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함도 잠시 나의 눈은 다시금 스르륵 감겼다. 금요일 오후 밝은 햇살이 사각의 창을 통해 전철 안을 군데군데 노랗게 물들인다. 기차의 흔들림과 따스한 햇볕이 사이좋게 의기투합하여 옆자리 과장님과 조금 떨어져 앉은 팀장님까지작은 전철안 승객 모두를 꿈나라로 보내버린 듯 고요하다.
아침 7시 사무실을 출발해 서울시청 근처까지 9시쯤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제시간에 도착하는 기차표는 이미 매진이었고 1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하는 기차표도 겨우 예약대기만 가능하기에 어떻게 갈지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과장님이 지인 중에 개인택시 모는 분을 직접 섭외해주신 덕에 아침엔 사실 조금 편하게행사장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최소인원으로 온라인 생중계를 병행하는 행사여서 행사장은 그다지 북적거리지도 않고 차분했다. 주최 측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마련된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기치 않은 사건들은 언제든지 어김없이 내 앞에 예고없이들이닥친다.
꽤 오래전 브라질 출장 때의 어설픈 9급 공무원에서 십여 년이 흘러 7급 선임이 된 지금의 나.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 나는 많이 달라졌을까. 사실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브라질 출장'을 떠올리진 않았다. 그때의 처절했던 감정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소만 달라졌지 상황은 비슷했다. 낯선 출장지에서 우리 시가 추진한 사업을 발표하는 것과 현장에서 돌발적인 문제가 생겨서 당장 즉석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 등등. 딱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담당 주무관이 30대에서 40대의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럼 과연 흐른 세월만큼 현장에서 담당주무관의 대응도 나아졌을까. 솔직한대답을 여기에다 풀어놔야 할 시간이 왔다.
이번 출장에서는 두 가지 예상 못한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발표 슬라이드를 넘기는 리모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현장에서 미리 장비를 확인할 수 없었기에 과장님이 발표를 시작하고 첫 번째와두 번째 장을 넘기는 과정에서 화면이 안 넘어가면서 뭔가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멀리 청중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스무 장 이상 남은 분량이 나는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순간 '에이! 안 되겠다' 싶어서 장비 스태프 옆자리로 급히 가서 앉았다. 혹시나 해서 여분으로 준비한 시나리오를 펼치고 종이가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발표 내용과 슬라이드를 맞춰서 키보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슬라이드를 마지막 장까지 막힘없이 준비한 설명을 잘 마무리했다. 장비 스태프와 과장님 그리고 나까지 모두 끝나자마자 안도의 눈빛을 교환했다.
작동하지 않은 리모컨 때문에 미안해하는 옆자리 스태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뜨자마자 "카톡!" 같은 팀 직원이 톡을 보내왔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화면을 봤다면서 잘 끝나서 다행이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웃으며 고맙다고 답장을 쓰려는 찰나, 직원이 다시 보내온 톡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어버렸다.
"폰트..."
인터넷으로 송출된 화면에 글자들이 이상하게 깨지고 줄이 안 맞고... 뭐 제대로된 글씨로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사실 이미 예상한 문제였기에 나는 더 당황스러웠다. 혹시라도 글자가 깨져서 나올까 봐 행사 전날 나는 주최 측 담당자에게 슬라이드에 사용된 폰트 파일 몇 개를 같이 보냈다, 심지어 PDF 파일도 함께 보냈건만. 결국, 화면에는 글자들이 흐트러진 상태로 나간 것이다. 행사장의 조그만 티브이 모니터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문제였다.
사실 그걸 가지고 누가 내게 뭐라고 한건 아니다. 오히려 덕분에 발표 잘 마무리했다며 칭찬을 과하게 받았다. 거기에다 행사 후 맛있는 점심과 차까지 얻어먹었다. 배불리 먹은 덕에 사무실로 돌아오는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얼마만인지 모를 기분 좋은 낮잠을 즐기기까지 했다.
사실 문제가 생겼을때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는 것이 가장 쉽게 그걸 이해하고 납득하는 방법이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고해도 내가 그 순간 뭘 더 했어야 그 상황을 막을수 있었을까 생각하기는 더욱 어렵다. 솔직히 이번 출장에서 주최측의 세심하지 못한 준비를 원망하는 마음을 오늘 아침까지도 나는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 매번 이런식의 이해와 정리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순간 멈칫했다.
사실 폰트 문제는 내가 행사장에 도착해서 잠깐이라도 확인하고 보내준 PDF로 바꿔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던 문제다. 주최 측이 알아서 전부 챙겼겠지 하고 무턱대고 믿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연 나는 매순간 최선을 다한 것일까. 과거에 브라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했었고 동시에 실수한 경험도 많은 나. 그런 내게 폰트 문제는 진짜 내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맞는 걸까. 자꾸만 되묻게 된다.도대체 누구에게? 바로 나 자신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가 내게 남긴 것'이란 부제를 붙여 아주 예전 브라질 출장의 기억을 정리했던 2년 전 그때. 아마도 나는 실패와 성공 여부를 떠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경험만이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는 걸 막연하게나마 깨달았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어떤 일의 결과나 의미에 대해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진심으로 물어보기로했다. 자신 외에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
"지난번보다 나아졌어?"
"조금은. 하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어."
전철 안내방송이 목적지 도착을 알렸다.
마지막 덜컹거림과 함께 나는 가방을 챙겨 들고 과장님과 팀장님을 따라 내렸다. 잠깐 눈을 붙인 덕분인지 왠지 모르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지하층 깊이 내려가 다른 노선으로 갈아탔다. 평일 낮이라 좌석이 여유가 있어서 이번엔 셋이서 사이좋게 나란히 앉았다. 문득 과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아까보다 이번 게 훨씬 편하네."
"노선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줄 몰랐네."
"그렇네요..."
나도 몰랐다. 지하철이라고 전부 똑같은 게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직접 타보니 또 아니었다. 형형색색의 지하철 노선만큼 제각각 다른 '덜컹거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