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지 Dec 04. 2021

'또 다른 빛을 향해'

샤갈 특별전 in 마이아트뮤지엄

햇살이 유난히 눈부신 날이다.

주말아침 버릇처럼 꺼내 입던 시커먼  운동복 대신 오늘은  아이보리색 밝은 상의와 정장 바지를 꺼내 들었다. 머리도 말리고 이방 저방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준비하고 나오니 벌써 출발시간이 15분이나 지났다. 나의 '방앗간 카페'를 들러 토스트와 커피 한잔을 사서 운전석에 앉았다. 텀블러 입구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추었다.

'아차! 이럴시간이 없지. 빨리 가자'


조금 늦은 출발은 고속도로 정체를 여지없이 불러왔다. 서울 시내를 둘러가는 간선도로가 꽤 막힌다. 평소 같으면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올 만도 한데 오늘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서 검지 손가락으로 핸들만 톡톡 두드릴 뿐이다. 


얼마만의 외출인가.

사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저 즐거운 마음, 바로 그것. 몇 달간 지하 1층, 답답하고 형광등 불빛만 가득한 사무실과 집 그리고 인근 등산로만 오고 가기를 반복했다. 그게 감정이든 감성이든 점점 메말라가는  모습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점에. 나는 여길 달려온 것이다.


마르크 샤갈 특별 전시.

내가 샤갈이란 화가를 처음 접했던 기억은 그 옛날 20대 시절이다. 당시 가끔씩 놀러 갔던 유원지에서 보았 '샤걀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 이름이었다. 원래 김춘수 시인의 '샤걀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란 시에서 따온 것인데 그 제목을 조금 바꾼 것이다. 그래서 내게  화가는 그저 겨울날 눈이 오면 함께 떠오르는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예술가 정도다.  


그러나 오늘 잠깐 엿본 샤갈이란 화가의 실제 인생은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이었던 그는 화가가 되어 공산당 집권 아래 불안정한 예술 환경을 피해서 어쩔 수 없이 프랑스 파리로 떠나야만 했다. 낯선 이국땅이었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의 다채로움과 열정이 넘쳐났던 파리에서 샤갈은 예술가적 영감을 충분히 받았던 것 같다. 파리를 배경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길 정도로 그의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은 꽤나 특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 나치군에게 점령당한 파리는 (예전 고향 러시아에서 공산당이 그랬듯이) 예술가들에게 꽤나 불친절했다. 더군다나 유대인이기도 했던 샤갈은 그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도시, 파리에서도 짐을 야만 했다. 미국 뉴욕으로 다시금 생활 터전을 옮긴 후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가지만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학살을 먼 타국에서 지켜봐야 했던 그의 아픔은 점점 어두워지는 그의 그림들의 색채만큼 깊어갔다.


사실 많은 이들이 샤갈을 나 낭만적인 화가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어린 시절 그가 첫눈에 반한 연인이자 첫 번째 아내였던 '벨라'와의 사랑 때문이다.  빨강과 파랑, 회색, 검정 등등. 색채들 간 화려한 대조와 조화가 유난히 돋보이는 그의 그림들을 통해 벨라에 대한 의 사랑은 강렬하면서도 꿈을 꾸듯 무척 몽환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뉴욕으로 이주한 뒤 벨라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샤갈 특유의 낭만성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게 아닐지. 벨라가 죽은 뒤 거의 1년간을 샤갈은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샤갈이 벨라만 평생 그리워하면서 97살까지 살았던 건 아니다. 몇 년 후 8살 연하의 두 번째 부인을 만나 다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며, 유산의 절반을 두 번째 부인에게 남겼을 정도로 애정도 각별했던 것 같다.


여기서 잠깐 샤갈의 친한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피카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피카소도 사랑 없는 삶은 끔찍하다고 말할 정도로 평생 사랑을 갈구하던 화가였다. 샤갈도 마찬가지였지만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집착했다. 피카소가 평생을 어리고 새로운 연인들과의 직접적인 사랑, 거기에서 오는 감정과 경험에 집중했다면. 샤갈은 (벨라와의 강렬한 사랑이 끝난 이후에는) 유대인으로서 종교와 민족성에 대한 표현에 집중하면서 보다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피카소와 샤갈, 두 화가의 사랑에 대한 집착은 평생 이어졌지만 그 대상은 확실히 달랐다. 그들의 작품들이 묘하게 닮은 듯 또 달랐듯이 말이다.


금번 마이아트뮤지엄의  '샤갈과 성서(the bible)' 전시는 샤갈의 영원한 사랑, 벨라의 죽음 이후 그가 보다 집중했던 종교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분명 연인 간의 낭만적인 사랑도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존재와 의미와 관련된 인류와 민족에 대한 사랑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뭘 그런 것까지 고민하면서 복잡하게 살아야 하나 싶은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도 이런 순간이 왔다. 세상에는 아름답다는 말로도 표현이 어려운 '숭고함' 뭐 비슷한 '사랑'이 존재하고 또 그걸 실천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사실. 


오늘 내가 본 샤갈의 사랑이 바로 그랬다. 벨라와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이 끝난 후 인생의 후반기에 비로소 그가 맞닥뜨린 더 깊고 넓은 '사랑'에 대한 의미와 고뇌. 인생의 끝을 향하그의 마지막 작품 '또 다른 빛을 향해'는 또 어떤 의미의 '사랑'이었을지.


노년의 샤갈이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또박또박 써넣은 '또 다른 빛(Another Light)'이란 문구 앞에서. 난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돌아오는 차 안.

문득, 창밖 회색빛 콘크리트 도로 너머로 초겨울 차가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강물이 보인다. 샤갈의 빛과 강물이 사방으로 뿜어내는  빛은 과연 다른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눈을 감아야 보이는 전시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