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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Sep 26. 2016

정리라는 마법의 힘

곤도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읽고...

나이를 먹고도 지금 사는 집과 직장이 멀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립의 구실이 없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부모님과 투닥거리다가 장가간 지 한참이 된 남동생의 권유로 독립이란 걸 했었다. 직장에서 너무 먼 위치에 집을 구한 데다가, 마침 집주인이 집값을 올려달란다는 핑계로 고작 1년에 그친 독립이었지만,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집을 꾸미고 살았더랬다. 그리 넓지 않은 오피스텔이었기에, 모든 옷과 책들을 챙기지는 못하고, 자주 입는 옷 몇 벌에 얇고 단순한 책 몇 권들만을 가지고 1년을 살았다.


하릴없이 시간이 남던 어느 날, 본가에서 챙겨 온 몇 권의 책들을 바라보다 유독 눈에 띄는 제목을 발견했다.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 언젠가 구입했던 기억은 나는데,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러나 무심코 읽기 시작한 이 작은 책은 나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정리와 버리기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빡빡하게 정신없는 생활 속에서 자신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 일레인 제임스라는 저자가 남편과 한께 "단순한 삶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쌓아온 노하우 100가지를 정리한 책이었다. 생활 속에서 이용하지 않는 물건, 입지 않는 옷, 피부에 도움되지 않는 화장품, 의미 없는 인맥, 유난한 빨래나 청소, 지나치게 많은 음식 등을 버리거나 줄이는 방법에 대해 쉽고 간결하게 정리한 이 책을, 나는 수도 없이 읽었다. 때마침 나만의 공간까지 생겼으니, 수시로 집 안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단순한 생활을 하기 위해 꽤 노력했다.


그때 마침 해외출장을 함께 했던 후배가, 청소에 약한 자신에게 친오빠가 추천한 책 한 권에 대한 얘기를 했다. 정리하는 법에 대한 책이긴 한데, 조금 독특하다고 했다. 옷이나 다른 물건들을 만져보며 설레는지 아닌지를 따져서 물건을 버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삶에 심취해 있던 나에게는 무척 솔깃한 이야기였다.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이 바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다.


지금까지 이 책을 열 번쯤은 읽었지 싶다. 그만큼 쉽게 잘 읽히고, 재미있다. 이 책이 단순한 정리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버릴 물건과 남길 물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물건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필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일종의 자기계발서이다. 이 책의 저자 곤도마리에가 "KONMARI"라는 영어 이름으로 구글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까지 강의 초청을 받는 것만 보아도 이 책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왜 정리가 필요한가로 시작해서 정리하는 순서 및 기술, 정리의 효과를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 곤도마리에는 그 3가지에 대한 통합 컨설팅을 하는 정리 컨설턴트라는 재미있는 직업을 가진 일본의 젊은 여성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정리하는 순서와 기술이 이 책의 핵심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따라 해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챕터에서 소개되는, 정리의 효과로 인생을 바꾼 사람들과 같은 드라마틱한 변화가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조언대로 정리한 후에는 절대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확신과 달리 바쁘고 정신없고,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때면, 책상 위가 어질러지거나, 옷장 속이 너저분해지곤 했다.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채로 마음이 심란할 때면 이 책을 찾아 읽곤 했고, 근래에도 알 수 없는 심난함 때문에 이 책을 주말 새 다 읽어버렸다. (많이 읽긴 했는지, 마지막 챕터가 너덜거리다가 떨어져 버리까지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이 책에서 중요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첫째, 정리를 통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남기는 능력을 기르라는 것이다.

