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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Aug 07. 2017

로봇과 함께 하는 오래된 미래

책 <로봇의 부상>을 읽고, 다큐영화 <상냥한 앨리스>를 본 후...

*표지사진: http://www.eidf.co.kr 상냥한 앨리스 중


<로봇의 부상>을 읽고, <상냥한 앨리스>를 본 후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보았다. 그러나 오래된 미래를 본 듯한 느낌이다. 로봇이 부상했을 시기에 현재의 우리들이 고령화 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일까? 그래서 내 젊은 생에는 겪지 않을 일이란 생각 때문일까? 혹은 로봇이 줄 수 있는 혜택의 큰 수혜자가 노인들이기 때문일까?


로봇이 우리의 삶에 침투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전자업계에서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난리다. 실제로 아마존 에코와 같은 식의 작은(?) 로봇들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기업의 큰 수익원이자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다른 한 편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도시를 떠나 사는 아날로그 삶을 시작한다. 트렌드를 이끄는 최고의 연예인이 소유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고 한다. AI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의 머리를 쓰는 공부가 필요없을 것 같은데, 지식인들의 인기가 어느 연예인 못지 않다. <로봇의 부상>에서 이르기를, 로봇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냥한 앨리스> 속 과학자들은 로봇이 외로운 노인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한다.


<로봇의 부상>에서 마틴포드는 로봇의 부상으로 각 산업에서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지를 조목조목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본적인 삶의 유지를 위한 소득과 소비의 보장인 듯 하다. <상냥한 앨리스>에서 산더르 쉬르허르는 로봇이 소외된 노인들을 돌볼 수 있는지 테스트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결국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로봇이라는 매개를 통해 젊은 사람들이 노인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이 아닐는지.


로봇이 범람하는 세상은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사회정치적 이슈나 인간적인 감성이 사라질까봐 두렵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어 버린 지금의 세상에도 사람 냄새는 여전하다. 불과 10여년 전에 걱정하던 인간 소외 현상은, 과거의 그 걱정을 겸연쩍게 할만큼 드러나지 않고 있다. 기술이란 그야말로 기술일 뿐이다. 기술 그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다만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의 중심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마틴 포드와 산더르 쉬르허르는 우리 인간들이 자본보다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생애 첫 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기술이 발달할지라도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 추구를 해치지 않으려는 노력과 시스템 구축이 그 어느 로봇보다 공고해야 하지 않을까?


#트레바리 #북큐멘터리 #마틴포드 #로봇의부상 #산더르쉬르허르 #상냥한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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