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의 추억 2
- 이게 아닌데···
공항에 탑승교(boarding bridge)가 없던 시절에는 승객들은 자기가 탈 비행기까지 걸어가야 했다. 버스를 이용한 적도 있지만, 걸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방학이 되어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승무원의 첫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 비행기는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대한항공 ***편입니다. 출입문 닫고 출발하겠습니다.” 비행기는 계류장을 떠나 활주로를 가늠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어떤 사내가 황급히 일어나며 말했다. “어? 나 대구 가는데···”. 승무원과 승객들의 시선은 모두 그에게로 쏠렸지만, 비행기는 이미 활주로에 서 있었다. 항공사 주인 딸이면 몰라도 되돌리기는 틀렸다. 비행기는 그대로 출발했다.
공항 건물에서 나와 자기가 탑승할 비행기를 찾아가다 보면 간혹 잘 못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가장 빠른 연결편을 이용해 목적지로 보내 준다고 했다. 대구 가는 그 아저씨는 아주 잠깐 제주도 구경을 하고 다시 서울로 가서 대구행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 구조적 문제점
겨울 방학이 시작되어 제주로 가다 보면 어쩌다 신혼 여행객만 가득 찬 비행기를 탈 때도 있었다. 좌석 배치가 모든 커플이 붙어 앉을 수 없는 2-3-2 구조라 아쉽게도 통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야 하는 부부들이 생겼다. 그들은 오십 분의 비행시간에도 떨어져 있음을 아쉬워했고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통로에는 수많은 맞잡은 손들이 행여 놓칠세라 꽉 부여잡고 있었고 다른 승객들도 그렇지만, 승무원들은 음료수 서비스를 하느라 정말 곤혹스러워 했다.
제주 집 뒤편에 인기 있는 허니문 호텔이 있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그 호텔이 한눈에 들어왔다. 뭔가 호텔 발코니에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고 자세히 봤다. 머리에 꽃을 단 신부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신랑은 뭐 하고 있는지, 그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 우리와는 다른 승객
제주에 착륙하고 나니 탑승구 앞으로 기다란 빨간 카펫이 보인다. 누군가 높으신 분이 제주를 방문하는 것이다. 앞좌석으로부터 다섯 번째 좌석까지 커튼이 쳐져 있어 누군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 탔으리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는 가장 늦게 타고, 가장 먼저 내렸고, 아주 느렸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중 나온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천천히 귀빈실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하염없이 그 광경을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내려서 보니 공항의 플래카드에는 ‘내무부 장관 초도 순시’라고 쓰여 있었다.
- 수학여행 오다
수학여행을 제주로 왔다. 다른 친구들은 제주로 갔다고 하겠지만. 숙소가 집에서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침에 화장실이 붐벼서 집에 가서 씻었다. 가는 길에 동네 사람들이 방학이 끝나 올라간 줄 알았는데 왜 안 갔느냐고 물었다. 비슷한 예로 제주도 숙박권, 제주도 여행 상품권이 당첨되면 애매하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비행기 타 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몇 명 되지 않았다. 우스개로 비행기 탑승하면 신발을 벗어야 하고 자리에 가면 슬리퍼가 있으니 그걸 신으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탑승구에서 신발을 벗는 친구들이 있었다. 시키지 않아도 이착륙에 성공하면 박수를 쳤고,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 돈을 내야 하는 줄 알고 마다하는 친구도 있었다.
- 제주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놀토가 있던 몇 년 전에는 격주로 토요일이 휴일이었다. 여자 친구는 놀토가 낀 주말 금요일에 와서 일요일 가장 늦은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갔다. 가장 비싼 금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가장 비싼 일요일 마지막 비행편을 이용한 것이다. 한 번도 빠짐 없이 놀토가 있는 주말이면 그녀는 제주에 왔다.
그녀는 이제 내 아내가 돼서 제주에 산다. 이제 비싼 요금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제주에 살며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하는 삶. 아마도 그녀가 그런 꿈을, 어쩌면 많은 사람이 그런 꿈을 꾸며 제주에 오는 것 같다. 아내가 서울에 다니러 갔다 오겠다고 하면 나는 공항에 바래다주며 “꼭 돌아와!”라고 인사한다.
하지만 아내는 가끔 서울 나들이를 했다가도 금세 다시 돌아오고, 머리 하러 서울에 다녀오기도 하더니 이제는 동네 미용실의 할인권을 이용한다.
나는 서울 사는 부산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서울이나 부산을 사랑하지는 않는데 제주 남자와 사랑하게 되면 제주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간혹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게 아닌지 질투가 날 때도 있다.
- 가장 바쁜 항로
2014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발표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노선이 김포-제주 노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