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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un 14. 2019

브라질 출장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가 내게 남긴 것!

스스로 가장 비참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다!

수년전 어느 여름날, 삼바 의 나라 브라질의 수도 리오. 이 화려한  평화롭게 내려다보는 거대한 그리스도상과 마주한 나의 절망감이다. 더없이 이국적이고 성스럽기만 한 석상 앞에서 나는 그토록 초라했는가.


그동안 나는 이 브라질 출장의 기억을 애써 외면하고 나름 논리로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포장해 다. 하지만  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기억을 분명하게 정리하지 않고는 나의 공직을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출국 전 내게는 모든 것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뭐가  볼 줄 아는 능력갖지 못했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 것다. 대신 나는 '막연하고 무모한'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나의 짐 가방 한쪽을 채우기 바빴다. 그렇게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출국장을 분주하게 뛰어다니기 바빴던 담당 주무관, 바로 내가 기억하는 그때의 진짜 내 모습이다. 결국 렇게 평온하게 출발한 (공직에서의) 나의 첫 해외출장은 '최악의 실패'로 끝이 난다.


당시에는 몰랐다. 그 실패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 실패에서 나는 뭘 깨달아야 했는지. 이 물음에 나는 답을 끝까지 찾지 못했다. 이제라도 공직에서 가장 끔찍하고도 절망스러웠던 그 출장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지 '내가 나에게' 털어놓을 준비가 된 것같아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다.


약 2주간의 브라질 출장. 미국을 경유하는 장장 20시간의 이동시간. 그리고 현지에서 3개 도시 방문과 그에 따른 각종 국제회의와 행사 참여가 포함된 상당히 힘든 일정이었다. 민간기업에서 해외출장을  경험했던 내게 출발 전 모든 것들이 매끈한 백자 표면처럼 희망적으로만 보였다. 방문단브라질에서의 첫 숙소를 체크인하기 전까지만 해도.


첫날 저녁부터 뭔가 일이 심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최종 수정해 간 연설문이 무슨 이유에선지 발표할 분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호출되었고, 그리고 심한 질책을 받는다. 나의 공직 인생 첫 해외출장 첫 번째 공식일정은 이렇게 절망감으로 시작한.


심한 질타를 받은 직후 방을 나오면서도 나는 분명히 그걸 수정해서 나의 상사분께 전달한 것으로  임무를 다한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일이 그 전날 밤 있었고, 결국 한국에서 수정해 가지고  연설문은 제시간에 그분께 전달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이 발표 당일이었다.


공무원 조직에서 발표자료와 의전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그걸 처절하게 경험한 것이 바로 브라질 출장이었다. (그 이후 공직생활 10년이 넘은 아직까지도 이 두 가지는 나름의 적정선을 찾고 또 유지하는 것이 한없이 어렵기만 부분이다.)


그 당시 '왜 일이 그렇게 되었지? 내가 뭘 더 했어야 한 거지' 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설기만 했던 이국의 땅. 나는 누구에게도 선뜻 물어볼 수 없었다. 솔직히 그럴만한 용기도 자신감도 내겐 없었다.


혼자 끙끙 앓는 시간이 계속되었고 나는 거의 음식을 먹지 못했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2~3일에 한 번꼴로 국내선 밤 비행기를 타고 2개 도시를  방문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대규모 방문단이었고 역사적인 현장을 함께하는 뜻깊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들을 오롯이 즐길 수 없었다. 능력은 딸렸고 몸만 바빴기에 마음의 여유란게 있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브라질 출장 마지막 날 아침이 다. 그날 아침 내게 남은 건 극도로 '의기소침해진 모습'과 출장을 위해 새로  '은색 단화 한쪽에 난 구멍'이었다. 돌이켜보면 단화에 난  구멍은 내 마음 속 상실감 모습이었다. 구멍난 단화는 거기에 두고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 속 커다란 구멍은 나와 함께 한국으로 동행했다. 당시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회상하는  모습은 바로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정점에 한없이 위축된 공무원일 다.


사실 2주간 거의 행사장 안에서 뛰어다니느라 나는 브라질이란 나라를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머나먼 대륙의 브라질이란 곳을 잠시라도 머물다 왔다고 이야기할 때면 마음 한편이 조금은 불편해 진다.


내 기억 속 브라질은 마지막 날 비행기 타기 전 방문한 리오의 랜드마크 '예수상'이 유일하다. 화려한 축제의 도시, 리오 시내를 양팔로 품는 듯한 인자한 예수상의 모습은 당시 우울함이 온통 지배했던 나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의 바닥을 친 나의 심신이 잠시나마 쉴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현지의 상황은 거의 모든 것이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수시로 떨어지는 지시나 과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조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민간기업에서 다녀온 출장들은 여행사가 다 짜 놓은 일정에 그냥 따라다니는 것에 불과했기에 그 낯선 나라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비영어권이었고 문화가 달랐고 여기처럼 인터넷 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도 아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지 안내를 맡은 가이드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원인은 나의 미숙함이었다. 현지에서 수정된 문서 한장 출력하는 것조차 내겐 어려운 것이었다. 프린트 기계 앞에서 몇시간을 끙끙대다가 결국엔 포기한게 여러번이었다. 또한 행사장의 사전 동선 파악과 현지 스태프들과의 의사소통 문제 등 타국에서 진행되는 행사의 예상 가능한 현장 대처를 거의 못했다고 보면 된다. 국제행사 참가를 위한 사전조사와 준비를 게을리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럼에도 당시에 나는 끝까지 나를 방어하고  합리화하기 바빴다. '브라질이란 나라가 너무 후진적이야' '넌 최선을 다했고 그걸 알려주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야'등등. 얼마나 아마추어적인 사고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심하다. 바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한 '루저'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였기에.


그래서 예수상 앞에서 내가 느낀 비참함은 수년간 내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에도 여태까지 나는 그걸 명확하게 정의하는 걸 의도적으로 피해 왔다.


그러다 며칠 전 어느 일간지 칼럼에서 '최선을 다한 실패'에 대한 글읽게 되었다. 오직 성공만이 답일 것 같은 실리콘밸리 '페일콘'(FailCon), 즉 실패 공유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 '실리콘밸리의 저력은 바로 '실패의 자산화'가 축적되는 과정'이라는 부분에서, 실패에 관대한 문화가 조성된 미국이란 나라의 튼튼한 바탕 느껴졌다.

‘성공적인 실패’는 실패학 창시자인 하타무라 요타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실패학의 법칙》에서 당부한 ‘신뢰와 실패의 자산화’와 일맥상통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수치로 여기는 바람에 실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 기업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2019.6.12.일자 한국경제 천자 칼럼, '보약'이 되는 실패>


지난 브라질 출장이 남긴 실패는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 '실패의 성공담'으로 삼기에도 차마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도 나름 의미가 있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가 무엇을 남기는 지 제대로 알게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실패할지 모른다.


다만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지금의 이 성찰과 반성의 글을 한 번쯤은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다. 나의 다음번 실패에 조금은 희망을 가져도 되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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