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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Feb 12. 2017

그 사람, 돈은 어떻게 벌죠...?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고...

한 때 '시크릿'이라는 책이 유행했습니다. 지금의 대통령이 유행시킨(?)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간절하게 바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사실 시크릿의 저자 '론다 번'이 먼저 했습니다. 론다 번은 작가, 과학자, 저널리스트 외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낸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원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간절하게, 특히 이미지화해서 생각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방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낸 사람들은 이 방법을 '비밀', 즉 '시크릿'으로 유지해 왔다고 합니다. 저도 한창 결혼이 하고 싶던 30대 초반의 나이에, 원하는 배우자상을 지속적으로, 간절하게, 이미지화하는 그들만의 '시크릿'을 실천해보려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요? 여전히 저는 싱글이네요.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론다 번이 설파한 '시크릿'은 왜 말 그대로 비밀로 유지되었을까요? 그 이유는'시크릿'을 통해 원하는 것, 특히 부를 누리게 된 일부 사람들의 철저한 비밀유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려면 다른 사람, 즉 일꾼들이 시크릿을 몰라야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해서 아무 생각 없이 노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당시에는 꿈과 희망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참 이기적인 부유층의 실체를 보여주는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상에 자원은 많다. 그것을 상위 2%의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 당신들도 가져야 한다. 노력해서 부자가 되어라."라는 책의 주장이 허무하게도 들리고요. 무엇보다도 자본이 최고라는 자본주의 옹호 서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저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책을 만납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은 몇 년 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소박한 일러스트가 담긴 표지에, 빵집과 자본론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의 제목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은 제가 평생 소장하고 싶은,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미 서너 번은 읽었습니다.


학자인 아버지에 비하면 꽤 문제아였던 이타루는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합니다. 농업에 관심이 많아서 농대에 진학하고, 농업 관련 도매회사에 취직도 하죠. 그러나 회사라는 조직의 부정과 농부에 대한 무배려에 염증을 느껴 그만두고 맙니다. 당시 사내연애 중이던 아내 마리 역시 퇴사를 해요. 깨끗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꿈이 일치하는 결혼에도 골인하죠. 그리고 긴 고민 끝에 그들은 제빵으로 생계를 꾸리기로 결심합니다. 농업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먹거리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결론이었습니다.


빵집을 운영하기로 결심했지만 정작 빵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이타루는 여러 빵집을 전전하며 빵을 만드는 법에 대해 배웁니다. 이 과정에서 이타루는 단순히 제빵 기술만을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빵집 사장의 마인드, 종업원의 노동시간, 재료 특히 천연 효모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습니다. 그때 곁에서 그의 고민을 느낀 아버지의 조언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빵집 주인이 자본론을 공부한다... 여기에서부터 이타루라는 사람이 심상치 않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도 이타루의 쉬운 해설 덕에 자본론의 골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자본주의라는 구조는 자본가 즉, 경영자가 노동자를 학대하게 되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이타루가 이해한 자본론을 기반으로 그 이유를 살펴볼까요? 자본론을 이해하기에 앞서 자본주의의 핵심인 상품과 그 교환의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상품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겠죠?

첫째, 상품이란 누군가가 원하고 필요로 한다는 가치 즉, 사용가치가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합니다.

둘째, 상품은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공기는 사용가치가 있지만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상품이 아닙니다. 빵과 같은 제품이나 이발과 같은 서비스는 누군가에게 필요한데, 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상품이고요.

셋째, 내가 먹으려고 만든 빵이나 스스로 미용을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은 상품이 아닙니다. 상품이란 자고로 교환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먹거나 머리를 자르는 것은 교환을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자고로 모든 상품은 교환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환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요? 우리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평균적인 수준의 노동으로 얼마의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지는가가 교환가치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이를 테면, 평균적인 수준의 노동으로 빵 50개를 만드는 시간과 옷 1벌을 만드는 시간이 같다면 두 개의 제품은 교환해도 괜찮은 것이죠.

이렇게 사용가치, 노동력, 교환가치를 지닌 제품이나 서비스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라고 합니다.


