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공유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기억으로 마음 남기기
by 담박 Aug 09. 2017

신경을 쓰다

*Calligraphy by 담박


관용구

신경(을) 쓰다

사소한 일에까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다.

별일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나흘째 되던 날 천일 부부는 몸살이 나고 말았다. 아이들 때문에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 탈진한 것이다. 출처 : 박경리, 토지


사전에서 안내하는 바와 같이 '신경을 쓰다'라는 관용구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관용구를 응용한 두 가지 사례에서 신기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다. 분명 이 관용구의 뜻풀이에는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라는 식의 대상에 대한 안내가 없다. 그러나 이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물,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말로 주로 활용된다. 위의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별 일' 혹은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나는 나 자신의 사소한 일에까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적이 있던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고 사는 것을 본능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본능이기 때문에 의식한 적도 없고, 그것이 내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무관심 혹은 무배려라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 역시 당연하게 생각했다. 가족에서부터 외부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늘 다른 사람 혹은 그와 관계된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에 대한 좋은 생각 혹은 나쁜 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많았다. 짝사랑하던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생각하며 기뻐했고, 일터에서 날 힘들게 하는 동료를 생각하며 분개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운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살아온 내 삶에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동갑내기 회사 동료의 소식을 들은 일이었다. 그녀는 부모님 댁에서 독립을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본인 명의의 집을 샀다. 나 또한 독립도 하고 내 집 마련도 하고 싶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서 망설이던 중이었다. 바로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토요일 오전 브런치를 먹으며, 집을 사게 된 동기와 과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실거주와 투자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집을 사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와 지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현재까지 축적한 방대한 정보와 지식이 아닌, 작은 메모 하나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살고 싶은 집의 조건을 메모하여 수십 가지의 리스트로 만들어 두었다. 지역, 회사와의 거리에서부터 아파트 층수, 사소하게는 욕실 수압에 이르기까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그녀가 선호하는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목록이었다. 집에 관한 한 내가 했던 노력은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소형 아파트' 식의 단어 몇 개를 입력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 자신이 어떤 곳에 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신경 써 본 일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슬프기까지 했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이리도 무심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건은 일터에서 벌어졌다.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비슷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여자 선배보다는 남자 선배가 많은 일터에서, 나는 여자에 비해 덜 예민한 남자들과 친분이 좀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제 조직책임자가 된 내가 예전처럼 그분들과 웃고 떠들며 편하게 지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 팀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공유하거나, 우리 조직에 이득이 없는 미팅을 진행하는 일 등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40대 후반 내지 50대 초반에 접어든 직장생활 20년 내외의  남자 선배들은 변화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조직 간에 조심해야 하는 일이나, 조직책임자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요구하곤 했다. 또한 그런 요구를 위해 연락하는 시간조차도 나의 사생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본인들이 내키는 시간이었다.


인맥과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그분들의 행동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나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인맥이라면 제 아무리 재산이라도 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리고 그분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그분들과 보내는 업무 혹은 회식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그분들이 나를 좋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그간의 내 모습들이 떠올랐다. 사실 깊이 생각해보면 나와는 매우 다른 그들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추고, 동의하듯 말하고(실제 생각을 맞추다 보니 진심으로 동의하게 되곤 했다), 웃고 떠들던 내 모습들 말이다. 내가 남들을 신경 쓰며 살아온 대가는 남들이 나의 삶을 본인의 삶처럼 편안하게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침범하는 것일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관계 속에서 내가 바라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내가 정말 웃고 싶은 순간과 그러고 싶지 않은 순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써본 일이 없었다.


3-4개월 동안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무신경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해?'라는 생각을 '나는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지?'라는 생각보다 더 많이 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쓴다기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간섭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습성은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게 하거나, 주체적으로 사는 법을 잃게 만든다는 진리를 이제야 깨닫고 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않을까?


그 누구보다 나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 즉 나의 사소한 일에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습관이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디인지, 내가 듣기 좋아하는 노래와 부르기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동네에 살고 싶은지, 내가 좋아하는 집의 형태는 무엇인지, 내가 집에서 하기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혼자가 더 좋은지 함께가 더 좋은지, 나는 어떤 친구나 이성과 잘 통하는지, 내 건강상태는 어떤지, 어떤 체력이 강하고 어떤 체력이 약한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내 얼굴과 몸에서 가낭 좋아하고 싫어하는 부분은 어디인지 등등. 지금부터라도 나에 대해 알아가며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 충분히 신경 쓰고, 나를 잘 알아본 후에야 다른 사람과의 건강한 만남도 가능하다. 오롯이 나로 우뚝 서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상대 또한 동일하게 나를 만나고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하고 주체적인 두 사람, 세 사람, 그 이상이 모여서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받고, 마음과 행동을 배려하고,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상대가 부모이든, 상사이든 상관없다. 누구의 앞에서도 누군가를 신경 쓰고 맞추는 내가 아닌, 단단한 나 자신이 되는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해나가자. 그렇게 가치 있는 시간들을 차곡차곡 밟아나간다면,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당당하고, 죽음 앞에서조차 살아온 날들이 뿌듯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스스로를 살피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고통에 짓눌리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힘과 지혜가 그 안에서 싹틉니다.
자기 자신을 주시하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법정, <일기일회> 중 (p. 39-40) -




keyword
magazine 기억으로 마음 남기기
담박(淡泊: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하게 사는 법에 대하여 씁니다.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