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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Nov 29. 2019

알폰스 무하, '체코의 별'을 가슴에 담다!

알폰스 무하 전시 in 마이아트뮤지엄

전시회란 공간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전시의 시작, 중간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서 각기 다른 이가 주인공이 되는. 그건 아마도 해설가, 예술가  그리고 나란 관객이 만들어내는 삼색이야기가 아닐까.


마이아트뮤지엄. 서울 도심 한복판. 초겨울의 차갑고 투명한 햇살을 받아 유난히 더 반짝거리는 빌딩 숲. 그 속에 자리 잡은 전시관이 내 앞에 있다.

입구는 적당히 심플하고 단정하다. 사실 난 전시회 입구가 화려한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화려함에 압도된 나머지 전시 중간중간 만나는 소박한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눈에도 단순하고 깔끔한 입구가 나는 좋다.


그렇게 한 계단 두 계단 내려 간 지하 1층의 공간. 한 무리의 젊은 대학생들로 로비가 시끌벅적하다. 평일 오후 예기치 않은 북적거림은 조금은 먼 길을 달려와 살짝 지친  마음까지 두근거리게 만든다. 시간은 오후 3시 55분. 도슨트가 곧 시작된단다. 나만 아는 작은 행운 같아서 빙긋 웃음이 나왔다. 천천히 전시장 입구를 들어섰다. 50~60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도슨트를 기다리고 있다. 저마다의 기대와 설렘을 담은 표정들. 날것 그대로의 다채로움과 생동감이 바로 이런것 아닐까. 그 순간 나는 어떤 표정으로 서 있었을까. 4시. 어디선가 그가 불쑥 나타났다!


첫 번째 이야기, '무하, 나는 그의 인생을 해설합니다!' 도슨트 정우철

크지 않은 키에 무채색의 단정한 옷차림. 반짝이는 안경을 낀 도슨트 정우철. 그가 어느 방향에서 나타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해설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중심에 그가 서 있다.

"저는 오늘 4시 도슨트 정우철입니다. 다시 말해 전시해설사입니다."


도슨트라는 용어가 혹시라도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전시해설사라고 한번 더 풀어서 말한다. 나도 모르게 그다음 말이 궁금했다.

"사실 오늘 전시 해설을 준비하면서 저는 세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쉽고, 재밌고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해설입니다. 알폰스 무하, 이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의 인생을 알아야 합니다."


그 후 약 1시간 동안, 7살 꼬마부터 40~50대 중장년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은 정우철이란 전시해설사가 전해주는 체코 출신 '알폰스 무하'란 예술가의 인생 이야기에 푹 빠졌다. 놀라운  엄마와 함께 전시회를 보러 온 7살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는 사실. 심지어 바닥에 그리고 앉아 눈 깜빡임 하나도 아깝다는 표정으로 뚫어지게 응시한다. '앞의 젊은 전시해설사.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아르누보, 벨 에보크 등등. 이 어려운 용어들은 그의 입을 통과나오면서 너무도 쉽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내 기억 저장소 어딘가 슬쩍 담겼다. 


지난달 10월에 개관한 마이아트뮤지엄의 첫 특별전인 '알폰스 무하'의 전시 해설. 이를 위해 그는 무하의 전기, 관련된 책들을 수개월 동안 공부하고 또 고민했단다. 그의 워딩(말) 하나하나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도슨트의 세계를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만난 도슨트는 지금까지 그 어떤 전시해설보다 '쉽고, 재밌고 또 이야기'시회를 만들어냈다.


수개월 동안 '알폰스 무하'를 연구하고 어떻게 관람객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한 도슨트 정우철. 그가 무하를 묘사한 이 문장들에서 나는 그 고민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알폰스 무하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절망'이란 단어가 없는 사람 같아요. 그래도 한번쯤은 좌절할 만도 한데 그는 결코 그런 법이 없었으니까요."


두 번째 이야기, 상업 예술가에서 순수 예술가로... 체코의 별이 된 알폰스 무하!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시장이 될 것이다.
The street became open-air exhibitions


곡선, 여성,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오묘하게 담아낸 포스터작가. 상업광고에서 사람들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최초로 유혹한, 시대를 훌쩍 앞서간 파격의 상업 예술가.

여성, 자연, 곡선..무하의 대표적 상업포스터
대중의 감각을 자극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그들을 깨우기 위해서, 예술가는 유혹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티파니를 디자인하고 세기의 예술가 '로뎅'의 옆집에 살며 그에게 조각을 배운 장식 예술가. 그림보다 노래를 더 잘했사랑했던 소년 무하. 하지만 변성기로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게다가 성가대로 활동하던 학교에서도 쫓겨난 불행소년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인생에서는 절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왜 그럴까.


인생에서 '꺾어진다'라는 느낌의 순간. 누구나 있지 않을까. 무하의 인생에도 몇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힘든 순간 그 앞에 나타난 몇 명의 조력자들이다. 거기에 이 위대한 예술가의 인생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그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했을 뿐이다. 그가 가진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남다른 집착은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 만나면서 바깥 세상에 드디어 빛을 발한다.


