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원만함

영지의 고민상담실 19

by 영지

"분위기 맞추는 것도 능력 중 하나지."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다 갖췄네, 부럽다!"

"무난하게 일하는 게 좋은 거야."


동료들과 당시 소위 잘 나간다(?)는 직원들에 대해 내심 부러움과 질투심 섞인 마음으로 내가 버릇처럼 했던말이다. 실제로 회식 분위기 맞추느라 (코로나 이전에) 나는 회식자리에서 종종 노래도 부르고 분위기도 곧잘 띄우는 직원이었다. 당시엔 어딜 가든 적당히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바람이 과연 내게 어울리는 옷인지 다시금 궁금해졌다.


사실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과 스스로 진짜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인데 말이다.


나이도 사는 곳도 삶의 경험치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십여 평 남짓 회색빛 사무실 공간에 옹기종기 아침마다 모여든다. 점심시간 띄엄띄엄 비어있는 책상들. 수화기 너머 방학인 아이가 점심을 챙겨 먹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는 통화조차도 조심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저녁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다시 흩어진다. 혹시라도 눈에 띌까 사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곳에서는 과연 어떤 사람이 인정받을까. 주변에 최소한의 폐를 끼치면서 일도 잘하고 심지어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실제 내가 몸담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직원들이 다들 이런 비슷한 모습이다. 조용하고 튀지도 않으면서 일은 척척 잘 해내는.


나 또한 공직 초반에 '원만한' 직장인을 꿈꾸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런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인사담당자가 골라주는 여기저기 사무실의 낯선 자리들을 오가며 새로운 동료들과 마주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얼마나 '원만한' 조직인이 되었을까. 공직에서 버텨낸 시간만큼 내 원만함의 수치도 쭉 같이 올랐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터에서의 내 모습을 냉정하게 보려고 노력 중이다.


괜찮은 사람인'척' 말고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 되는 '중'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이런 모습이 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혹은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욕먹지 않겠다'는 나름의 소신 인지도 모른다) 업무보다는 사람들과의 무난한 관계에 집중하는 것. 한결같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무난한 태도로 늘 주변 사람을 대한다. 그래서 주위에 그(녀)를 나쁘게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딱히 업무적으로도 욕먹을 일도 적다. 왜냐하면 자신의 원만함을 위해 불편하고 욕먹을 일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결정을 미루거나 또는 피하거나'하니까. 그러면서 주변의 (마음 약한)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사람을 대신해서 욕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원만함'이란 태도가 가진 양면성이 궁금하다. 10분짜리 짧은 행사 하나를 려 해도 싫은 소리 아쉬운 소리 들으면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엮일 수밖에 없을 텐데. 어떻게 모든 사람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왜 어떤 사람들은 느긋한 표정으로 보기에도 힘든 과정을 잘 헤쳐나가는 것처럼 보이지?


이런 시각이 '두루두루 평판 좋은 사람들'에 대해 너무 일방적인 인식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다만 '만들어진 원만함'이 줄 수 있는 의외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타고난 원만함'과 재능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분을 만나는 게 너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과연 무엇이 내가 바라봐야 할 방향인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사람들과 큰소리 없이 무던하게 지내는 것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모습일까. 과거에 일터뿐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나는 특유의 솔직함과 직설적인 말투 때문에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사람들에게 치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예전과 비교하면 꽤나 자기 방어적인 사람이 되었다. 좋은 말로 '둥글둥글', 그냥 뭐 더 약아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원만함으로 포장해서 조직의 그럴듯한 일원 인척 하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어졌다. 나는 그냥 '내 일을 할 뿐'. 가끔은 건조한 시선으로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자리를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두식 변호사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이란 책에도 비슷한 문구가 나온다. '만들어진 원만함'이란 말. 사법부에는 독특한 도제식(선배 판사가 신임판사를 대상으로 1대 1로 스승과 제자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는) 교육방식이 있단다. 도제교육을 통해 초임 판사들이 낯설고 거대한 사법조직에서 똑똑한데 '원만하기까지'한 조직원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원만함은 법원의 조직 논리와 선배 판사들이 믿는 가치에 부합하는 신임판사들의 미래의 직업의식과 태도로 연결된다. 튀지 않으면서 조직이 원하는 방식대로 따라주니 이것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탄희 전 판사는 누구나 선망하던 법원행정처 자리를 거부하면서 '만들어진 원만함' 대신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원만함을 선택한 것뿐이다.


