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지 Jun 25. 2019

두 개의 국기(flag), DMZ 그리고 아우슈비츠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의 1박 2일이 내게 남긴 것!

지금 이 글을 시작하면서 나는 새삼 놀랐다. 오늘이 바로 6.25 전쟁 69주년이 되는 날이란다. 공교롭게도 어제와 오늘 나는 생애 처음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캠프그리브스(Camp Greaves).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서의 하룻밤 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이 6월 25일 이기에 더더욱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글로 정리해야겠다고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나는 결심했다. 내일이 되면  마음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에.




캠프그리브스.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까? 파주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이 캠프는 민통선 내 유일한 유스호스텔이다. 사실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이런 숙박시설이 있으리라고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

한국전쟁 정전협정 직후 50여 년간 미군이 주둔했던 곳. 2004년 8월 미2사단 506보병연대가 철수하면서 2007년 8월 한국 정부에 반환된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중 하나. 일반인들에게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이며 2013년 10월 캠프그리브스 DMZ 체험관(유스호스텔)으로 공식 개관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분단의 역사를 문화적 감성으로 연계시킨 평화의 체험공간으로 재탄생.


업무차 교육 이수를 위해 1박 2일을 이곳에서 보낼 나를 태운 버스가 거의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캠프.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금 낡았지만 왠지 푸근하고 청정한 느낌이랄까. 이 느낌은 과연 어디서 온 걸까 되짚어 보니 메인 건물과 공간을 전체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와 녹음 짙은 나무들 때문이었다. 


민통선 안 공간은 인공의 느낌이 확실히 덜하다. 그렇게 녹색의 숲을 배경 삼은 호스텔 건물 입구를 조금은 어리둥절하게 들어선 내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 '유시진 대기실'이란 명패였다.


유시진 대위? 맞다. 여기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 중 하나다. 나도 그 드라마를 봤지만 민통선 안에서 그것도 실제 미군 부대였던 곳이 촬영지였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캠프 곳곳에 드라마 포스터가 걸려 있고, 심지어 대기실 이름을 '유시진'으로 명명했다. 처음 그걸 봤을 땐 '풋' 웃음이 나왔지만 전체 공간을 둘러보고 난 후, 중국인 관광객들이 상당수 찾는 곳이기에 그 이름이 왜 필요했는지 쉽게 이해되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DMZ(Korean Demilitarized Zone)'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캠프그리브스에서 촬영한 '태양의 후예'는 한국전쟁을 담지 않았다는 이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최근이기에 국외 분쟁지역에서의 특수 임무를 띈 특전사 장교와 여의사간의 달달한 로맨스를 다룬 것이다.

한반도 비무장 지대(韓半島非武裝地帶, Korean Demilitarized Zone, DMZ)는 한국 전쟁 이후 1953년 체결된 정전 협정에 따라 설정된 비무장 지대이다. (출처 : 위키백과)


사실 6.25 전쟁과 그 이후 간첩 사건 등 남북분단을 소재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팔리지? 않는 고리타분한 콘텐츠가 된 것 같다. 대신 이국적인 그리스의 자킨토스 섬을 배경으로 국외 지역의 분쟁을 우여곡절 끝에 해결하는 현대판 세련된 영웅 스토리로 '태양의 후예'는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엄청난 인기가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건너갔다. 실제 드라마는 2016년 2월부터 4월까지 방영되었고, 이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로 2017년과 2018년 캠프그리브스의 외국인 방문자수도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2016년 9월~10월 문화재생사업 1차 기획전시 운영(평화의 축:단절에서 소통으로)


