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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an 28. 2021

오래된 밥통

1.28. 아침 설익은 밥을 마주하며

10년이 넘은 밥솥이 이제 제 수명을 다한 듯 보인다. 딱히 맛있진 않아도 그나마 먹을 수 있는 밥을 지어주더니 급기야 오늘 아침밥은 설익은 쌀과 진밥으로 2층탑 완벽하게 구축해 놓았다.


이 놈을 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나. 십 년 이상 한 번도 말썽 없이 잘해주던 놈인데 막상 떼어놓으려니 아쉽고 그렇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묵묵히 날 위해 일을 잘하면 아무 관심도 두지 않는다. 막상 고장 나서 내가 불편해지면 그때서야 '이눔이?'하고 '옛다!' 관심이란  던져준다. 결코 따뜻하지도 살갑지도 않다.


그렇게 온갖 눈총과 구박을 받다가 결국 '소생 불가' 판정이 내려지면 몇 천원짜리 'OO동 OOO호 분리수거 딱지'가 붙여져 어두컴컴한 밤중에 아파트 주차장 한편에 쓸쓸히 버려진다.


밥통 하나에 너무 감정이입했나 싶지만 우리네 인생에서 하물며 사람도 그렇게 취급되는 걸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마음이 편치 않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든 오랜 시간 나와 동고동락한 것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크게 다르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밥통아! 너를 한번 더 수리하고 또 지켜보려고. 조금만 더 곁에 머물다 가겠니. 네가 지어준 밥을 먹으며 너에 대한 고마움이라도 후회 없이 표현하고 보내야지 싶다.


"따끈따끈한 보온 재가열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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