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박 Jan 01. 2018

이야기로 이루어진 삶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읽고...

어느덧 2018년 1월 1일이 되었다... 이전에는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다음 해에는 반드시 좋은 일들만 일어나기를 빌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일들만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인생임을 알아버린 지금, 사실 섣달그믐이나 정월 초하루는 그저 살아가는 여러 날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인가 2~3년 전부터는 그전까지 그토록 정성 들이던 SNS 상의 연말 인사, 새해 인사도 하지 않고... 너무 연락이 뜸한 지인들의 안부를 묻는 정도에 그치곤 한다. 


그렇게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연말연시에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생애 처음 단편소설집을 완독 했다. 단편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선호하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을 구매하고도 이 소설이 단편소설집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책 표지 어디에도 '소설집'이라거나 '단편소설'이라는 표현이 없었으니까. <쇼코의 미소>를 다 읽고, [씬짜오, 씬짜오] 편으로 넘어갔을 때조차도 나는 이 부분이 쇼코의 미소 중 2장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내용 연결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바쁜 일상 중에 읽기를 멈추다가,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쇼코의 미소>가 최은영 작가의 등단 단편집임을 알았다. 아직 채 읽지도 않은 소설집에 대한 이야기를 귀로 듣는 즐거움이 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고 싱그러운 최은영 작가의 목소리와 소설을 써나 간 순수한 마음이 궁금해서 다시 책을 들었다.


이 책은 총 7가지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두 여성의 이야기 [쇼코의 미소], 독일에서 만난 한국과 베트남 두 가정의 이야기 [씬짜오, 씬짜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의 어느 여성과 그녀의 팔촌 뻘 되는 언니의 이야기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만난 한국 여대생과 케냐 대학생의 이야기 [한지와 영주], 민주화 운동이 시들해진 노래패 동아리에서 만난 두 여대생의 이야기 [먼 곳에서 온 노래]. 세월호 사건 이후 프란체스코 교황의 미사에 참례하러 상경한 어머니와 그 딸의 이야기 [미카엘라], 교사가 꿈이던 손녀와 그 외할머니의 이야기 [비밀].


나는 가끔, 나의 삶이 크고 화려해질 수 없음을 알고도, 내 안에 그렇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살아가는 유명인들의 삶을 마냥 부러워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평범한 내 삶을 초라하게 바라볼 때도 있다. 그러나 최은영의 소설을 읽으며 평범한 삶들의 당위성을 깨닫고, 평범한 삶에 대한 위안을 조금 얻었다. 


수많은 작가와 평론가들의 평처럼, 이 모든 이야기들은 참으로 담백하고 순수하게 흘러간다. 마냥 좋기만 한 삶은 절대 없고, 마냥 건강하기만 한 정서도 없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우울함, 아픔, 슬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상 속에서 교과서처럼 언급되곤 하는 "감사의 삶"조차도 최은영의 이야기 속에서는 삶이 너무 부정적이라 읊조리게 되는 주문으로 묘사된다. 


엄마의 감사 타령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엄마의 초라한 현실을 봤다. 언제든 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일에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언제든 양껏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돼지 고기 가격이 내렸다고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돈이 있다면, 부유한 부모나 남편이 있다면 통증을 견뎌가며 매일 열 시간씩 서서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그녀는 차라리 엄마가 스스로의 처지에 솔직해져서 불평하기를 바랐다. 초라한 현실에 대한 엄마의 감사가 얼마간은 기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p217) 
-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중 [미카엘라] 편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기를, 문학을 읽는 것은 언어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라고 했던가... 이 책을 읽으며 미묘한 표정의 변화, 아파서 먹는 약의 종류, 기억도 나지 않는 가방, 펼쳐지지 않는 우산이나 한글 공부를 위한 책받침 하나조차도 이야기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신비로움을 느꼈다. 그저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간순간들이 작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소재일 수 있겠구나... 주변에 널린 사람이나 물건이 그러할진대, 그 많은 사람들이 살며 겪는 일들과 감정들은 또한 얼마나 중요한 소재일까... 그렇게 좋지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낡고 초라하기만 한, 물건들, 사람들, 감정들의 역사가 없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을까... <쇼코의 미소>를 읽는 내내 사람이 산다는 건 수많은 이야기들을 쌓아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캘리그래피가 취미인, 그러나 지난해에 대한 고별과 새해맞이에 시큰둥해진 나조차도 2017년의 고민, 아픔, 슬픔과는 작별하는 연말을 맞기를 바라는 글씨를 썼었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성 없이 유명하고, 화려하고, 긍정적이고, 아름답고, 감사하기만 한 삶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전지전능하고 창조적인 신이 만든 세상이 그렇게 단조로울 리는 없다. 


우울이 나를 죽이고, 남을 죽이는 심각한 병인 시대에... 우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핑크빛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쓴 최은영 작가의 달란트가 신비롭다. 내 의도와 무관하게 주어진 가족, 어쩌다 마주친 인연들, 피할 수 없었던 사회적 움직임 속에서 고작 몇 명의 인물을 집어내어 이야기로 풀었을 뿐인 이 이야기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각자의 삶 속에서 뉴스를 보며, 혹은 가까이의 누군가를 보며, '그럴 수도 있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겠지, 오죽했으면...'이라고 공감하는 경험이 몇 번이나 있을까. '어떻게 저럴 수가, 이해가 안 돼, 상상도 못 할 일이야...'라는 감탄이 훨씬 많지는 않을까. 그래서인가 나도 사실 누군가에게 정말 나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다거나, 누구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과연 이런 나에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존재할까라는 두려운 마음에. 최은영 작가도 이런 안타까움에 무작정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일곱 가지에 이른 것은 아닐지...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p. 293)
-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중 [작가의 말]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르네상스라는 문명의 몸부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