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지 Mar 18. 2019

눈을 감아야 보이는 전시가 있다!?

[관람후기]북촌 'Dialogue in the Dark 어둠 속의 대화'

2019. 3. 15. 16:00 PM

북촌 '그 어둠'속으로 들어선 날...


별은 밤하늘에 반짝이지만 낮에도 별은 머리 위에 떠 있다. 별은 언제나 하늘에 빛나고 있다
- 시인 박노해 -


특별한 어둠, 그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까. 아니다 눈을 감으니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이 진짜 있었다. 이런 특별함을 전시한 어둠의 공간을 다녀왔다. 북촌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전시. 그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같음'을 느끼게 해 준 아주 특별한 시간을 경험했다. 어둠 속에서는 '나'를 정의하는 개인적, 사회적 위치나 직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저 서로 의지하며 함께 걸어가는 동행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벽들(나이, 성별, 직업, 가치관...)이 제거된 순수하고 동등한 관계. 어둠 속 전시를 보기 위해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와 공유하는 감정들.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전시, 좀 특별하지 않은가?

 

전시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리고 '시각'이 가진 힘

전시라는 것이 꼭 시각적으로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눈에 의해 보이는 것들을 차단함으로써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보여주는 전시. 그게 바로 어둠 속에서 관람객이 찾아내서 보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시각이 가진 압도적인 다채로움으로 인해, 우리는 일상의 다양한 관계와 크고 작은 문제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놓쳐버리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시각으로 부터 해방, 그 다음은?

'어둠 속 대화'속 나는 결코 뒤돌아 눈으로 상대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는다. 대신 뒷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움직임에 집중하기에 뒤돌아 볼 이유도 필요도 없다. '어둠 속의 대화'는 시각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철저하게 배제시킨다. 대신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청각, 통각, 후각 그리고 공간 감각 등 다양한 감각들이 총동원된다. 전시 끝무렵에는 비로소 이런 '마이너 감각들'이 시각을 제치고 '주인'의 최대 관심 영역으로 자리 잡는다.


어둠 속 나에 대한 또 다른 발견

나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동시에 또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전자는 시각이라는 단일의 감각에만 의지해 온 내 나약함의 발견이다. 어둠 속에서 시각을 쓸 수 없을 때 나는 누군가의 손길이 아쉬워지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후자는 시각 이외 내가 가진 감각의 다양성과 그 감각들이 아직도 녹슬지 않았음에 대한 경험이다. 심지어 이 감각들이 나의 관심을 받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우리는 보고싶은 것만 본다

'Dialogue in the Dark 어둠 속의 대화', 그 속에서 나는 내가 가진 나약함과 '우리'라는 동질성을 공유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어둠 속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일상 속 우리는 박노해 시인의 그 별들처럼 '진짜 보아야 할 것들'을 보고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매 순간 내 인생을 'I Draw'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