 습기는 작은 섬의 최악의 적이었다. 거실 바닥은 커다란 타일로 되어 있었고 게다가 그 미끈한 바닥 위에는 물기가 찰랑거렸다. 거실 한쪽에는 소주와 생수가 탑처럼 쌓여있었다. TV와 책상이 있는 방을 제외하고 나머지 방들은 횡 하니 창문 하나에 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문득 별달리 할 게 없는 곳이라 물끄러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면 시드니겠지’라면서.
관광객들은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운행하는 도항선으로 와서 다음 배로 나간다. 그래서 대개 한 시간동안 섬에 머무르다 간다. 친구의 집은 관광객들이 다니지 않는 마을 안 길이라 나비 잡으러 다니는 개들 이외에는 크게 움직임이 없었다. 바람은 끊이지 않아서 키 작은 섬의 꽃들이 살랑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집 앞에는 과꽃이 있었다.
마지막 도항선이 네 시 반에 떠나자 섬은 감쪽같이 무인도가 되었다. 그 수많은 관광객은 행여나 못 떠날까, 황급히 떠났고 마지막 배를 떠나보낸 짜장면 집 형님은 설거지를 제쳐두고, 한 분 밖에 안 계신 마라분교 선생님도, 마라도가 낙원이라던 경찰 지서장님도, 다 낚시 갔다. 보건소장과 간호사는 모슬포로 퇴근했다. 그 외 장사하는 사람들 중 많은 주민들도 마지막 배를 타고 떠났다. 덩그러니 바다에 떠 있는 듯 한 마라도에서 남은 주민들은 절벽 밑으로 낚시하러 내려가 버렸기에 섬에는 정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영화 세트장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제일 먼저 내게 다가온 것은 옅은 공포였다. 혼자 남겨졌다는 것. 그 후로 마라도가 좋아서 자주 갔다. 절절하게 나와 만날 수 있는 곳. 마지막 배가 떠나고 주민들이 모두 낚시를 떠난 뒤 해가 질 때까지가 마라도의 최고의 순간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오면 절정을 이룬다.
친구는 섬에서 자전거 대여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친구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이미지로만 보면 그는 참 착했다. 마라도 주민 중에 유일하게 낚시를 하지 않는 친구가 다행히 빨리 돌아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 대뜸 부엌으로 들어오는 것 같더니 “친구 왔다면서? 이거 지져 먹어.”라며 도미 한 마리를 던져주고 갔다. 펄떡이는 싱싱한 놈인데다 크기도 팔뚝만 했다. 날 것을 먹지 못하는 친구는 납작한 냄비에 김치를 깔고 도미를 손질해 올렸다. 난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리 제주라도 시내에 가면 ‘싯가’라고 쓰여있을 것 같은 도미를 김치를 놓고 지지다니.
넓은 거실에서 반찬이라곤 도미 김치 조림 하나만 놓고 사내 둘이서 저녁을 먹자니 반주가 필요할 것 같았다.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손을 뻗어 구석의 소주 탑에서 한 병을 꺼냈다. 낚시꾼들이 사다 놓고 간 거라고 했다. 혹시 소주를 없지 않을까, 모자라지는 않을까 해서 항상 넉넉히 사오고 그래서 남겨놓고 가다보니 저리 쌓였다고 했다. 생수는 제주도에서 아주 저가에 공급하는 거라고 했다. 마라도에는 그때까지는 식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와 내가 공유했던 어린 시절부터 각자가 서른이 넘기까지의 일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제 삼 장이 펼쳐지자 곧 날이 밝을 태세였다.
술 마시다 취하면 밖으로 나갔다. 달빛을 받으며 소변도 보고 담배도 피우다 밤하늘을 봤다. 눈 앞에 은하수가 펼쳐졌다.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칠성좌, ···.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별자리였는데 까맣게 잊고 살았다. 서른이 넘어 다시 본 고향 밤하늘에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고 그 빛들은 가슴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친구는 좀 일찍 일어나 나갔고 나는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그래도 아직 오전이었고, 속도 괜찮았고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쨌든 나가야 했다.
집을 나와서 친구를 찾아보는데 보이지 않았다. 아직 첫 배가 들어오지 않아 가게들은 장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어젯밤 친구에게 듣기론 자기 감방 동기가 여럿 있다고 들었다. 아예 자기가 마라도로 데리고 들어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아주 질이 나쁜 죄목을 가진 사람은 없고 거의 ‘폭력’이라고 나를 안도시켰다. ‘폭력’은 그러고 보니 감옥에서 비교적 당당해 보이는 죄일 것 같다. 가게마다 장사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지나가는 나를 묵묵히 쳐다봤다. 마치 어디선가 뭐라도 날아오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검붉은 피부에 팔뚝은 내 허벅지만 한 것 같았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 대고 친구의 소재를 묻기는 위험했다.
뱃머리라고 부르는 선착장에 갔지만 친구를 찾지 못했고 아직 배가 들어오려면 멀었다는 것 알고 돌아오는데 목이 마르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가게들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친구 집이다. 지난밤 음주의 여파는 갑자기 목을 비틀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다 횟집에 앉아있는 두 번째로 무서워 보이는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저···.”
사내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물 좀 마실 수 있수과?”
그 사내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이 웃을 수 있다는 게 때론 천국 같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였다.
그는 활짝 웃으며 삼다수 큰 병을 가지고 나왔다. 그 맛이라니. 그리고는.
“네가 그 친구구나.” 했다. 초면에 반말 들어도 괜찮았다.
“다음에 또 놀러와라. 술 한 잔 하자.”라는 말을 듣고 꾸벅 인사까지 했다.
마라도가 세 번째로 좋아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