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연휴를 낀 긴 휴가를 보내고 그저께 오랜만에 출근을 했다. 일주일 공백이 무색하게 여느 때처럼 일에 치여 밤 11시쯤 퇴근을 하는 길. 무거워진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천천히 주자창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후회 비슷한 감정이 밀려든다. '어디 근처라도 다녀올걸...'
8월 들어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고 4단계 조치가 계속 이어지면서 몇 달 전부터 준비한 가족여행을 모두 취소했다. 예약 취소 전화를 받는 숙소 직원도 나도 굳이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얼마나 취소가 많으면 그럴까.
그리고 길고 긴 휴가를 방학을 맞아 늘 집에 있던 아이와 보냈다. 이것저것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고 동네 산책도 다니면서. '아이스 로드'라는 '아들 픽' 재난 영화도 같이 보며 지루함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낸 듯했다.
그럼에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특별함은 어쩔 수가 없었는지. 이미 지나가버린 여름휴가에 자꾸 미련이 남는다. 서해안이든 가까운 바닷가라도 데려가서 소금기 머금은 공기라도 흠뻑 마시게 해 줄걸. 휴가의 마지막 날 왠지 모를 아쉬운 눈빛을 아이와 나는 주고받았던 것 같다.
작년부터다. 여름휴가 때면 늘 다니던 가족 여행이 기약도 없이 딱 멈춰 있다. 엄마가 가진 직업의 부담감을 아이에게 까지 지운 것 같아 괜히 미안하다. '시민들에게 솔선수범... 품위유지.. '. 일을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눈으로 귀로 그리고 느낌으로 각인된다.
심지어 내 손으로 직접 문구를 작성해서(일명, 공직자 복무지침 준수) 각 부서에 문서를 보낸 적도 있다. 동네 마트, 빵집, 커피점. 어딜 가도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없다. 그렇다. 공무원의 코로나 여름휴가는 그래서 집이 제일 편하다. 혹시라도 동선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하나하나 검증의 대상이 될 때를 대비해야 하기에.
어쩌면 코로나19는 '증상 또는 검사 이틀 전부터 동선 공개'라는 규정 하나로 일상에서 더자주 나 자신을 스스로 '검열'하게 만들어버린게 아닐까. 처음엔 나도 '이쯤이야. 설마 걸리겠어.' 하는 안이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이게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거네' 싶어서 순간순간 겁이 났다. 워낙 소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도 (언제라도 공개될 가능성이 있는) 동선에서 가장 무난한 '자택'을 선택한 것이다. 뭐 누군가는 당연한걸 이렇게 써놨네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름 많은 이가 나처럼 집에서 휴가를 보냈을 테니까. 별다를 것 없는 여름휴가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몇 자 끄적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무원의 여름휴가도 옆집 앞집 건너집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는 것.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어딜 가도 안전하지 않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집콕이지만. 대관령 양 떼 목장 풀 먹이기 체험과 휴양림 야외 직불 구이 대신 EBS 닭장 구경 프로그램과 삼겹살 볶음밥으로 어떻게든 아이와 그럭저럭 버텨냈지만.
그럼에도 이번이 제발 마지막 집콕 이길 간절하게 바라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갈수록 집 밖보다 집안에서의 생활이 편해 보이는 아이를 위해 최근에 큰 맘먹고 마련해준 피아노. 내일 개학을 맞아 하기싫은 방학숙제를 붙들고 낑낑대던 아이가 대뜸 그 앞에 앉아 '띵깡띵깡' 연주를 시작한다.
꽤나 경쾌한 영화 OST 곡인데 오늘따라 건반 소리가 유난히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