파리의 후원자인 백작이 없었다면 학교를 쫓겨난 그는 파리를 갈수도 더는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다,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 그녀의 연극 포스터를 우연히 그리면서 무하는 인생을 바꾸는 소위 첫번째 '대박'을 터트린다.

사라 베르나르를 그린 첫 포스터

그가 그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 회화 양식은 물론 기존 포스터를 두 장을 붙여 세로가 아주 파격적인 형태였다. 연극 홍보를 위해 파리 전역에 붙인 포스터. 다음날 파리 어디에서도 그 포스터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사람들이 포스터의 아름다움에 반해 모두 떼간 것이다. 이에 놀란 배우 사라는 4천 장을 유료로 판매해 본다. 그마저도 완판 된다. 그때부터 상업 장식 예술가로서 대성공의 길을 걷는 무하.


그렇게 더 이상 올라갈 곳도 더 이룰 것도 없는 시기가 온다.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후원자를 만난다. 그와 함께 고국 체코로 돌아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길로 들어선다.


유럽의 작고 아름다운 나라. 체코에서 태어 나 '아르누보'라는 시대의 미술을 주도했던 상업 예술가이자 슬라브 민족이 가장 사랑한 순수 예술가. 알폰스 무하, 누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르누보(Art Nouveau) :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유행한 예술사조. 프랑스어로 '새로운 미술'을 뜻하며, 산업혁명 이후 기계주의에 대한 반발로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화려한 장식이 특징. 나무 덩굴, 꽃잎, 조개 모양에서 나온 장식적인 곡선 등을 조형적으로 접목시킴. 장식, 섬세한 색감 및 풍부한 아름다움이 특징. 아르누보의 진정한 철학은 누구나 평등하게 예술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

'욥' 100년전 무하의 담배광고 포스터
내 작업의 목적은 절대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재건하고 단합하기 위한 것이다. 인류가 서로를 이끌고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 모두 희망해야 한다.


미국의 후원자와 함께 1910년 그는 체코로 귀향했다. <슬라브 서사시>. 약 20여 년에 걸쳐 체코의 역사와 민족애를 담은 20여 개의 기념비적 대작 시리즈를 그는 시작한다. 묘하게 우리와 닮은 체코의 슬라브족. 단일 민족이며 유럽의 여러 나라에 의해 지배당한 아픔을 가졌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 화려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담아낸 '아르누보' 예술의 극치를 보였던 무하. 그의 작품들은 체코로 귀향 후 대전환을 맞이한다. 웅장하고 역사적인 화풍으로 민족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인생 후반기 작품들. <슬라브 서사시>

복권포스터에 담은 슬라브 민족의 역사


하지만 1939년 독일 나치의 프라하 침공으로 그는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또 심각한 후유증을 얻는다. 장례식에 참석하면 체포한다는 나치군의 협박에도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10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체코의 위대한 예술가는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영원한 평화 속에서 편히 쉬거라! 체코는 훌륭한 아들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 장례식 연설 중 -


알폰스 무하. 그의 인생은 내게 말했다. 위대한 예술가는 역사책이나 도록에 남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바로 사람들의 가슴에 별처럼 박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 온 나란 사람

전시회를 자주 다니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바로 기념품 한 두 개는 꼭 사게 된다. 무하의 전시에서 내가 가져온 건 두 가지. 사계절 시리즈에서 봄을 담은 다이어리와 황도 12궁 탁상용 액자다. 오늘 아침 사무실 책상 한쪽기념품들을 올려놓고 전날 느낀 감성을 다시금 떠올려 다.

달력 표지 '황도 12궁'

무하라는 예술가의 인생을 연구하기 위해 수개월을 고민하고 또 그만의 색깔을 입혀 쉽고 재밌는 스토리로 탁월하게 풀어낸 도슨트 정우철. 전시해설 분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선물했다. 그 '해설'을 들으며 '내가 앞으로 만들어 낼 모든 설명이나 발표는 저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깨달음 또는 과제를 남겼다.


상업예술의 절정에서 자신의 뿌리인 민족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순수예술의 세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 들어 간 남자. 그리고 그의 예술가적 열정과 재능 그리고 순수성을 알아봐 준 사람들. 이들의 협업이 만들어 낸 결과가 바로 '체코의 별, 알폰스 무하'다.


그럼 나의 이야기, 나의 인생은 어떻게 남겨져야 할까. 텍스트화 되어 잡지와 책들 속일까 아니면 온라인의 수많은 플랫폼일까. 사실 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내 이야기를 담고 싶다! 결국은 이렇게 써 내려간 나의 글들. 마지막 종착점은 거기가 아닐까.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의 가슴 한편. 햇살 가득한 오후 네시 나는 그렇게 '체코의 별'을 가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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