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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un 27. 2022

오페라가 흐르는 주차장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오페라주차장

7년 전.

휴직을 훌쩍 떠난 뉴질랜드 어학연수.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되돌아보니 꽤나 많은 걸 경험했다.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오클랜드에 머물면서 나는 틈만 나면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박물관, 도서관, 문화예술 행사장을 찾아 다녔었다.


그중에는 오클랜드 시의회 건물에서 열렸던 '오페라의 유령'이란 공연도 있다. 그런데 몇 년이 흘러 서울 도심에서 그때의 오페라 공연을 떠오르게 는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오페라주차장'이 있는 예술의전당이다. 사실 난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공연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예술의전당 내 미술관의 전시를 보기 위해 매번 그곳 주차장을 이용한 것이 전부다.


차량 내비게이션 검색 목록에 떠있는 '예술의전당

(오페라주차장)'은 목적지 설정을 위해 클릭을 하는 순간만큼은 기분을 살짝 설레게 만드는 그런 곳이다. 무미건조하고 어두컴컴한 '주차장'이란 공간무대 위 화려한 조명과 세트, 연기자들이 만들어내는 격동적인 '오페라'의 조합이 낯설기는 했지만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옛날 적도의 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웠던 도시에서 본 '오페라의 유령'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에 주차장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과거 뉴질랜드로 날아가는 환승 비행기 안에서처럼 마냥 즐겁기만 했다.


오페라주차장은 우면산을 배경으로 지하와 지상층까지 지그재그 형태로 층이 연결되어 있어 주차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조금은 흥미롭다. 처음엔 몰랐는데 다시금 생각해보니 '아아아~아~아' 고음과 저음을 수시로 넘나드는 오페라 가수의 노래처럼. 짧은 시간 오르락내리락하기에 '오페라주차장'이란 이름이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차 방향을 연신 돌린 후 겨우 주차를 하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딱 올라서면.


이번엔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나온다.

왼쪽은 우면산 자락의 푸른 숲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공연장 유선형 지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우측으로는 도심의 세련됨이 잔뜩 묻어나는 수백 개의 직사각형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한가람미술관 건물이 마주 보고 있다. (유리창의 검정 프레임은 노년의 몬드리안이 뉴욕이란 도시의 역동성을 보고 표현한 격자무늬를 연상시킨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사이 공간을 걷는 일은 꽤나 흥미롭다. 녹색과 무채색, 자연과 곡선형의 건물이 주는 편안함과 원색의 각진 유리창들이 곱절로 반사하는 도시의 활기참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사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과한 친숙함 때문에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오페라주차장'은 달랐다. 예전 이국땅에서 본 오페라의 기억을 소환하며 조금은 편안하게 이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 덕분에. 최근 3년 간 한가람미술관에서 앙리 마티스, 피카소, 피노키오, 로즈 와일리,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등 적지 않은 전시를 내 가슴에 그리고 내 기억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


공간이 주는 영감. 그것이 이름이든 부속건물이든 과연 문제가 될까. 나의 발길을 그곳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뭐든. 그 장소는 나에게 특별한 곳으로 다시 태어난다.


김춘수의 '꽃'처럼.

그렇게 오페라주차장은 나에게 와서 '적도의 오페라가 흐르는' 공간이 되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주차장 #한가람미술관 #공간 #뉴질랜드 #오페라의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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