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 점퍼를 입은 태국인들을 보면서···
내 방은 작지만 혼자 지내기에 그다지 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튜디오룸이라고 불리는 트인 구조이기 때문에 둘만 같이 지내도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겠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반대편 벽 전체가 커다란 창으로 되어 있는데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해서 문을 열면 바로 밖인 그런 구조를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이 창은 이중으로 된 것도 아니고 방충망도 없다. 창밖으로 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와보고 싶어한다는 도이 수텝(수텝 산)이 보이고 주변에 비슷비슷한 다른 콘도들도 여럿 보이지만, 꼭대기 층에 얇은 창 하나면 열면 바로 밖이라 좀 엉뚱하다거나 무서운 생각도 든다.
에어컨이 달려 있는데 내가 에어컨에 젬병인 이유는 선풍기도 그렇지만 직접 얼굴에 향하게 하면 금방 콜록거리고 기분 나쁜 비염에 걸린다. 에어컨은 방 전체의 온도를 낮추는 데만 쓰고 선풍기도 항상 회전시키고 써야 한다. 그런데 이 방의 에어컨은 정확히 침대를 향하고 있어서 자려고 누워서 에어컨을 틀면 춥고 끄면 삽시간에 더워진다. 이불은 무슨 오두방정인지 홑이불이 좋을 것 같은데 푹신한 솜이불이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추위에 특히 호들갑 떠는 것 같다. 태국 사람들도 더우면 뭐라도 사는 척하면서 편의점에 들어가서 땀을 식힌다. 그들이 덥다는 건 거의 영상 40도 정도의 온도를 말한다. 그런데 10도가 넘는 날씨가 춥다며 패딩 점퍼나 두꺼운 후드를 입고 돌아다닌다. 사실은 그걸 입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다른 북부의 작은 마을 치앙칸에는 부러 그들에게는 추운 날씨 덕분에 머플러도 해 보고 패딩 점퍼도 자랑하고 싶어 오는 사람들도 있다.
에어컨에 세 가지 모드를 왔다 갔다 해봐도 도무지 맘에 드는 것이 없다. 냉방은 춥고 송풍은 더 덥게 만드는 것 같고 제습 모드는 좀 약하지만 아주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 이럴 때 선풍기라도 하나 있다면 좋으련만. 문 옆에는 난방 시설(히터)이 있다. 약 올리는 것 같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큰 문제다. 에어컨 감기에 코가 막혀 방에서 혼자 골골거리는 모습은 누구에게 들키지 않더라도 창피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무엇인가에 전혀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다. 그리고 잠을 자지 못한다. 에어컨을 켜면 감기에 걸리고 끄면 땀이 송공송골 맺혀 흐르니 잠을 잘 방법이 없다. 그래서 창을 열기로 했다.
방충망이 없는 창을 열면 모기와 함께 각종 벌레가 날아들어 올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개미 한 마리 아직 들어 온 적이 없다. 밤에는 한 시간마다 1, 2도씩 떨어져서 일기 예보를 보니 새벽 네 시가 되면 최저 기온인 23도를 찍는다. 그러다 해가 뜨는 새벽 여섯 시가 되면 다시 시간당 1, 2도씩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해서 오후 서너 시쯤 최고 기온인 32도 정도가 된다. 그러면 어쨌든 밤사이 창을 열어 잘만한 온도가 될 것 같았다.
창문을 열었더니 잠들기에 아주 좋은 온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견딜만 하다. 온몸을 대자로 뻗어 피부가 맞닿는 부분이 최대한 없게 만들어서 땀이 배지 않게 했다.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산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방을 선회하고 있었다. 지갑이나 카메라 같은 것을 물고 날아가 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새벽 네 시. 속옷만 입은 채로 대자로 누워 자던 나는 어느새 웅크린 채로 두툼한 솜이불을 껴안고 있었다. 새는 없었다.
다시 눈을 뜬 건 여섯 시. 이제 덥다. 그리고 한 시간마다 1도씩 올라갈 것이고 간혹 2도씩 올라갈 것이다. 조금씩 더 더워지고 몸은 퉁퉁 부었다.
지금은 오전 10시. 사다 둔 빵으로 토스트를 만들고 가져온 커피(예가체프 만세!)를 에어로프레스로 내려 마셨다. 에어컨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