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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Apr 27. 2016

인간의 욕심이 빚어내는 최후

미야베 미유키의 <괴수전>을 읽고...

인간이 욕심을 위해 만들었다가 내다 버린 것, 내다 버린 채 망각했던 그것이 깨어나 지금 분노를 펄펄 끓이고 있다. 그 괴물은 사람의 허물이다. (p. 536)


장장 657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소설 <괴수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바로 저 한 문장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북스피어라는 추리소설 전문 출판사를 알게 되었다. 출판계의 나영석이라 불릴 만큼 파격적인 출판 비즈니스를 다루고 있는 김홍민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라고 한다. 추리물이라는 장르만 다루며, 원고 교정을 독자들과 함께 하는 이벤트 등으로 팬덤을 형성 중인 이 회사가 궁금해서, 북스피어 책을 둘러보다가 <괴수전>을 만났다.


책을 시작하기 전, 이 책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 찾아보았다. 북스피어를 통해 국내에서 유명해진 미야베 미유키는 미미 여사라고 불리는 일본 추리 소설계의 대가였다. 특히 <괴수전>은 한국 영화 <괴물>에서도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추리소설은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추리물 진입을 시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안되어 완독!


대부분의 추리물이란, 매우 복잡한 사건의 원인을 똑똑한 몇몇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로서 학과목으로 치자면 수학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괴수전>은 추리물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고, 특히 동양 추리물이기에 가능한 철학적,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류자키라는 주군이 나가쓰노라는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나가쓰노 안에서는 우류라는 가신이 관할하는 고야마라는 지역도 있었다. 류자키는 전국 시대 전쟁 중에, 강한 군대에 대한 항복의 수단으로 우류 관할의 고야마 민중을 이용했다. 따라서 고야마 주민들은 자신들을 희생시키는 나가쓰노에 대한 원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마침 '세키가하라'라는 전쟁이 일어나고, 나가쓰노에 대한 설움이 컸던 우류가 서군을 지원하는 류자키의 반대편인 동군을 지원하여 승리로 이끈다. 이로 인해 우류의 고야마는 하나의 '번'으로 독립하나, 패자의 편에 섰던 류자키의 나가쓰노도 그 용맹함을 인정받아 패자임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번으로 남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나가쓰노의 지속으로 인해 나가쓰노와 이 지역을 배신한 고야마는 우리나라의 남과 북처럼 대치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우류를 비롯한 고야마 지배층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독립 전부터 주술의 힘을 이용해 나가쓰노를 쓰러뜨릴 괴수를 만들고자 애써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쳐 괴수 만들기에 실패한 이들은, 이 계획 자체를 무마하고자 주술력이 있는 가문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쫓아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야마의 행적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어마 무시한 괴수로 살아나고, 이 괴수와의 싸움 속에서 잘못된 원한과 넘치는 욕심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를 살아남는 사람들이 깨달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러한 줄거리가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할 만큼 흥미진진하게 엮여 있었다. 그러나 초반부터 흥미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에는 상당히 묵직한 메시지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인상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또는 옳아 보이는 일이라도 거기에 반대하는 자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 (p. 95)


고야마 주민들은 얼핏 보면 나가쓰노 주민들에 비해 약자인 듯하다. 그러나 약자로서 깊이 품던 원한을 풀고자 했던 그들의 계획은 자신들조차 파괴하는 괴물을 만들고야 말았다. 나가쓰노를 비롯한 세상을 지배하고자 했던 소야 단조라는 인물 또한 마찬가지다. 괴수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는 주술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더 이상 주술이 필요 없어진 시대에 고향에서 버려졌으나, 버려졌다는 설움이 그의 모든 악행을 합리화할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잊을 수 없는 짧은 사건이 있다. 시험을 망쳤고, 부모님께 혼쭐날 일이 뻔했던 나는 친한 친구와 둘이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두 발은 의자 위에 놓은 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교실을 정리하던 미화부장이 책상 위에서 내려오라고 잔소리를 했고, 나는 시험을 망쳤는데 책상 위에 않는 것이 무슨 그리 대수냐고 말대꾸를 했었다. 내가 신발을 얹은 그 의자가 더러워져, 다른 친구들이 앉기 불편해질 것이라는 사실은, 나의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내 모습은, 아무리 10살이었다고 우겨보아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주 자기합리화를 하곤 하는가? 내가 속상하고 괴롭고 슬프기 때문에 괜찮다고 자위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일이 내 문제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이들에게 아픔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하지 못하는 짧은 생각들이 모이면 위안이 아닌 위험이 될 수 있음을 괴수 소설을 통해 알게 되다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보다 더 큰 착각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도 있었다. 


성실한 일꾼의 목을 불문곡직 베어 버린다. 더구나 그런 것이 허용된다. 태평성세라는 겐로쿠 시대였기에 세상은 흥청거렸고 무사도는 체면치레에 불과한 것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더 고압적이었다. (p. 602)


모두가 이런 일을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냐. 좋다고 생각하고 벌이는 짓이야. 저주도 산속 괴물의 경우도, 소야 단조가 나가쓰노에서 추진한 양잠 진흥책이나 인간사냥도 마찬가지다. 우리 번을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 번의 영민을 위해. 소중한 가족을 위해. 이 땅에 사는 주민을 지키기 위해. (p. 656)


유발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가 '성과는 곧 선하다'는 믿음이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성과지향주의가 낳는 부작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 건강이나 시간의 손실을 비롯하여, 우울증과 자살의 증가, 비정상적 경쟁과 이기주의의 만연, 환경오염과 전쟁의 지속 등... 그리고 성과 포기주의자들의 행복 탐색, 자연으로의 회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성과 지상주의는 행복이란 개념을 성과를 위해서라면 잠시 미뤄두어도 되는 것, 성과를 내어야만 만끽할 수 있는 귀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 얼마나 미련한 이데올로기인가!


<괴수전> 속 모든 인물들은 각자가 걷고 있는 길이 좋은 길이라고 믿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 길이 과연 좋은 길인지 되짚어보지 않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원하는 것을 얻은 사람은 없었고, 파괴와 죽음만이 남게 되었다. 아카네의 최후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그녀만이 자신의 옳지 않았던 과거를 반추하고 인정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 그런 선한 바람 때문에 죄악을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소심한 내가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야 해. (p. 657)


의도가 옳다고 해서 결과까지 옳을 수는 없다. <괴수전>의 괴수가 탄생하게 된 매우 초기의 의도는 고야마 지역 주민들의 더 나은 내일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더 나은 내일이, 상대방에 대한 파괴로 가능하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모두가 파괴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현대 자본주의 역시, 다 나은 내일을 위해 끊임없이 자본을 재생산한다. 그러나 자연을 파괴하고, 상대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취하는 구조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을 보장받고자 한다면, <괴수전>과 같은 끔찍한 괴물의 탄생만 야기할 뿐, 내일 자체를 보장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구라는 행성은 다른 행성들과 달리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을 안고 있다. (물론 박테리아는 화성에도 존재한다지만...) 따라서 지구는 다량 다종의 생명들이 풍부하게 존재할 때에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또한 인간이라는 생명과 그 밖의 생명들과 공존할 때에 가장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더 많은, 더 발전한, 더 성장한 미래보다 지금이어서, 함께여서, 살아있어서 행복한 생명으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카네의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괴수와 인간의 차이는 진정한 생명의 유무로 인한 것이기에...


너에게 이름은 있니? 다른 생물과 같이 '생명'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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