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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y 06. 2019

크리스털 사슴의 비밀을 아는가

[관람후기]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2019. 4월의 어느 날 오후

아름다운 크리스털 사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공간. 그 곳으로 나는 홀로 달려가고 있다. 바로 '공간사옥'  아트 뮤지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다. 그날 여기에서 보낸 2시간. 내게 조금은 특별했던  순간들을 지금부터 담아본다.

출처 : 아라리오뮤지엄 홈페이지

특별한 날 특별한 공간 '공간사옥'

두 달 전 우연히 이곳의 전시정보를 보게 되었고 왠지 혼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4월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내가 날 위해 이런 공간을 선물하면 어떨까. 갖고 싶은 물건이나 돈이 아닌 근사한 '공간'을 나에게 선물하자'. 생각에 즉흥적으로 '한 장'티켓을 예매했다.


막상 그 날되었고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국역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 웬걸. 따스한 봄 햇살은 간데없고 쌀쌀한 바람과 미세먼지가 섞인 우중충한 날씨다. 왜 오늘 굳이 이런 날씨인 거야. 몰아치는 바람을 피해 트렌치코트를 여미면서 15분을 걸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심플+모던 입구..여기 있다!

전시회나 미술관을 갈 때마다 항상 입구에 대한 집착? 이 있는 나. 이날도 예외는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느릿느릿 걸으면서 분위기를 느껴본다. 여기 뮤지엄 정문은 군더더기없는 심플함과 네온 아트로 표현한 간판에서 주는 모던함이 '' 적당한 정도로 묻어나는 분위기 가졌다. 아 여기 뭔가 있다. 나도 모르게 든 생각이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뮤지엄 공간 으로 들어선다.


오후 4시 정각에 시작하는 도슨트 예약을 하고 먼저 혼자 돌아보기로 했다. 비싼 땅 좁은 부지에 한옥과 현대 건축물의 특징이 오묘하게 뒤섞인 공간. 낮은 천장과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다각도로 활용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다. 특히 나를 첫 번째로 맞이한 좁고 가파른 계단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비디오 아트의 전설을 처음 마주하다

그렇게 한 계단 두 계단 올라가서 만난 거장의 작품. 바로 비디오 아트의 대가 백남준이 사망하기 얼마 전에 만든 작품이었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나는 예술에 대해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의 작품 앞에서 다시한번 절실히 느꼈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설치예술가인 그의 작품을 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 솔직히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린아이 같이 해맑은 얼굴로 운전대를 장난스럽게 돌리는 그의 얼굴을 작은 모니터 속에서 처음 마주했다. 나에게 뭐라고 계속 말을 거는 것 같다. 그의 작품, 세계일주 여행을 하기 위한  자동차. 수십 년 전 자동차  작은 위성으로 그는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그의 '모니터 첼로' 어떤 연주보다 특별했다

정말 특별한 작품이다. TV 모니터로 구현한 악기 첼로였다. 소리까지 모니터에서 직접 만들어진 진짜 첼로음이었다. 찌지직.. 찌지직.. 이런 잡음 하나하나까지도  고도로 의도한 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내게 경이로운 예술의 세계였다. 예술로 가능한 분야 과연 어디까지일까?



"나의 예술이 곧 내 삶이고, 내 삶이 곧 나의 예술이다"

예술을 통한 자기 고백. 영국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의 텍스쳐 작품이다. 도슨트 설명에 따르면 이 뮤지엄에서 가장 아끼는 소장품이라고 한다. 이미 반쯤 완성되었을 때 뮤지엄에서 작품 구매를 결정했고 완성 때까지 손꼽아 기다려 이 작품을 받아 설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터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트레이시 에먼. 어릴 적부터  인종차별과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 등 인생의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힘겨운 바닥 인생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고 이렇게 먼 바다 건너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텍스쳐를 통해 그 시간 나의 마음까지 그녀의 삶 속으로 불러들였다.