여기서 조금 아쉬운 건 캠프그리브스가 가진 나름의 역사적 상징성이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의 성공과 잘 이어졌는가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수많은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민통선을 넘어 제3땅굴, 도라산역, 도라전망대 등 우리 역사의 생생한 '현재 진행형' 공간들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내국인들은 어디 있지? 심지어 오늘은 6.25 전쟁이 일어난 날이잖아?' 어제 6월 24일 캠프그리브스에 숙박한 그룹은 내가 포함된 단체와 또 다른 대학생 그룹이 유일했다. 그리고 오늘 첫 번째 방문지인 제3땅굴(1978년 10월 발견. 서울에서 52km 위치. 폭 2m, 총길이 1,635m). 땅굴 입구에서부터 약 1.6km를 내려가고 올라오는 30여분의 이동시간. 나와 마주친 방문자들의 대부분은 외국인이었다. 중국인과 미국인이 90% 이상이었다. 기분이 좀 묘했다. 그 순간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는지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바로 전쟁 후 휴전 상태인 우리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망각'이다. 우리에게 엄청난 생채기를 남긴 한국전쟁. 불과 69년 전의 일이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그 전쟁을 그 어떤 것보다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 DMZ 인근의 공간들은 한국인들이 아닌 외국인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나조차도 이번 방문이 교육의 일환으로 거의 반강제로 참여한 것이기에 그 '무관심'의 주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솔직히 오늘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이 그냥 우연이기를 바란다. 평일이기도 했고, 주말과 휴일에 보다 많은 내국인들이 민통선 안 DMZ를 찾을 것이라 기대하고 또 희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3땅굴의 존재를 실제 눈으로 확인한 외국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갈까. 위안일까 아니면 안도감일까? 그들의 생각이 문득 궁금해지는 씁쓸한 순간이다.


제3땅굴의 다음 행선지는 도라산역이었다. 초여름 강한 햇볕과 이른 무더위에 조금은 지친 마음으로 역 대합실을 들어선 내게 벽면 스크린을 채운 흰색의 구가 시선을 끈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도라산역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다. 이 기차는 매일 서울에서 도라산역으로 딱 한번 운행한다. 하지만 더 이상 북쪽으로 진행하지 못한다. '언젠가는 가지 않을까' 순간 잠시나마 기도했다. 역대합실을 지나 바깥으로 나가면 남측과 북측 플랫폼이 기차 레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플랫폼을 따라 걷다보면 독일 '베를린 장벽'의 실제 잔해가 전시된 곳과 맞닥뜨린다.

베를린 장벽 잔해와 통일까지 걸리는 시간 비교표


독일은 1949년 5월 23일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고 정확히 41년 4개월 11일째인 1990년 10월 3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통일을 이룬다. 도라산역 플랫폼 한편의 '그 잔해'를 사이에 두고 독일과 한국의 통일까지 걸린 시간이 나란히 비교표처럼 전시되어 있다. 독일은 이미 통일을 했기에 멈춘 숫자다. 하지만 우리의 숫자는 '분'과 '초'까지 계산되고 있었고 또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숫자는 언제쯤 멈추게 될까? 그 순간 나는 그냥 서글펐다. 도라산역에서 멈춰야 하는 서울발 기차도,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통일까지 걸릴 우리의 시간도.


도라산역이란 공간은 아직은 내게 서글픈 곳일 수밖에 없었다.


1박 2일 민통선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는 도라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DMZ와 그 공간 속 판문점. 생각보다 소박하고 작은 건물을 보고 그 자체가 가진 '상징성'이 워낙 큰 것이었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시선이 머문 곳은 두 개의 마주 보는 국기였다. 하나는 남쪽 대성동 마을 한가운데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기정동 마을에 게양된 대형 인공기였다. 두 마을은 불과 1.2km 떨어져 있다.


그 좁은 공간 속 두 개의 이념을 담은 두 개의 국기가 초여름 청명한 하늘 아래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그 순간 그나마 내가 위안을 받은 건 그 공간 어디에도 다른 나라의 국기들이 보이지 않아서다. 첫날 교육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었다. 1945년 9월 9일 일본의 아베 총독이 항복문서에 최종 조인을 한다.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건물 국기 게양대에서 수십 년간 펄럭이던 '일장기'가 내려지고 대신 올라 간 국기가 있다. 바로 '성조기'였다. 일제 통치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로 미군정 통치가 이 땅에 시작된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실이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는 오롯이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다. 눈 앞에서 펄럭이는 두 개의 국기를 보며 나는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전날 캠프그리브스 강의실에서 들은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세워진 비석의 문구를 떠올렸다.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과거를 기억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 조지 산타야나 -



우연히 인생의 이틀을 머물게 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군 부대 캠프그리브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두 개의 국기가 공존하는 DMZ. 이 공간은 과연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국기가 개 뿐이기에 희망적인 걸까 아니면 둘이어서 또다시 절망적까. 민통선 안 'DMZ'가 가진 의미를 우리는 자주는 아니어도 아주 가끔은 되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69년전과 비교하면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되었고  속에서 우리는 진짜 보아야 그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적어도 오늘만이라도 우리는 이 역사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털 사슴의 비밀을 아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