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박 May 09. 2016

가장 무책임한 신들, 사피엔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나는 그간 학교에서 과학 또는 세계사 시간에 다음과 같이 배웠다.


사피엔스는 유인원 진화의 마지막 단계로서 가장 진화한 동물이다. 사피엔스 이전의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탈인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덜 진화했었다. 사피엔스는 언어를 기반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덕에 지구 상 생명체들을 지배하며 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생태계 최상위에 위치한 사피엔스의 지위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단 한 치도 없다.


그러나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을 통해 지금까지 배워온 이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진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알고 있던 원시 인류들은 순차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 함께 살았다. 즉,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사피엔스는 공존했다. 그런데 사피엔스만이 다른 원시 인류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순한 언어나 생각이 아닌, "상상할 줄 아는 능력"이었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은 오로지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보이지 않거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 즉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상상이라는 힘은 지금껏 다른 생명체들이 만들 수 없던 많은 것들을 창조해내는 결과를 낳았다.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던 인류가 계급, 권위, 전통, 신,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만들었고, 그것들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계와 무관한 존재들에 대한 믿음은, 사피엔스 자신들과 다른 생명체들의 삶을 파괴함으로써 지속되고 유지될 수 있었다.


일단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체들이 사피엔스의 상상력에 의해 희생되었다.

기존 생태계가 오랜 시간에 걸친 진화에 의해 탄탄하게 유지된 반면, 사피엔스로 뒤바뀐 생태계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상상할 줄 아는 힘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생태계의 맨 꼭대기를 향해 달려올라간 사피엔스는 그 위치에 대한 불안함을 해소하고,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더 포악하고 잔인해야 했다. 그래야만 꼭대기 아래의 생명체들이 느리지만 단단한 진화에 의해 꼭대기라는 자리를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의 자리보전을 위한 대가는 다른 생명체들의 멸종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누구보다 사피엔스 자신들이 스스로의 삶을 희생하며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상상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사피엔스는 정착 생활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경작과 재배에 의해 동일한 음식들을 반복해서 먹었으며, 노동의 효율과 성과를 높이기 위헤 분업을 반복해왔다.그러나 이러한 생활 양식은 태초 원시 인류들의 자연스러운 삶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원시 인류는 삶에 최적인 장소를 찾아 다녔고, 이동 생활의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물건들만 지니고 살았다. 체류하는 곳에서 수렵과 채집이 가능한 음식물만 섭취했으며, 이동하는 때와 장소에 따라 노동의 양과 종류도 항상 변화시키며 살았다. 이와 반대로 살아온 현재의 사피엔스는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으나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품고 살아가는 무수한 질병들의 원인은 그 무엇도 아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 방향을 향해 온 사피엔스의 삶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삶을 본따 사피엔스 스스로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발하라리는 자연에 역행하는 사피엔스의 삶은 스스로를 멸종이라는 길로 인도 중이라고 말한다. 벌써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침범당할 인류의 삶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의 멸종이 그간 지구에서 일어난, 우연한 사건들에 의한 멸종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즉, 지구 상 생명체의 멸종이란 우리의 컨트롤 범위를 벗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외부 행성과 지구의 충돌이 일어났을 때, 지구 위의 공룡이 멸종되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그는 인공지능 혹은 더 무서운 무언가에 대항하여 사피엔스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길고 두꺼운 책은 결론은 행복이다. 지금이 아닌 상상 속의 내일을 위해 위험천만한 길을 걷고 있는 현재의 사피엔스, 즉 인류에게 유발하라리는 경고한다. 미래의 행복을 꿈꾸면서 현재의 행복을 짓밟는 어리석음을 버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능력을 현재의 생명체들과 공존하는 행복을 위해 사용하라고. 이를 외면하는 무책임한 사피엔스들에게 저자는 아래와 같이 질문하여 끝을 맺는다.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 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 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p. 588)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내는 최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