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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an 07. 2023

아직 떠나지 않은 MZ공무원

<월간 지방정부> 2023년 1월호, 기고문

“OO주무관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아, 네. 어떤걸....”(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게, 지난번 보니까 엑셀 엄청 잘하시던데요.”

“혹시 이 함수식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제가 알려드릴 수준까지는 아닌데....”(부끄러운 듯 목소리가 작아진다)

“아니에요. 제가 유독 이런 거에 약해서. 도와주시면 제가 언젠가는 갚을 날이 오겠죠?”

“네, 그럼. 지금 바로 알려드리죠.”(자신감이 붙은 듯 목소리가 높아진다)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나의 책상 모니터 화면을 부지런히 가리키면서 우리 팀 막내 주무관은 엑셀 함수를 내게 알려주었다. 이제 두 달 조금 못되었다. MZ세대 주무관과 내가 한 팀이 된지도. 처음 만났을 때 그 어색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각자 만든 자료에 대한 의견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관계는 만들어 진 것 같다. 다행이다. 바로 어제였다. 그 주무관이 종이 두 장을 불쑥 내민다. 전날부터 나름 고심해서 만든 홍보영상의 스토리 라인이었다. 내용이 어떤지 나의 의견을 구한 것이다. 10년 이상 차이가 있는 후배 공무원을 위한 조언은 늘 부담은 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곧장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솔직하게 생각을 정리해 말해주었다. 자료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다시금 고민에 빠진 얼굴로 그는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더 나은 방법을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 모습이 흐뭇하면서도 내 마음 한편에서는 ‘이걸로 충분할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슬쩍 들고 있었다.


내가 MZ세대 주무관들과 같은 부서에서 일한 건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요즘 만나는 80~90년대 생 공무원들의 모습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그들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변한 것일까. 혹시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혼란스럽다.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MZ세대 공무원들의 퇴직에 대한 기사도 큰 몫을 했다. 사실 내가 근무하는 곳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수개월 전 우연히 들었던 어느 팀장님의 하소연이다. 3명의 팀원 중 갓 발령받아 배치된 20대 직원이 처음부터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퇴직만은 막아보자 싶어서 그 직원의 업무를 팀장과 나머지 팀원들이 나누어 처리하기도 했단다. 그렇게 해서 그럭저럭 6개월 시보 기간을 넘기고 이제 겨우 한숨을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팀장은 물론 나머지 팀원들의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서 나는 MZ세대 공무원의 적응 문제는 어쩌면 공직을 구성하는 전 세대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 나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로 질문을 바꾸어 보자. 전국의 수많은 언론사들이 경쟁하듯 ‘MZ세대의 공직 탈출’ 에 대해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흐름에 감정이입해서 덩달아 실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실 나는 그 조직의 중심에서 14년을 근무하고 있기에 있는 그대로의 내 경험과 사실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일터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는 현실 속 MZ세대 공무원들.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바로 옆자리와 건너 편 자리. 내가 일하는 부서 곳곳에 20~30대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앞서 언급한 그 ‘MZ’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탈출’이 아닌, 나름의 방식으로 ‘워라밸’이든 뭐든 ‘대안’을 가지고 치열하게 시험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가족과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가는 직원도 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못 간 미국 여행을 내년에는 꼭 가리라 의지를 다지고 있는 친구도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지하철로 1시간정도 걸려 도착한 사무실. 입구 바로 앞에 놓인 1미터 남짓의 조그만 탁자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겹겹이 놓인 종이신문들을 꼼꼼하게 읽어 보는 30대 9급 공무원도 있다. 그렇다.


요즘 내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MZ세대 공무원들은 그들만의 개성과 자신감으로 공직 안에서 누구보다 빛이 나고 있었다. 아마 예전부터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원인은 어쩌면 내 안에 있지 않을까. 최근 몇 년 사이 만들어진 MZ세대 공무원에 대한 ‘나의 고정된 인식’에 가려져서. 그동안 거쳐 왔던 부서들 곳곳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을 그들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늘 사고처럼 내게 불쑥 들이닥친다.  


얼마 전 다녀온 1박 2일 부산 출장. 중앙부처는 물론 전국 지자체 공무원 2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바뀌는 제도에 대한 교육을 받는 자리였다. 첫날. 의식행사가 끝나고 이번 교육을 주관한 중앙부처의 담당사무관이 첫 강연자로 소개되었다. 그날이 자신의 ‘20대 마지막 12월의 첫 날’이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역시나 솔직한 ‘MZ세대’다운 모습이다 싶었다. 더군다나 발표 도중 직접 만든 슬라이드의 애니메이션이 작동하지 않자 청중에게 준비한 내용 전달이 제대로 안 될까 무척 안타까워하는 표정에서 나는 다시금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 자석에 이끌리듯 그가 앉은 VIP 테이블로 다가갔다. 간단한 내 소개와 함께 우리 지역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딱히 담당부처의 답을 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정책담당자로써 ‘책임감’ 비슷한 것이 스치듯 그의 표정에서 읽혔다. 당장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만남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리고 정확히 1주일 뒤. 낯선 번호로부터 문자 한통이 왔다. “안녕하세요, OOO님. 그 때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어 문자드립니다!” 그때 부산에서 만난 20대의 사무관이 보낸 것이다. 당시 내가 궁금한 부분을 장문의 메시지로 정리해서 늦게나마 답변을 해준 것이다. 그의 문자는 내게 MZ세대 공무원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바꿔놓았다. 그리고 나는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Am I good enough?”(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을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보다 자국에서 더 인기가 많다는 부인 미셀 오바마의 자서전인 <비커밍>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그녀가 무척 따랐던 아버지는 시카고 시의 상수도 기능직 공무원으로 평생을 근무했다. 이렇게 평범한 흑인 가정 출신으로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고 영부인이 되기까지. ‘흑인과 여성’이라는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평생을 싸우면서 어릴 적부터 미셸 오바마가 수없이 자문했던 것이 바로 ‘Am I good enough?’였다.


며칠 전 옆자리 공무원의 고민에 찬 얼굴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 충분히 그를 믿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MZ세대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고 있다’는 우려는 잠시 뒤로 하고. 나의 위치에서. 나부터 먼저. 그들을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용기. 나는 과연 충분히 보여주었을까? “Good enough is not enough(적당히 괜찮은 것은 괜찮지 않다)”는 과거 애플의 광고 문구가 새삼스러운 순간이다. ‘지방자치’의 시대가 완전히 오기도 전에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지방소멸’이라는 생존의 위기감을 더 절절하게 느끼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 안에서 우리와 함께 묵묵히 애쓰며 아직 ‘떠나지 않은’ MZ세대의 ‘그들다운’ 멋진 공직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월간 지방정부> 2023년 1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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