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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Oct 05. 2019

당신의 오늘을 끌어안는 순간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더 뮤즈 : 드가 to 가우디 전시  in 더 서울라이티움

마음을 절실하게 뒤흔들어 새로움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은,
삶의 매 순간을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의 시간과 공간. 그 한가운데서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 바로 오늘이 내게 그런 날이었다. 삶의 역설과 아이러니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담아낸 시대의  뮤즈들을 만났기에.


'빨강머리 소녀, 앤 셜리'를 만나기 위해 3개월 전 찾았던 서울숲. 당시 비를 머금은 싱그러운 봄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던 내게. 그곳은 더 이상 기억 속 공간이 아니었다. 2호선 지하철. 뚝섬역을 내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 도착한 그곳.

전시가 열리는 '더 서울라이티움'이 내 시야로 들어올 즈음. 마침 지나치던 도로 옆 나무에서 시끄럽게 들려오 소리가 있다.  들의 지저귐. 수십마리는 족히 될것 같았다. 새는 보이지 않고 재잘거리는 소리만 선명다. 도심에서 우연히 만난 경쾌한 자연의 소리. 그것이 준 행복도 잠시. 길목 어귀를 돌자마자 내 앞에 나타난 거대한 공사장. 그리고 쇳소리, 기계소리...거슬리는 소음들.


불과 몇달기억 속 그곳과는 전혀 다른  내 앞에 있다. 공간이 준 뜻밖의 낯선 느낌. 하지만 그 순간 오늘 전시가 내게 가져 올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커져 있었다. '아, 드디어 시대 뮤즈들을 만날 시간이다.'


역설과 아이러니를 건축에 담다! 안토니 가우디

자연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책과 같다.

건축만큼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인공적인 것'이 또 있을까. 극도의 인공미를 지닌 건축의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편에 있는 자연미를 품는다. 역설은 우리의 일상에도 이제는 세상을 떠난 어느 위대한 건축가의 일생에도. 어디든 녹아들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건축가. 자연의 모습을 따라 곡면과 곡선이 강조된 형태를 표현했다. 도자기 타일을 이용한 모자이크 기법 등 독자적인 특징을 지닌 아르누보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다. 현장에 나와 인부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유명.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공사장에서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기상천외한 아름다움과 함께 생태주의적 건축 철학까지 갖춘 가우디의 세계는 어쩌면 신이 가우디의 손을 빌려 우리에게 조금 일찍 미래의 순간을 건넨 것은 아닐까.


자연을 때리고 부수고 다시 지어서 만들어 낸 인공의 건축물. 그것은 사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자연'(즉, 천연)의 반대 의미로 사용하는 '인공'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이 둘은 꼭 반대편에만 있어야 할까. 자연을 닮은 '가우디'의 작품들이 내게 불러온 궁금증이다. 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건축물들을 디자인하고 또 사람들에게 자연이 지닌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머릿속에 모든 설계도를 넣어 다니고, 생의 마지막 장소마저도 그가 열정을 다해 짓고 있던 성당의 공사장이었던. 자연이란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스페인이란 나라 특유의 열정을 듬뿍 품은 건축가. 가우디. 그는 그렇게 수세기를 지나 서울이란 도심 속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나란 사람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구엘 공원 Parc Guell, 1914 ; 환상적인 곡선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화려한 색상의 모자이크 타일로 유명.


까사 밀라 Casa Mila, 1912 ; 카탈루냐 지방의 거대한 바위산 몬세라트에서 영감 받아 설계한 주택. 돌을 그대로 깎은 듯한 외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듯이 끝없이 곡선이 자연의 리듬감으로 건물 전체를 휘감는다. 가우디 건축의 조각적 성향 극대화된 작품.


예술의 역설을 보여준 가 ; 피에트 몬드리안

나는 내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길 원한다.

네덜란드 출생. 개성을 배제하고 화면의 순수한 질서를 강조하기 위해 삼원색과 무채색, 선과 면을 주로 사용. 질서 정연하게 배열된 화면과 뉴욕에서 느껴지는 동적인 감성을 배합. 이후 20세기 미술, 건축, 디자인, 패션 등 모든 분야 영향을 줌.


눈을 어지럽히는 가우디의 파격적인 건축물들을 지나면 한쪽 벽면을 얌전히 차지하고 있는 세련되고 절제된 격자무늬가 나를 맞이한다.


바로 네덜란드 태생 몬드리안의 작품이다. 검은선으로 둘러싸인 들이 담아내는 첫 감정은 안정감이었다. 보는 내내 욕실의 바닥과 벽의 반듯한 타일들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일상에 지친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기 위해 내가 매일 저녁 욕실이란 공간을 찾듯이. 그의 격자무늬는 그렇게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검은색 선과 직사각형의 면, 빨강, 파랑, 노랑으로 이루어진 안정과 균형의 이미지'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도 그러했다.


