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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ug 26. 2019

나는 왜 조정(rowing)이란 운동에 빠졌는가

균형을 잡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레이스를 끝낼 수도 없다!

균형이 먼저다!
공직과 삶의 밸런스를 조정으로 찾다.


'밸런스가 깨지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결승선을 통과할 수도 없다'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내가 조정이란 운동을 시작한 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운동. 하지만 지금은 이를 통해 나는 인생을 배우고 있다. 나는 왜 로잉(rowing)이 좋은 걸까. 조정과 인생, 그리고 공직은 과연 무슨 관계가 있길래.




처음 조정 보트에 올랐던 날. 아침 특유의 고요함을 담은 잔잔한 호숫가. 그 한편에 자리 잡은 선착장. 20여 명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좁고 날렵한 모양. 옅은 노란빛의 조정 보트 한 대가 내 앞에 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나는 생애 처음 조정 보트 위에 올랐다. 4명의 크루(선수)와 1명의 콕스(COAX : 배의 선장 또는 키잡이)가 탄 보트 위. 내게 그 보트는 공기가 꽉 찬 바나나 보트처럼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 의외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콕스의 명령과 함께 보트가 선착장에서 서서히 떨어져 나간다. 드디어 시작이다.


"조정? 의리와 배려!"

어느 조정 클럽의 슬로건이다. 처음 이 문구를 접했을 때 '의리? 배려? 요즘 런게 아직도 먹힐까?' 사실 반신반의했다. 민간기업과 공직. 다른 색깔의 두 개 조직에서 모두 근무를 한 게 과연 '의리'와 '배려'는 얼마나 유효한 가치일까.


'일심동체가 되지 않으면 결코 레이스에서 이길 수 없다. 각자도생이 아닌 협력이다.'

솔직히 조금은 빛바랜 구호처럼 들린다.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동호회 인원이 겨우 천 명정도인 조정이란 스포츠. 이 운동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래되고 흔해서 그래서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소중한 것들. 그것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곳이 바로 조정 보트 위. 그 공간이다. 그 곳에서 하나 더 중요한 건 바로 밸런스, 균형이다!


지난 3개월. 폭 1m도 안 되는 좁은 조정 보트 위에서의 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조정(rowing)이란 스포츠. 이 운동에서 내가 느낀 중요한 가치무엇이었을까. 바로 '균형'이다. '공무원'이란 직업. 올해로 11년째. 그동안 수영, 헬스, 등산 등 나는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유독 조정이란 스포츠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내 몸 하나 들어가면 꽉 채워지는 아슬아슬한 보트 위. 4명의 크루(선수)가 배가 가는 방향과 등을 지고(반대편을 향해) 자리를 잡는다. 유일하게 배가 가는 정면을 볼 수 있는 자리인 콕스(COAX)까지 총 5명이 하는 경기가 바로 '쿼드러플스컬(4x)'라는 종목이다. 2011년 무한도전 멤버들이 도전했던 종목은 '에이트'. 8명의 선수가 양손으로 하나의 노를 젓는 '스위퍼' 종목이다.


내가 요즘 배우는 종목은 '스컬'이다. 한 선수가 두 개의 노를 양손으로 젓는 것. 그래서 크루 한 명 한 명의 균형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사람이 바로 콕스.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이 했던 역할.

콕스 COAX : 타수, 키잡이. 배의 방향타를 조종하고 팀의 리듬을 컨트롤하며 주행의 책임을 지는 사람(출처:네이버 블로그 지오캐치 GOcatch)


첫 연습 이후 나는 거의 한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말 아침 조정 연습장을 찾고 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조정이란 운동을 경험할수록 그 운동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조정하는 사람들. 그들 나름의 특별한 균형감각과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 그런 것들은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공직에서의 시간. 그것은 앞만 보고 달려온 이었다. 육아, 공부, 일, 집안일 등등. 나에게는 그렇게 쉴틈없이 일상을 직진해야 하는 이유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조정을 시작하면서 내게 새롭게 다가온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균형'이다. 밸런스. 양손으로 노를 젓는 '스컬'이라는 종목. 노의 넙적한 끝면을 세우는 '턴(Turn)'을 하고 물살을 잡아채는 '캐치(Catch)'. 이 동작을 4명의 크루가 같은 템포로 하는 것이 조정 레이스에서 속도를 내는 핵심이다. 정말 어려운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균형은 물론 그 균형을 바탕으로 네 명의 호흡까지 똑같이 맞춰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루 한 명이라도 균형이 깨지면 안 된다. 이 균형은 어떻게 잡는 걸까. 노를 세우고 물살을 잡아내는 그 짧은 동작에서 내가 머리를 옆으로 살짝 돌리면 어떻게 될까. 이 작은 불균형은 배 전체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이는 다른 크루의 동작에도 영향을 준다. 즉, 조정은 명의 크루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경기다. 보트 위 내 몸의 작은 움직임까지 통제해야 하는 극도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정은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내가 내 몸의 작은 움직임까지 통제한다는 의미. 이걸 통제해서 얻어지는 내 몸전체의 균형. 공무원이라는 나의 직업과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 친구라는 개인적인 삶. 그 경계 어느 점을 아슬아슬하게 오고 가는 일상의 순간순간. 그 속에서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냉정해지고 때로는 절망하는 내 모습을 본다.


공직과 개인적인 삶.

이 두 가지 사이의 균형은 내가 공무원이란 직업을 그만두지 않는 한 내가 계속 풀어내고 또 견고하게 만들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잔잔한 호수. 그 수면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조정 보트 위. 그 모습은 나의 일상과 꼭 닮았다. 내가 균형을 잡고 있어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평온한 일상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섬세한 그 무엇. 그렇다면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보트 위에서 내가 해야 하는 첫 번째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양손의 노를 가지런히 잡는 밸런스다.


균형. 공직과 개인적인 삶 사이 중간 어느 지점. 거기에 나는 단단히 두 발을 땅에 딛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다시 첫 조정 연습의 날 아침. 호수 표면의 무수한 수초들 사이를 헤치고 내가 탄 보트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른 아침의 정적 속에서 보트 위 네 명의 크루가 만들어내는 노 젓는 소리만이 공기를 가로지른다. 첫 승선인 나는 어떤 힘도 보테질 못했다. 양손의 노를 꽉 쥐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막연한 두려움? 아니다. 신기하게도 그때 나는 앞으로 이 배 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들어 갈 또 하나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했다. 왠지 모를 설렘과 기대감이랄까. 내 인생 첫 조정 연습, 그 날 아침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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