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을 날아서···
밤 아홉 시 십 분 제주 공항 출발. 방콕 수완나푸미 공항 새벽 한 시 삼십 분 도착. 밤을 날아서 태국으로 간다. 그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 긴 여행에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들락거렸다. 그러다 보니 이제 태국에 다닌 지 열 번은 넘고 스무 번은 아직 되지 않은 것 같다. 제주에서 방콕으로 직항이라니. 만감이 교차하고 은혜로운 일이다. 제주에서 외국으로의 직항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방콕 정기 취항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제주에 대한 전방위적인 인기에 몸 둘 바를 모르겠으나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야간비행은 길고 집에 두고 온 고양이의 눈망울들이 창밖으로 비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비행기는 대만 남쪽 남중국해를 날아 조금 더 남쪽으로 동중국해를 지나 인도차이나 반도에 다다라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날씨는 사나워서 간혹 어두운 하늘에 번개가 치고 난기류를 만났는지 기체가 덜컹거리기도 했다. 생명을 내맡겼으니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몇몇 한국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태국 승객들인 것 같다. 창가의 내 자리로 들어가려고 이미 앉아 있던 두 태국 여자분에게 말을 건넸을 때 그분들의 태국인 특유의 친절한 몸짓으로 이 비행기가 태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옆자리의 승객들뿐 아니라 모두 잠을 자고 오로지 나만 깨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잠을 자지 못하면 새벽까지 방콕 공항에서 첫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고될 것 같은데. 음료와 식사를 판매하는 매대가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맥주를 달라고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맥주를 싣지 않아서 없어요.”였다. 행여 지나가 버릴까 “와인이라도 주세요.” 했더니 그나마 같은 대답을 들었다. 카탈로그에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지. 서비스 메뉴얼이라는게 이 항공사에도 있다면 “다른 음료수는 어떠세요?”라고 승객에게 권하라고 되어 있을 듯한데 그냥 쌩하고 지나가 버리고는 다시 오지 않았다. 목이 마르다. 내릴 때 승무원들이 좋은 비행 되셨냐고 묻는다면 나도 아무 말 없이 가버릴 작정이다.
아무튼, 누군가에 의해 어떤 사유로 이름 지어진 바다 위를 난기류 속에서 날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