하지만 몬드리안은 거기에 멈추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누구보다 특별한 예술가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 속 '안정감'과 인생의 '안정감'까지. 그렇게 그는 둘 다 던져버리고 68세의 나이에 새로운 영감을 찾아 훌쩍 떠난다.  바로 뉴욕이다. 뉴욕이란 도시는  노년의 예술가에게 어떤 선물을 했을까.


바로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이었다. 역설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뉴욕이란 도시의 동적인 면모가 노년의 네덜란드 작가에게 적나라하게 비친 그 순간. 몬드리안은 그걸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꽤 늦은 나이 모든 걸 버리고 미국으로 왔기에. 얼마나 절실했을까. 오히려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던 그였기에 가려져 있던 도시의 역동성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새로움을 찾아 떠난 뉴욕에서, 몬드리안은 놀라운 장면과 마주한다. 직선이 교차하는 바둑판같은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 수직으로 뻗은 빌딩들이 이루는 조화를 보았다. 작품명 '뉴욕'

몬드리안이 보여준 역설의 미학.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 푸가 g단조>가 잔잔히 흐르는 그의 '움직이는 그림'. 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음악을 미술에 입히다! ; 칸딘스키와 마티스


내가 꿈꾸는 것은 균형의 예술이다
색깔은 영혼에 직접으로 영향을 미친다. 색과 형상을 조합하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칸딘스키의 귀에 들리는 음악은 그의 마음속에서 저마다의 색깔과 도형을 만들어냈고, 이들은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다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멋진 그림을 이루었다.

몬드리안의 역설의 안정감을 뒤로하면 아기자기한 칸딘스키의 공간이 나온다. 화려한 색채들과 기하학적 도형들이 온 사방을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귀를 연신 울리는 싹둑싹둑 가위질 소리. 안정감과는 거리가 좀 있다. 하지만 따로 또 같이 노는듯한 저마다의 색과 모양이 나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거슬리지 않고 계속 눈길이 가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급기야 바닥에 깔린 건반 위로 두 발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발 아래 색이 만들어내는 세상 하나뿐인 화음에 귀를 쫑긋 세운다.

노년의 마티스는 가위로 색지를 잘라낸 '종이 오리기(cut-out)' 작업으로 다시 예술의 즐거움을 만끽. 강렬한 원색의 조합과 가위질로 잘라낸 선의 리듬감을 이용해 작품 속에 음악적인 리듬감과 율동감이 녹아 있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선 마티스. 시력이 약해져서 더 이상 그리는 작업이 불가능해진 그가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 예술가로서 그리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는 가위질을 선택한다. 가위로 색색의 종이를 오리고 붙여서 제2의 인생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몬드리안과 마티스. 두 예술가의 노년은 묘하게 닮았다.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건 신체 건강하고 열정 넘치는 시기가 결코 아니었다. 인생의 막바지. 이제 모든 걸 놔 버리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야 할 때라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삶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과감하게 실천한 그들의 작은 선택. 그것이 바로 그들을 누구보다 특별한 예술가의 길 이끌었다.


내가 초록색을 칠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잔디가 아니야. 내가 파란색을 칠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늘을 의미하지는 않지.

 나의 모든 색깔은 다 같이 모여서 노래해. 마치 음악의 화음처럼...
-칸딘스키-


발레리나가 가진 묘한 아이러니를 그려낸 드가!

춤추라, 날개를 단 아이여, 빈 터에 세워진 너의 무대에서. 춤이 너의 삶이 되도록, 춤이 너만의 매력이 될 수 있게. 물결처럼 굽이치는 선을 따라
네 그 가냘픈 팔을 뻗어 너의 무게와 미끄러지는 움직임 사이에서 우아한 균형을 잡아라...
-에드가 드가이 소네트 <어린 무용수>-


아름다운 발레리나를 그린 드가. 그의 작품들에는 작고 여린 소녀 발레리나들이 주로 등장한다. 순수함과 천진함을 오롯이 간직한 듯. 세상의 아름다움은 모두 소녀들의 유연한 몸짓과 섬세한 손동작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그렇게 한참을 드가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소녀들의 표정에 문득 눈길이 갔다.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왠지 지친 표정의 소녀. 발레화를 고쳐 매는 가녀린 등. 결코 아름답게만 보이진 않았다. 드가의 작품은 당시 가난한 노동자딸들이 다수였던 발레리나의 무대 뒤 모습까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의 하층민이었던 노동자 계급. 그 자녀들이 발레리나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현실. 드가는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만 보이는 '발레리나'를 연기하는 직업 소녀들의 일상을 세심하면서도 따뜻하게 포착했다. 발레리나와 노동자의 딸. 이 묘한 아이러니함을 담담하게 때론 쓸쓸하게 그려다.


