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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r 21. 2021

3.21.

서글픔과 함께 걷다

30분 정도 걸었다. 천천히. 음악도 들으며.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침의 여유 그리고 상쾌한 공기였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한걸음 한걸음 소중하게 앞으로 내디뎠다.


두어 달 집에 틀어박혀 책과 글만 가지고 노는 일은 당시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한편으로는 그 시간의 애처로움이 문득 느껴진다.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는 건 사실 슬픈 것이다.


이렇게 집 밖을 나와 뚜벅뚜벅. 두발로 땅의 단단함과 내 체중을 전부 느끼며 걷다보니 이제야 그 시간들서글픔이 수줍게 다가와 슬그머니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그땐 그랬다. 애써 아닌 척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결국 감정은 속일 수 없는 것까. 오롯이 내 두발로만 걷는 것에 대한 소중함. 산책은 너무도 평범한 일상 활동이다. 하지만 막상 그걸 하지 못하게 되면 그 무엇보다도 특별한 것이 된다.


결국.

'작은 것이라도 쉽게 의미 없이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불편함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건 어찌보면 축복이 아닐까. 내가 의미 없이 반복하는 무엇이 그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일 수도 있기에 그렇다.


다시금 그때 내가 길거리에서 평범하게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서글픔을 기억한다. 그리고 선명하게 담는.  서글픔의 기억. 아직도 오른발은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지금 나는 흙냄새 가득 내뿜는 땅을 두발로 느릿느릿 디디며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 그때의 서글픔이 내게 선물한 이기에 더 그렇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 조금은 외롭게 걸었던 어느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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