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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Apr 17. 2016

의미 있고 품격 있는 삶을 사는 법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따라서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게 무지한 나는 유시민이란 사람이 그저 정치를 하다가 은퇴 후에 다른 일을 찾아 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다만 다른 정치인들보다 똑똑한 사람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SNS를 통해서 간간이 접하던 그의 말과 글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유시민이 '작가'임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과정을 통해서였다.


작년 겨울 회사 연수원에서 부장 진급 교육을 받던 때였다. 당시 막 상무로 진급하신 실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용건은 지금 조직개편 구상 중인데, '너 팀장이란 것을 할 수 있겠느냐'였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시며 유시민을 언급하셨다. 오고 간 대화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유시민이 정치인으로 살던 시절보다 작가로 사는 지금이 더 행복해 보이지 않느냐. 모든 사람들이 감투를 쓸 필요는 없다. 너는 그 감투가 감당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 뒤에는 '내가 보기에 너는 팀장이라는 부담을 안는 것보다 일 자체를 할 때 더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숨어있는 듯했다. 이 통화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짧은 고민 후에 감당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실제로는 실장님의 예상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에 치여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은(?) 팀장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당시 실장님께서 말씀하신 유시민의 '행복한 상태'를 이 책에서 확인했다. 유시민은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여 살게 된 것이 정계를 빠져나와 글을 쓰면서부터라고 했다. (실제 방송에서 보는 현재의 그는 상당히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출판사의 제의로 시작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그 특유의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들로 대답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한 단락을 읽으면 다음 단락이 궁금할 정도로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저 의미 있고 품격 있는 삶을 살아내겠다는 한 중년 남성의 글이 어쩌면 이리도 흥미진진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 자체가 우리나라의 정치, 역사, 미디어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고, 지혜로운 부모 밑에서 자란 행운과 자의 반 타의 반의 노력에 기인한 뛰어난 글쓰기 솜씨 때문이 아니었을까.


단 며칠 만에 읽어버린 그의 책을 내려놓으니, 머리 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들과 구절들이 있다. 의미 있고 존엄하며 품격 있는 인생, 칸트의 보편성과 목적성, 진보와 보수의 차이, 일/놀이/사랑/연대, 유쾌한 죽음. 그의 책은 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꽉 채워진 듯하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포인트는 그의 어떠한 생각도 절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꽤 험난한 정치 역사 인생을 살아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성향에 대해서도 편향되지 않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치적 진보를 지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하지만, 보수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선택, 즉 생명과 종족 유지를 위해 강하고 유전적으로 가까운 편을 선호하는 자연선택의 원리에 기반하는 것이 보수,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선택, 즉 생명과 종족 유지에 유리하지 않지만 약하고 유전적으로 먼 편에 대한 선택에 기반하는 것이 진보일 뿐이며, 자신에게 더 의미 있는 인생은 진보를 지지하는 것일 뿐이라고 피력하기만 한다. 나는 이렇게 덤덤하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는 그의 필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평형을 유지하며' 그는 어떻게 살면 좋을지에 대해 여러 가지 혜안을 보여주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어차피 끝날 인생이기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기왕이면 품격 있게 살다가 마무리하면 어떻겠냐고 유시민은 제안한다. 그는 칸트의 인생관에 매우 동의하는 듯하다. 칸트는 모든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나, 그 방식은 보편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극단적인 사례로 사람을 해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기에 옳은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편적인 삶일지라도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전제조건도 칸트 이론에서 필수라고 한다. 사람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리더가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진리인 것을 보라. 


결국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충실히 살면 된다. 그러나 유시민은 그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좋아하는 일과 놀이, 뜨거운 사랑과 연대를 동반할 것을 제안한다. 이 네 가지는 삶을 더 윤택하고 품격 있게 만들지만 죽음까지도 존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유시민이 기대하는 그의 죽음 전후의 모습은 이 네 가지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가 사는 동안 좋아하는 읽기와 쓰기를 실컷 해낸 후에 사랑하는 가족과 생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아름답게 이별하는 모습에 대해 상상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특히 죽음 후에 남을 신체와 물리적 흔적마저도 더 의미 있게 쓰이도록 준비하고픈 그의 소망은 내 마음을 더 크게 울렸다. 나는 작년 이맘때 감이당 고미숙 선생님의 강의에서 연암 박지원이 친구들을 통해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친구들과 함께 삶을 즐겼으며, 친구들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 지혜로운 사람임을 이미 배워 알고 있었다. 유시민 또한 연암 박지원의 사례를 언급하였고, 본인 또한 그와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그 어떤 묵직한 죽음에 대한 글보다 나를 가장 숙연하게 만든 대목이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한다. 읽는 내내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꾸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아직 사랑하고 연대하는 방법을 더 찾아야 할 듯 하지만, 내가 즐기고 싶은 일과 놀이는 찾은 듯하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읽기와 쓰기를 즐기기 시작했고, 몇 달 전부터 이를 놀이처럼 즐기고 있으나, 평생의 일로 삼을 수 있는 방법까지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싫지는 않지만 평생 동안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사랑과 연대에 대한 솔루션도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려 한다.


삶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해 준 점에서 이 책을 쓴 유시민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후에도 그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간결하고 덤덤하지만 꾹꾹 눌러쓴 듯 힘 있는 그의 필조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기왕 살게 된 삶.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기 싫다. 지금이 아닌 나중에 대해 걱정이나 상상만 하며 살기는 싫다. 현재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내고 누리며 살고 싶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낀 삶에 대한 의욕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더 의미 있고 품격 있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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