평범함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밀레


거친 땅에서 농사짓는 이들이 때때로 허리를 곧게 펴고 이마의 땀을 닦는다.
이 모습이 바로 진정한 인류이자 한 편의 위대한 시다!

양치기 소녀와 양떼 : 들판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양치기 소녀. 어린 소녀도 제 몫을 해야만 하는 고된 농촌 생활을 상징한다.

장 프랑수아 밀레 "나는 농부로 태어났고, 영원히 농부로 남을 것이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부유한 농가 출신. 콜레라를 피해 떠난 바르비종(Barbizon)의 농촌 마을. 성실하고 겸허하게 살아가는 농부들에게서 숭고한 아름다움 발견했다.

가을보리 냄새와 농촌 들판의 투박한 바람이 뒤섞여 이전 공간과 무척 다르게 느껴지는 곳에 들어섰다. 농부들의 삶을 누구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예술가, 바로 밀레의 공간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농가에서 어난 그. 당시 유행하던 병을 피해 가족들과 우연히 머물게 된 바르비종 농촌마을. 그곳에서 맞닥뜨린 순수한 촌민들의 삶.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선물하는 수확에 대해 순간 감사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밀레. 흙에서 인간의 삶은 시작되고 또 끝이 난다. 흙이 만든 단단한 땅에서 가장 가까운 농민들의 일상은 그에게 숭고한 예술 그 자체로 비친다.


땀 흘리는 노동의 신성함. 신과 자연과의 순수한 교감. 그리고 진심 어린 감사. 밀레는 그렇게 그 시대 최하층민이었던 농민들을 작품속으로 과감하게 불러들였다. 예술이 귀족층의 전유물이란 사회적 인식을 벗어버리고 소외된 농민의 삶을 그림 속으로 끌어온다. 그리고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의 따스함은 그 시대 계급사회 귀족층과 주류에 대한 '냉정함'이기도 했다.

I am here, like them
나 이곳에서, 그들처럼
-밀레-

황량한 땅. 성실한 농부들. 씨앗을 뿌리고 작물 돌보고 수확을 허락하는 대지의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한 그들. 땅의 마음을 느끼고 교감하는 듯 보였다. 밀레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 생각했다. 19세기 그림은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것. 당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농부들의 삶은 그리는 것은 한마디로 변혁이었고, 반항이었다.

이삭 줍는 사람들 ; 허리를 굽힌 채 이삭을 줍는 여인들이 있다. 멀리 보이는 풍경에는 부르주아의 저택과 말을 탄 사람, 잔뜩 쌓인 수확물들이 보인다. 소작농인 여인들은 수확물을 지주에게 바치고 땅에 떨어진 이삭이라도 주워 가려는 것이다. 여인들의 옷은 땅의 색조와 비슷하다. 밀레는 땅에 가까운 삶을 겸허히 살아가는 농부들을 그리면서, 그들의 등 위로 마치 신의 가호와 같은 햇살이 내리도록 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밀레의 따뜻한 시선이다.



오늘 다시 시작될 당신의 삶 속에서
부디, 당신만의 뮤즈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우디는 깨진 타일을 모아 기상천외한 아름다움을 지었고, 쇠라는 눈에 보이지 않던 빛을, 칸딘스키는 음악을 보이게 만들었다. 몬드리안은 꼭 완성하고 싶은 이상을 좇아 68세의 나이에 새로운 대륙으로 떠났고, 마티스 역시 '종이 오리기'로 인생의 2막을 연다. 밀레와 고흐는 모두가 등한시하던 농촌에서, 드가는 누구도 주의 깊게 보지 않던 발레리나의 움직임에서 의미를 찾았고, 무하는 성공한 상업 화가에 안주하지 않고, 길을 걷는 모든 시민에게 전시를 연다는 사명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내 인생의 뮤즈들을 만난 설렘과 행복. 그 감정들을 가슴 가득 담은 채 나는 전시관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1층 카페 야외 테이블 앉아 잠시 생각에 빠졌다. 길 건너편 두 개의 고층 빌딩이 우뚝 솟은 공사장은 여전히 요란한 소음을 뿜어내고 있다. '저 건물 건축가는 빌딩을 설계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 소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발자국 소리.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을 깜빡이는 하얀 말티즈가 탄 작은 유모차. 그것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바퀴소리. 공원 너머 들려오는 요란한 헬기 소리까지. 그때 올려다본 하늘은 주황과 회색, 파랑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미완성의 스케치 같았다.  


퇴근 시간을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 서울숲의 시간은 잠시 내 사색  작은 프레임 멈춰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둘러싼 낯선 세상 구경에 빠져 있었다. 가우디, 드가, 밀레, 몬드리안, 칸딘스키... 시대를 거스르는 뮤즈들도 그때 이런걸 느낀걸까? 전시회 마지막 공간 굿바이 문구가 떠오른다. '당신의 오늘을 끌어안기를! Seize the day!'


당신의 오늘을 끌어안는 순간,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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