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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Feb 08. 2021

"에휴, 아무튼 땡큐! 디카페인커피"

아침 커피 한잔의 단상

얼마만인가.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 한잔을 앞에 둔 여유. 오랜만에 스멀스멀 느껴지는 '쉰다'는 편안함. 거기에 쌉싸름한 커피맛까지 더해지니 세상 오묘한 순간이다.


3주 전 빙판에 미끄러져 부러진 다리뼈가 이제 붙은 건지 바닥에 살짝 다리를 내려놔도 그전의 찌르는 듯한 아픈 느낌이 거의 없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식탁의자에 앉것조차 힘들었는데. 오늘은 한결 낫다. 심지어 나는 의사 선생님이 며칠전 진료에서 당부한 허벅지 근육 운동까지 시도(?)하고 있다. 언제 그렇게 아팠냐는 듯 발목뼈도 내 의식도 지금은 어두컴컴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 밝은 햇살 속을 느긋하게 달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솔직히 예전에는 디카페인이나 인스턴트커피를 도대체 무슨 맛으로 마실까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인스턴트커피의 까지 음미하면서 한잔을 '호로록호로록' 마시고 다. 바로 내린 원두커피만 마셨던 나는 다친 다리 때문에 약을 먹는라 한동안 커피를 끊었다. 그러다가 오래만에 마신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며칠 전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까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꽤나 고생을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디카페인 커피. 그건 내게 인스턴트커피의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찬장에 꽤 오래 쳐박아두었 새 커피잔도 꺼냈다. 금빛 테두리가 있는 화사한 핑크톤의 커피잔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까만 액체'또르륵' 떨어지소리는 가히 환상적이다.


꿀꺽. 차게 식은 마지막 커피를 (종종)남기는 버릇을 가진 내가 오늘은 마지막 커피 한모금까지 하게 비웠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근사한 기분마저 든다.('너무 오래 집에 갇혀 있었나 보다 ㅠㅠ')


디카페인 인스턴트커피를 마지막까지 맛깔스럽게 즐기고 있는 지금 내 모습. 종종 디카페인과 믹스커피를 권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안 마셔요!"라고 툭 하고 내뱉었던 '세상' 가벼운  입이 조금은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햇살까 눈부신 오늘 아침. 디카페인 커피 한잔이 가져온 잠깐의 여유. 커피잔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식탁아래 묵직한 '통깁스'가 단단히 감싼 오른발이 눈에 들어온다. 깁스 사이를 살짝 삐져나온 다섯 개의 발가락들이 순간 무안했는지 허공에서 의미없이 '꼼지락꼼지락' 거린다. 에휴. 아무튼. 땡큐 디카페인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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