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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Apr 23. 2016

인류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를 읽고...

자신감이 떨어져 고민인 사람들에게 법륜스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나 자신을 길가에 핀 들풀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생각하면 그런 고민은 사라진다."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더 잘나고 싶거나 잘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며 실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니, 애초에 나는 잘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나는 이를 이해한 후부터 하루에도 몇 번, 일주일에 수십 번씩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길가에 핀 들풀이다"라며 주문을 외곤 하는데, 좌절 방지용으로 꽤 효과가 있는 편이다.


이 책 <풀하우스>는 법륜스님께서 개인에게 한 조언을 인류 차원으로 확대한 것처럼 보인다. 인류는 우리가 우주와 생명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저자 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얘기한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인간 또한 진화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하느님이 특별히 인류와 그들을 위한 세상을 창조했다는 성경은 물론이고, 그동안 배워온 과학 또한 지금의 인류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우등한 생명체들이 진보를 거듭하여 완성된 존재라며, 인류가 생명체 중 으뜸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인류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진리 또는 적자생존이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는 명목 하에 다른 생명체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굴드의 글을 통해 깨달았다. 인류는 우연의 산물일 뿐이며, 다른 우연에 의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따라서 인류의 발전을 위해 다른 생명체들을 활용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통계에 기반한 경향성을 좋아하는 인류는 생명체가 진보를 향해 진화하여 자신들에게까지 이르렀음을 증명해 왔다. 그러나 굴드의 해석은 다르다. 지구라는 행성이 생기고, 원시생명수프라는 바다에 담긴 박테리아로부터 출발한 생명체는, 여러 가지 우연한 자연현상을 통해, 남거나 변하거나 다른 종으로 가지를 치는 우연들을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즉 잘 살아남은 생명체가 더 잘 살아남기 위해 발달하면서 인류에 이른 것이 아니라, 박테리아, 곤충, 어류부터 인간까지 각각의 생명체가 다양한 우연을 거쳐 현재의 형상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형상이 이전보다 더 진보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저 우연히 지금 이렇게 생겨있을 뿐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인지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동일하게 존엄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박테리아, 거미, 나무, 인간 모두 각자 현재의 모습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 안에서도 외모, 인종, 장애 등의 모든 형태가 우연의 산물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 현재의 모습은 어떤 경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에 의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의 기준 또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실력, 능력, 성과 등에 의해 사람을 분류하는 우리의 습성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 기준들은 절대적으로 맞는가? 실력이 좋고 나쁨이 아니라, 각자의 모습이 그저 그런 것일 뿐은 아닐까.


솔직히 근래 회사에서 마주치는 후배들에 대한 생각을 고백하고 싶다. 내가 신입이던 시절에 비해 현재의 후배들은 역량이 딸린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나의 상사 또한 본인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며 현재의 후배(나를 포함하여)들의 부족함을 아쉬워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야구계의 이슈 중 하나인 4할 타자의 부재에 대한 굴드의 해석을 읽고, 나의 생각이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지 깨달았다. 야구 환경 즉, 규칙의 변화, 다른 포지션(투수, 포수, 외야수, 내야수 등) 기술의 발전, 도구의 발달이라는 전체적 시스템의 발전은 외면한 채, 타자들의 역량이 떨어져서 4할 타율이 나오지 않는다고 비난하다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 회사의 경영 환경, 부서에 대한 대내외 요구 수준, 그간의 경험 누적으로 인한 상사들의 기대 수준 등, 업무 환경 자체가 내가 신입이던 시절에 비해 엄청 어려워졌다. 그 모든 것을 배제한 채, 후배의 실력이라는 단면만을 평가해온 나의 어리석음이란!


그간 독서클럽을 통해 네 권의 진화 관련 책들을 읽었다. 진화라는 과학에 대한 상식을 높이고 싶었던 나는 이 책들을 통해 의외의 것들을 얻었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극히 일부라는 것,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성과와 같은 인간이 만든 기준은 결코 "선(善)"이 아니며, 그와 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 등이다. 회사의 이윤을 높이는 성과가 정말 좋은 일이 맞는가? 성과를 내는 사람이 더 진보한 사람이 맞는가? 그러한 기준으로 진보한 인간은 과연 행복한가?


이 책은 지금까지 변함없는 진리라고 믿어온 적자생존의 법칙, 생존한다는 것은 더 우등하고 진보했기 때문이라는 상식을 뒤엎어 주었다. 우리의 생존은 우연의 산물일 뿐이고, 주변 다른 생명체들도 그런 우연을 통해 동일하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서 의식이라는 것을 우연히 보유한 인류는 우리만의 발전을 위해 살아가기보다 주변에 흩어져있는 다양한 존재들과 함께 유한한 생명을 잘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그 의식을 활용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상식이라 여겨온 진리에 대한 의심을 거듭해보고, 진보와 후퇴라는 이분법보다 다양한 공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간의 자만까지 학습할 인공지능에게 우리가 다른 생명체를 다뤄왔듯 그렇게 처참하게 다뤄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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