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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ug 12. 2020

피노키오의 거짓말은 누구보다 솔직하다?

[전시후기]My dear 피노키오 in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회. 따스하고 은근한 노란빛의 조명이 언제나처럼 그렇게 비추는 공간. 이 곳에 나를 대책 없이 던져두고 가만히 그 속의 나를 느끼며 천천히 걷는 걸 나는 무척 좋아한다. 특히 머리가 복잡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바로 전시회, 그 공간이다.


어떤 곳 보다 포근하게 나를 감싸지만, 그곳만큼 낯설고 신선한 감동을 주는 곳도 없다.

몇 주째 지루하다 못해 집요하게 내리는 장맛비와 언제나처럼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고속도로와 도심의 교통정체도. 결국 나를 막지 못했다.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를 달래서 옷을 입히고 차에 태웠다. 커피 한잔과 토스트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한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예술의 전당 오페라 주차장. 다행히 도착 즈음엔 비가 그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산을 챙기고 뒷좌석에서 가방을 꺼내다가.

"철퍼덕".


오랜만에 신고 나온 샌들이 주차장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밟으며 물을 사방으로 튀겼다. 급한 마음에 아래를 보지 못한 탓이었다. 갑자기 짜증스러움이 턱까지 올라왔다. 그 순간 뒷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풀던 12살짜리 아이궁금해하는 두 눈과 딱 마주쳤다.

"엄마, 왜요?"(화가 났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어.. 아니야. 그냥 물이 튀긴 거야"(눈을 피하며)


'아니긴 뭐가 아닌 거니?'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속마음과는 다른 고 말았다. 과연 잘한 것일까. 새삼 되묻게 된다. 아주 사소한 일상의 감정을 자꾸만 나도 모르게 다르게 말하는 일.


바로 거. 짓. 말.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오늘 역사적으로 거짓말의 아이콘이 돼버린 '피노키오'란 아이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회  전에 알던 그 아이와 전시회 후에 그 아이는 또 다르게 내게 남아 있는 듯하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제5~6 전시실은 온통 피오키오라는 아이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과 의미들로 채워져 있다. 1800년대 말 태어나 2020년 현재까지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백 개의 각기 다른 피노키오들이 있었다. 놀라웠다.


시대의 아이콘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 바로 이런게 아닐까.


월트 디즈니사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는 전 세계 아이들의 동심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거짓말하면 코가 자라는 애잔한 나무 인형으로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미국 링컨센터 50주년 기념작품 속 피노키오

사실 '피노키오' 미국 디즈니사가 재해석한 것일 뿐, 원래 태생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이다.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 1826~1890)라는 50살이 넘은 이탈리아의 평범한 정치평론가가 생계를 위해(의견이 나뉜다) 어느 신문사에 기고한 동화 시리즈가 바로 피노키오의 출발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피노키오의 모험'은 백만 부 이상 팔리면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작 작가 본인은 피노키오의 대성공을 직접 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원래 작가가 처음에 쓴 피노키오의 결말은 비극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독자들의 원성이 빗발치면서 신문사가 작가를 설득?한 끝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희망적인 결말(아버지를 구하고 결국 사람이 되는 뭐..)로 그 후 이야기가 추가된 것이란다. 피노키오는 태생부터 '거짓말'인 걸까?


더 놀라운 사실은 이탈리아 작은 마을 태생의 조그만 나무인형 '피노키오'라는 아이가 가진 영향력이다. 지금까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300개 언어)되었단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피노키오 책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브랜드로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언급하지만, 피노키오는 어쩌다가 이렇게 대박이 났을까. 시대를 거슬러 문화와 언어와 피부색의 장벽을 가볍게 넘어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서 천진하게 뛰어노는 아이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영국 앤서니 브라운
러시아의 피노키오
덴마크 한나 바르톨린

그때그때 시점의 역사, 정치, 종교 등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피노키오는 천진난만함과 외로움, 솔직함, 모험심 등등. 당시 사람들의  필요와 호기심에 의해 극과 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캐릭터로 재창조되며 여기까지 생명력을 잘 유지해 온 듯하다.


사실 그때마다 피노키오의 코는 조금씩 더 길어지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실제로 과거 피노키오에 비해 현대 피노키오들의 코가 조금 더 길어 보이는 것은 나만 착각인 걸까?

이탈리아 마누엘라 아드레이니(1973년~)
한국 작가 민경아 '알폰스 무하'

180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동화는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무척 현실적이고 끔찍한 장면도 많았다. 원작자인 카를로 콜로디는 그 시대에 맞게 피노키오를 창조한 것이다. 그러다가 자의든 타의든 처음의 결말은 바뀌었고. 바뀐 결말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노키오는 읽힌다. 그렇게 백여 년이 지나 디즈니에 의해 또 한 번 새 옷이 입혀진 채 피노키오는 전 세계 아이들의 동심을 장악한다.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크면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들에게 많이 듣고 또 내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버릇처럼 말이다.


거짓말은 그냥 나쁜 거니까.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자라면서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탓 아닐까.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거짓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강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나는 종교인은 아니다) 기독교 십계명에서 아홉 번째가 '네 이웃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이탈리아와 미국이라는 나라의 종교적 배경이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유교와 불교적인 색채가 전통적으로 강했던 곳이어서 '거짓말'에 대한 인식이 서양만큼 강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근대에 들어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면서 '피오키오(인간)-거짓말(죄)-자라는 코(벌)'와 같은 연결된 개념이 서서히 우리 일상 속으로 스며들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적 내가 처음 피노키오 이야기를 접했을 때를 돌이켜보니 첫 느낌은 참으로 신선했다. '거짓말을 하면 자라나는 코라니' 자그만 시골마을에서 자라고 컸던 내게 낯설지만 호기심이 무척 가는 아이가 바로 피노키오였다.


이제 수십 년이 흘러 다시 만난 피노키오는 어릴 적 내가 만났던 그 아이와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삶에 대해 진지하고 또 솔직한.. 하지만 이해받지 못해서 외롭고 힘든 뭐 그런 거...


내 안에도 피노키오는 살고 있지 않을까. 남들이 아는 아이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뭐 내 코가 자라지 않아서 티는 나지 않지만 수시로 내가 세상을 향해 내뱉는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그 아이가 다 듣고 있지 않을까? 왜 자기만 코가 자라야 하냐고 원망하면서 그렇게.


나는 그 아이를 위해 거짓말을 멈춰야 할까? 과연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세상 솔직한 코'를 계속해서 두고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My dear 피노키오'는 내게 질문 보따리를 한가득 안겨주고 질긴 장맛비 속으로 달려갔다.


거짓의 상징으로 간주하지만, 피노키오의 코만큼 솔직한 코가 없다
- 작가 민경아 -

#피노키오 #예술의전당 #전시회후기 #거짓말 #mydear피노키오 #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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