정리 과정에서 물건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설레는지, 어떤지 자문자답해 남길지 버릴지를 판단하는 것을 수백, 수천 번 반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판단력이 키워지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다. 내가 그랬다. 그랬던 나를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정리'다. (p. 222)

이 책에서는 물건을 남길지 버릴지 결정하기 위해서, 수납된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꺼내놓고 하나씩 만져보며, 내 마음이 설레는지 아닌지 판단해 보라고 한다. 그간 내가 읽은 일레인 제임스의 책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리 관련 책에서 제안하는 '시간 기준의 버리기' 즉, "1년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무조건 버리라" 등의 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쉽지도 않을뿐더러 혼자 해보기에도 매우 쑥스러운 이 방법은, 물건이라는 꽤 쉬운 대상에 대한 반복을 통해, 궁극적으로 삶의 모든 순간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길러진다는 곤도마리에의 산 경험의 결과였다.

따라서 사소한 물건에 대해서도 내 마음이 설레는지 아닌지를 진지하게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삶이 변화되는 기적까지 일어나고, 나와 같이 그저 깨끗한 공간을 만들고자 빨리 버릴 것을 골라내려는 사람에게는 일시적인 깔끔한 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연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미숙한 정리의 결과, 일정 시간이 흐르면 판단받지 못한 물건들로 깔끔하던 공간마저 다시 어질러지는 것이었다.

 

둘째, 정리를 통해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다.

내 눈앞에 있는 물건은 과거에 자신이 선택한 결과물이다. 위험한 것은 그것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거나,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듯이 난폭하게 버리는 행위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무의미하게 쌓아두거나, 일단 아무 생각 말고 버린다'는 생각에도 반대다. 물건 하나하나와 마주하면서 느낀 감정을 경험해야만 비로소 물건과의 관계가 정리될 수 있다. 지금 갖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지금 마주한다', '언젠가 마주한다', '죽을 때까지 마주하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여러분이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지금 마주하는 것'이다. (p. 229)

사소한 물건에서부터 직업에 이르기까지 생의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나의 선택에 의한 결과 중 하나인 물건 하나를 남길지 버릴지 결정하지 못한다면, 이는 책임 회피나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유용하게 사용할 것인지, 당시 잘못 선택한 결과이므로 버릴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는 사용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금은 피하고 싶어'와 같은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만 가지고, 내가 원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살기 위해서는 모든 판단과 결정을 미루어선 안된다. 나도 곤도마리에 정리법의 원리에 따라 회사 이메일을 정리한 후에 전 같으면 나중에 읽겠다고 미루곤 했던 이메일들이 쌓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체험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에 이메일 정리기술에 대한 내용이 따로 있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통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다.

정리를 하는 진짜 목적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레지 않는 물건이나 불필요한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설레는 물건, 필요한 물건만 갖고 있는 상태가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그렇게 정리를 함으로써 사람은 안정적인 자연체로 살 수 있다.  설레는 물건을 선별해 지금 자신에게 진짜 소중한 것을 소중히 다루며 살자.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이것을 '개운'이라고 한다면 개운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리라고 확신한다. (p. 245-246)

여행이나 출장 시 숙소에서의 생활이 집에서보다 좋다고 느낀 적이 많다. 특히 고급 호텔 등에 묵을 때면, 이 단출하면서 세련된 느낌을 내 방에서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 이유는 그 공간에 꼭 필요한 물건들만 깔끔하고 깨끗하게 비치되어 있는 데다가, 나 또한 여행이나 출장 기간 동안 필요한 개인 물품들만 그 공간에 두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 방과 같이 일상적인 생활공간에는 필요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물건이나 물품들이 많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무언가 개운치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고급 호텔과 같이 바꿔보면 어떨까? 고급 물품들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고 꼭 필요한 물품들로만 가득한 공간...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정리란 그저 단순한 성격이나 습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정리란 내가 원하는 것들을 골라서 내 인생을 채워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알게 되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정리를 좋아하고 즐기게 되었다. 생활이 지난하고 어수선하다고 느낄 때, 사소한 것에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심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고 따라 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책 속 사례의 주인공들과 같은 엄청난 변화가 없더라도 나와 같이 정리나 청소가 좋아진다거나, 이메일 확인의 효율이 높아지는 등의 사소한 변화는 반드시 따른다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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