일반 공무원 조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법부처럼 일대일 밀착형으로 신참 공무원을 압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투박하고 거친 방식으로 조직에 적합한 인재로 키워진다. 지자체 공무원은 첫 발령이 나면 대부분 동주민센터 민원대나 청소업무에 투입된다. 내 경우는 전임자의 두어 시간 교육만 받고 수억 원짜리 부동산 거래에 필수적인 인감 서류를 발급했었다. 이제 막 첫 근무를 시작한 신규 공무원 이름 세 글자가 방금 쥐어든 발령장의 잉크만큼 선명하고 진하게 인감증명서에 인쇄되어 앞으로 10년 동안 그 공무원을 졸졸 따라다닐 것이다.


"아, 뭐가 이래"

"왜 이리 힘들지. 다들 이러고 일하는 걸까"

"나만 힘든 것 같아"

"빨리 여길 벗어나야지"


능력도 능력이지만 튀지 않는 '평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사문화와 부서장 추천이라는 제도적 장치는 이런 척박한 근무 환경에서 생각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갓 들어와 갑자기 맞닥뜨린 거대한 조직의 실체 앞에서 한껏 위축된 공무원에게는 어느 것보다 쉽게 손이 가는 선택지 인지도 모른다.


조던 피터슨 박사가 쓴 <질서 너머>라는 책에는 형광등 불빛 아래 삭막한 토론토대학 연구실을 좀 더 창의적인 공간으로 바꾸려 했던 경험이 나온다. 어찌 보면 별일 아닌 일처럼 들리지만 이 문제로 박사가 치러야 했던 반발은 예상외로 컸다. 학교 행정실 관계자에게 신이 나서 이것저것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더니 "더는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라"는 거친 반발을 보인다. 박사가 그렇게 하면 다른 연구실도 다 그렇게 하려고 할 텐데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박사는 학교가 왜 그리 부정적인지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미리 준비한 '플랜 b'로 어떻게든 연구실 분위기를 확 바꾸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의 연구실은 입소문을 타고 학교의 명소가 되었고 심지어 학교는 신입 연구원들을 그의 연구실로 데려와 자신들이 얼마나 창의적 연구 지원에 적극적인 홍보했다고 한다. 실소가 나오는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관료제적 성격이 강한 조직에서 튀는 행동과 변화를 위한 시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얼마나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느껴져서 한편으론 씁쓸했다.


토론토대학 이야기에 피터슨 박사는 초식동물인 '누(Gnu)'에 대한 연구 사례를 덧붙였다. 한 연구그룹이 누 무리의 생활을 보다 쉽게 관찰하기 위해 그중 한 마리를 골라 빨간색 표식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개체는 서식지에서 사라져 버렸다. 원인은 바로 그 빨간 표식에 있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주변 맹수들의 먹이가 된 것이다. 맹수들이 원하는 사냥감은 싱싱한 어린 동물도 느리고 병약한 개체도 아니었다. 그냥 눈에 잘 띄어서 같이 사냥하기 좋은 목표물이었다.


'만들어진 원만함'은 어쩌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맹수들의 위협에 늘 노출되는 초식동물의 무리지음과 비슷하다. 튀지 않아야 무리 안에서 쉽게 목표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풀만 먹는 초식동물이 아니다. 무난함보다는 '무한함'이 더 어울리는 존재. 이미 단단하게 갖춰진 조직문화에 나를 맞출지, 혹은 스스로 가슴에 빨간 표식을 달고 작은 변화라도 만들것인지는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다. 국회의원이 되어 사법개혁 법개정에 앞장섰던 이탄희 전 판사, 피터슨 박사의 플랜b 연구실 그리고 빨간 표식때문에 가장 먼저 희생된 누까지. 모두 있는 그대로의 ..이다.


공직 안에서

나는 괜찮은 사람인'척'하는 걸까 아님 진짜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중'인걸까. 아주 가끔은. 내가 걸어온 길을 무심히 뒤돌아봐도 좋지않을까 싶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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