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억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박 Aug 07. 2017

단순한 삶은 가까이에서...

<효리네 민박>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또 병이 도졌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일주일 동안 하계휴가를 보낸 후유증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 구체적인 목표도 계획도 없는 전원생활을 꿈꾸며, 기껏 하는 일이라고는 스마트폰 검색창에서 "주택"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검색의 결과는 뻔했다. 각종 부동산 관련 기사와 정보들... 그리고 몇 분간 머리 속이 어수선했다. 전원 느낌의 주택을 구하기가 어렵다면, 전원 느낌을 주는 남자를 구해야 하나? 남자는 어디에서 만나지? 어느 카페에 또 가입해야 하나? 10년간 반복하는 단순 사고와 행동... 또 시작이다. 그리고 연이어 금방 떠오르는 뻔한 결론. 집이든 남자든 자리에 앉아 손가락만 움직여 키보드를 두르려 봤자 답은 없다. 하느님은 나의 허망한 바람에 즉답을 주실 만큼 어리석지도 한가하시지도 않은 분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어수선한 내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한 삶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다. 나는 특히 일레인 제임스의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머리와 마음이 어수선할 때 읽기 딱 알맞은 길이와 두께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매우 강하다. 집이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음식이든, 일이든, 쇼핑이든 모든 것을 단순화하라. 일레인 제임스와 곤도 마리에의 책을 수차례 읽은 덕에 기본적인 내 삶은 단순해졌지만, 때때로 밀려드는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과 감정과 관계는 아직도 어렵다. 특히 별 뾰족한 수도 없이 때때로 밀려드는 전원생활에 대한 망상을 단순화 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던 중 문득 아파트 주차장에서 우리 집이 있는 105동 건물까지 걸어가는 짧은 시간의 공기가 퍽 시원하게 느껴졌다. 저녁 6시 30분이 넘은 이 시간의 여름 공기가 이렇게 쾌적했던가? 그리고 빠르게 둘러본 아파트 마당의 전경.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보도블록 위 빈 벤치, 한가롭게 산책하는 주민들... 이 시간에 나와 저 벤치에 앉아본 적이 있던가? 주말 내내 드라마 정주행을 마친 후 멍멍했던 느낌이 떠오르며, 단 30분이라도 TV가 없는 밖에 나와 앉아 있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으로 간단하게 볶음밥을 먹고 나서 책 한 권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웬델 베리의 <소농, 문명의 뿌리>라는 책이다. 북클럽에서 이야기 나누기로 한 8월의 책인데, 사두기만 하고 단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아파트 건물 밖 공간도 꽤 다양하다. 좁은 산책로 속 벤치도 있고, 놀이터 앞 운동기구 옆 벤치도 있다. 그나마 차도와 인접한 산책로보다 차 소리가 덜 들릴 것 같은 아파트 중앙에 위치한 놀이터 앞 운동기구 옆 벤치가 나아 보였다. 그곳에서 펼쳐 읽기 시작한 책의 본문 첫 페이지...


획득 자체에 그토록 마음 쓰는 자는
이미 획득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 몽테뉴, [수상록] 3권 6장


나는 진짜 단순한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을 갖기 위한 삶이 내 생활을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가? 단순한 삶이 아닌, 전원생활을 "획득"하려는 내 생활은 단순하기보다 복잡하지 않은가? 검색창을 뒤지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현재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또한 내 생각에 따르는 삶이 아닌, 남들의 생각에 맞추고,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의식한 말과 행동이 나를 얼마나 나답지 않게 만드는가? 나답지 않은 내 삶은 남들의 침범(?)으로 인해 얼마나 어수선하게 되었는가?


단순한 삶은 이효리가 사는 제주도 소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내 앞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삶이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해야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그만하자. 생각만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 낭비는 그만하자. 지금 당장 단순하고 행복한 삶을 다시 시작하자. 아파트 건물을 벗어나 나무 아래 벤치에서 책 몇 페이지를 읽는 것, 어둑해져 책을 읽기 힘들어질 때 책을 든 손으로 뒷짐을 지고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아이유의 '밤편지'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걷는 것, 망상 속에서 헤매기보다 지금 내가 선 자리를 딛고 걷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명언



매거진의 이전글 신경을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