예술이란 이런 것인가

누군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하지만 작품 위에 수 놓인 그녀의 '언어'들은 너무도 선명했다. 나는 그녀가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그 절규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예술의 힘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인가? 같은 여성이기에. 아직까지는 어쩔 수 없이 종종 상대적 '약자' 일 수밖에 없는 여성. 그래서 공감이 는.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그 무엇. 바로 예술의 힘이다!



말이 말을 탄다

작가 김범의 <말 타는 말> 짧은 영상 작품이다. 이건 대체 왜 여기 있지? 작가의 세태 풍자가 의미심장하다. 말이 말을 타는 건 우스꽝스럽게 보면서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건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를 풍자한다. 순간 나는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내가 가진 무수한 편견에 대하여.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짜일까?

수천 개의 크리스털 구슬로 구현된 픽셀 사슴 두 마리. 계단을 내려오면 이 아름다운 피사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꼭 자기를 봐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이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아름다운 작품. 두 마리 사슴을 보면서 여리기만 한 이 동물이 이토록 경이로운 존재였던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작품에는 비밀이 있다. 바로 크리스털 구슬 픽셀 안에 실제 사슴 두 마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 자세히 보면 투명한 구슬들 너머 사슴의 박제 털이 보인다. 스마트폰 화면, 컴퓨터와 TV 모니터, 영화관의 스크린 등. 우리가 일상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보는 바깥세상은 디지털 기기의 픽셀을 통과해서 보인다. 나는 과연 픽셀  피사체의 진짜 정체를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화려한 크리스털 구슬 피사체로 다시 태어난 두 마리 사슴을 보며 나는 그 속에 박제되어 들어가 있는 사슴이 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 고민했다. 나는 얼마나 제대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내게 보이는 세상은 과연 진짜인가 가짜인가.

1975년생인 일본 조각가 나와 코헤이는 픽셀 사슴 연작시리즈로 우리나라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픽셀 시리즈는 사슴 박제에 다양한 크기의 크리스털 볼을 뒤덮은 작품이다. ‘픽셀’은 디지털 영상에서 화상의 정밀도를 나타내는 픽셀(Pixel)이라는 단어와 생물학적 세포를 일컫는 셀(Cell)의 합성어이다. 박제된 사슴과 크리스털로 덮은 이 작품들은 원래 지닌 색과 질감의 형태를 완전히 해체시켜 전혀 다른 생명체처럼 보인다.



나에게 예술이란

아직은 내게 많이 어려운 것이 예술이란 분야다. 알면 알수록 경이롭고 신기한 분야. 그래서 더 알고 싶다. 아트.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을 바쳐 그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작품들. 그들은 도대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런 것들이 나를 궁금하게 만들  공간을 찾아가 그 작품들 앞에서 함께 고민하만든다. 


새로운 시각으로 나를 보게되는 공간

88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한 우리나라 현대 건축사의 상징적인 존재 '김수근 건축가'사무실을 모던한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한옥 건물 특유의 절제되고 정적인 공간이 시대를 꿰뚫고 삶을 통찰하는 예술품들을 오묘하게 품고 있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품들이 살아 숨쉬는 곳. 정말 특별한 공간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나의 삶을 나의 현재그리고 나의 꿈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게끔 하는 에너지가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은 이 공간의 비밀이었다. 결국은 '나'였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공간!



앞으로가 더 궁금한 '이 공간 속 내 모습'

아직은 내게 많이 어려운 공간이다. 그래서 그 공간 속에 있는 시간 동안 내가 느낀 작은 고민과 사소한 감정이라도 여기에 기록하려고 노력. 왜냐하면 일 년 후 다시 이 공간을 찾을 나는 또 어떤 느낌을 가질무척 궁금하기에. 앞으로가 더 궁금한 이 공간 속 내 모습. 


왠지 매년 생일 즈음 나는 이 공간을 계속 찾게 될 것 같다. 계속 변화하는 나를 확인하는 그 순간을 위해. 벌써 작은 설레임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리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이 곳은 이미 내게 무엇보다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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