노동력도 하나의 상품입니다. 자본가가 필요로 하고(사용가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며(노동력), 자본가의 임금과 교환이 되는 대상(교환가치)이기 때문이죠. 다만 다른 상품들과 다른 점은 교환할 사람 즉, 노동력을 사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력은 자본가(경영자)만이 삽니다. 일반인들이 노동력을 사는 일은 드물죠. 그렇다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교환가치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노동력이란 자본가를 대신해서 다른 상품을 만들어주는 상품입니다.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자본가는 노동자가 매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임금을 줍니다. 의식주, 노동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의 습득, 가족의 생계 등을 유지하기 위한 돈을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비가 비싼 지역 또는 나라일수록, 근속연수가 길어서 의식주와 가족의 생계를 위한 비용이 오래 들수록, 지식과 기술습득비가 많이 드는 전문직일수록 임금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임금을 주고도 더 많은 상품을 만들어야 이득이므로, 대부분의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합니다. 자본가가 마음대로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산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산 제품을 하루에 1시간을 쓰든 24시간을 쓰든 내 마음이니까요. 매우 불공평해 보이지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해 노동자 "스스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팔았고,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공장이나 사무실과 같은 "생산수단" 없이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타루는 이러한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이용당하는 노동자의 숙명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유는 유지"하고, "생산수단을 보유"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타루는 빵집에 취직하기보다 빵을 직접 만들어서 팔기로 결심하죠.


빵을 만든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먹거리 또한 자본주의 구조에 적합하도록 변해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천연 효모라고 알고 있는 이스트도 사실 발효를 위한 균 중에서 평균적인 성공률을 보이는 균들을 인공적으로 모아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빵이라는 상품이 효율적으로 많이 만들어져서 돈을 벌 확률을 높여주니까요. 이타루는 자본 증식을 위한 제빵이 아닌, 나와 가족과 이웃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양식으로서의 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눈물겹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고 자란 후 죽음과 부패를 통해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순환하는 법이죠. 그러나 돈은 다릅니다. 만들어진 후에도 계속 찍어낼 수 있고, 실체가 없는 계좌 속에는 숫자로 남아있기도 하죠. 돈이란 절대로 부패하지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런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먹거리일지라도 썩어서는 안됩니다. 만들기 쉬운 재료로 많이 만들어지고 매장에서 오래 견딜 수 있어야 많이 팔려서 돈을 벌어주기 때문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먹거리를 먹는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이타루는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구조에서 벗어나 부패하는 경제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장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을 골라 가게 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발효, 순환, 이윤 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라는 원칙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발효는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음식에 활용되는 원리입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빵과 와인이 신의 몸과 신의 피로 여겨지고, 동양에서도 다양한 곡주들이 조상을 위한 제사에 사용되는 음식으로 신성시됩니다. 누룩균이 전분을 당으로, 유산균이 당을 유산으로,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는 과정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건강한 재료 속에서만 진행된다. 건강하지 않은 재료는 똑같은 균의 작용으로 부패하고 맙니다. 한 마디로 균은 우리가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을 구분해 줍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이러한 균의 필터링을 막습니다. 이윤을 남기기 위한 인위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을 통해서 말입니다. 방부제가 그 예이죠.


그래서 이타루는 올바른 재료, 가능하면 그 지역에 있는 재료로 진정한 천연 발효 과정으로 만들어진 빵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빵은 조금 비싸더라도 정당한 가격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윤을 남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 많이 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3일은 쉬고, 1년에 1개월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충분하고 알찬 휴식을 즐기며 더 좋은 빵을 만들고, 더 좋은 빵을 만드는 사람들을 키우기로 했습니다. 이타루의 이름 중 "타루"와 아내의 이름 "마리"를 합쳐서 만든 다루마리(Talmary)라는 빵집은 그렇게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제가 빵집 다루마리의 운영에 대해 얘기하면 듣는 사람들이 꼭 묻습니다.

"그럼 그 빵집은 돈을 어떻게 벌어요?"

우리의 머리 속에 모든 일의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은 듯합니다. 지금까지 이윤을 남기지 않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만들어진 빵집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덧 돈 없이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본주의의 최면에 걸려 있습니다. 생명을 갖고 태어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양생, 즉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좋은 양식을 먹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번다는 말과 같은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요?


자본주의의 한계를 모두가 느끼고 있는 시대입니다. 예전과 달리 귀농이나 귀촌 인구가 늘어나고, 기성세대가 일궈낸 자본주의 시스템을 탈피하려는 노력이 트렌디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뀔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서부터 돈이나 이윤이 아닌 양생, 즉 좋은 삶을 위한 노력을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도하다 보면, 우리 모두 돈이 있어야 잘 살 수 있다는 최면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당장 우리가 이타루와 같은 사업을 시작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겉모습이 좋은 것, 크고 멋진 회사에서 만든 것,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소비습관부터 바꾸면 어떨까요? 이타루도 이 책을 통해 간절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비습관의 시작이 우리의 생활을 바꿀 수 있는 시발점일 수 있다고요. 당장 내일부터 좋은 삶을 위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지불하는 습관을 길러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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