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터감성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박 May 22. 2021

당연하지 않다

1인 생활자 시대 시대에 필요한 것 (칼럼 버전)

  얼마 전 우리 팀에 새 직원이 들어왔다. 연중에는 퇴사로 사람이 빠지기는 해도 새로 오는 일은 없는 편인데, 올해는 예외다. 회사가 휴대폰 사업을 접으면서 해당 본부 직원들이 다른 조직으로 분배(?)되었고, 그중 한 명이 우리 팀에 배정되었다. 우리 팀에 꼭 오고 싶으니 자신을 좀 더 주의 깊게 봐달라고 정성스러운 이메일까지 썼던 당찬 20대다. 면담을 마친 후 자리에 돌아와 문득 생각한다. ‘내가 싱글이라고 미리 언질해 주어야 하나?’

  지금은 꽤 많이 둔해지고, 걱정 수위도 낮아진 편이다. 39살에 팀장이 된 후로 새로운 사람들과의 미팅이 잦아졌다. 부부와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 가전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에 있다 보니, 모두가 정상(?)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가정 하에 미팅이 진행된다. '우리 남편은 이래요, 우리 와이프는 아니던데, 우리 애들도 그러더라고요' 등. 그리고 오가는 대화 속에 내게도 질문이 올 차례다. '김 팀장님 애들은 어때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이러한 질문에 이마에 땀이 맺히고 얼굴이 붉어지기 일쑤였다. 저들에게 상식인 남편과 아이가 없는 내 처지(?)가 부끄러웠다. 동시에 그들의 상식 밖(?) 삶을 살고 있다는 내 대답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 이마에 맺히던 땀은 흘러내리고 붉어진 얼굴은 식을 줄을 몰랐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일이 싫었고, 모든 첫 만남에서 전에 없던 습관이 생겼다. 서로가 당황할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포석 깔기! 나는 당신들이 예상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해둘 타이밍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잠깐, 30년 후 74세에도 내겐 손주가 없다고 미리 알릴만한 틈을 찾을 지력이 남아있을까? 70대 부모님을 떠올려보건대 그건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1인 가구 특별대책 TFT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1인 가구의 5대 고통 즉 안전, 질병, 빈곤, 외로움,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의 에세이스트 캐럴라인 냅의 책 <명랑한 은둔자>의 한 대목처럼 ‘혼자라는 사실이 본질적으로 안타까운 상태인 양,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면 당연히 취하지 않을 상태인 양 가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정책을 차치하고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을 통한 가족 구성이 노후까지의 안정적인 삶을 위한  최선으로 보인다. 이는 1인 가구 당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주변에서 가장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까지 장만한 한 친구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나이에 가정을 꾸리지 않고 자식을 낳지 않은 삶이 정상 같지는 않아.’

  그러나 “정상적인” 가족의 수는 줄고, “비정상적인” 1인 가구의 수는 늘고 있다. 특히 미혼, 이혼, 졸혼, 사별, 기러기 엄마/아빠와 같이 혼자 “살지” 않아도 혼자 “생활하는” 사람의 수는 훨씬 많다. 형제/자매/친구와 동거하는 사람, 셰어하우스 거주자, 각 방 생활하는 부부나 각자의 생활시간이 천차만별인 중고등학생 가정에 이르기까지. 그러고 보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도 혼자 사는 삶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기보다  소외되고 있다. 부동산, 의료, 기업 복리후생 모두 3-4인 이상 가족 중심이다. 심지어 영업의 현장에서도 이모, 삼촌, 어머님, 아버님과 같은 가족 호칭을 사용할수록 유리하다. 삶은 변화하는데, 제도와 문화는 제자리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뉴암스테르담’이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뉴욕 공립병원 의사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한 미국판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실화 기반의 에피소드들도 흥미롭지만,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다양성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육아와 진료를 병행하는 주인공부터 결혼보다 아이가 갖고 싶어 정자은행을 수시로 검색하는 30대 흑인 여성 의사, 동양에서 입양한 네 아이를 남편과 함께 기르는 남성 정신과 의사에 이르기까지. 그 밖의 의사나 환자들의 인종과 가정 형태를 조합한 경우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등장인물들 간 모든 대화의 첫 순서는 이름 묻기와 보이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진료가 진척되거나, 관계가 깊어진 후에야 가족 관계 등을 알아간다. 이름, 존재, 그다음이 가족이다. 가족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 질문 없이 서로의 상황을 예단하기에 이들의 삶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의무가 서로에게 있을 뿐이다. 찾았다!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로 표상되는 이 다양성의 공존이 내가 기대하는 미래일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과 아이 없이도 열심히 저축해온 청약통장의 가능성을 버리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 지원받는 배우자 건강검진권을 부모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기를 원한다. 너무 아플 때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18년쯤 일했으면 2-3개월 휴직 정도는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필라테스 센터에서 "어머님"이라는 호칭보다 "회원님"이란 호칭으로 쭉 불리고 싶다.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내 아이 얘기하듯 조카 얘기하기를 그만두고 싶다. 무엇보다도 가족 관계없이도 나를 소개하고 남을 알아가는 데 문제가 없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개인 삶의 비전과 각자가 선택한 다양한 가정 형태에 대한 대화가 일상적이기를 소망한다. 정해진 나이에 예상되는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더 다양하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시대로의 변화를 기대한다.


*그림: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표지 그림, Karenoffutt <Taking it all in> (2012)


#1인가구 #1인생활자 #캐럴라인냅 #명랑한은둔자 #넷플릭스 #뉴암스테르담 #가족중심문화와제도 #당연하지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체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