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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pr 08. 2019

'나는 이 조직을 다니는 게 부끄럽다'

[공직생활]이 생각 바꾸는 데 딱 10년 걸렸다!

 "형편없는 곳이었습니다. 직원들은 고객에게 무례했고 서로서로 못살게 굴었으며, 회사를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즐겁게 출근해서 신나게 일하는 직원 없이는 그 어떤 훌륭한 제품도 나올 수 없습니다.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골든서클(golden circle)로 유명한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의 저서 <Start with Why(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소개된 일화가 있다. 1980년대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미국 콘티넨탈 항공의 CEO로 막 부임한 고든 베튠이 그의 저서 <꼴찌에서 1등으로 From Worst to First>에서 콘티넨탈사의 직원들에 대한 인상을 회상한 내용이다.


베튠의 묘사는 딱 10년  나의 모습이다. 당시 나는 수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두고 공직에 대한 장밋빛 꿈을 안고  조직에  들어온 신참 공무원이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첫 발령지인 동 주민센터 근무. 매일 수백 명이 방문하는 주민센터 민원실은 신참 공직자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발령 첫날. 민원서류 발급에 대한 법령 숙지도 안된 신입  공직자에게 기계적으로 서류 발급하절차와 프로그램 사용법이 전달된다. 1~2 시간 만에 업무 인계를 끝낸 전임자는 바로 본인의 새 업무를 인수받으러 유유히 떠난다. 자 이제 어리둥절한 신참은 민원실 업무의 담당자가  것이다. 실수하면 모든 게 의 책임이다. 민원 발급대 너머 주민 수십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대기콜이 30명 이상 밀려있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 근데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굿굿하게 걸어 나간다. 하지만 마음은 내내 불편하다. 첫 발령지였던 주민센터 민원실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시행되기 전 10월 발령이었던 나는 이듬해 1월까지 매일 수백 명의 민원인들을 대상으로 수십 가지의 민원서류를 발급했다.


사람에게 나는 겉으로만 친절한 척했고 그들이 민원실을 나가면 내게 얼마나 무례했는지 '내 입장에서' 불평을 쏟아냈.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는 방법을 몰랐던 직원들은 끼리끼리 모여 화장실에서 밥 먹는 식당에서 동료 상사를 원망하기 바빴다. 민원실에 앉아 기계처럼 서류 떼는 을 하는 내 모습.  나아가  조직이 창피스러웠다. '힘들게 고생한 수험기간이 고작 이런 걸 하기 위해서였나'하는 후회감이 퇴근 후 온통  머릿속을 채웠다. 그런 나에게 공직의 의미나 사명감? 그런 거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10년 후 2019년 1월

지금 나는 다시 동 주민센터(현재 '행정복지센터' 이름이 바뀌었다) 돌아왔다. 6개월 동안 한시적이지만 자발적으로 여길 왔다. 매일 1시간 민원서류 발급을 다시 고 있다. 나는 이제 민원실을 방문하는 주민이 두렵지 않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해서 왔는지 먼저 반가움을 담아 물어본다. 민원대 너머 서류를 넘겨주고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들이 행정서비스의 최전방인   기분 좋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루 종일 모니터와 전화기만 상대하는 직원들. 아침 인사 외에는 거의 말을 섞지 않는 사무실 풍경. 나는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서너 명의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나의 고민털어놨다. 나름의 진심을 담아. 결국 그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고  3주 전부터 업무 시작 전 '3분 스트레칭'이 사무실에 도입되었다. 직원과 임시 근로 모두가 신나는 음악에 맞춰 팔과 다리를 쭉쭉 뻗는 스트레칭과 스쿼트 15개를 하고 있다. 딱 3분의 변화다. 작은 소통의 시작. 나는 궁금하다. 앞으로 이 사무실이 어떻게 바뀔지.


 부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후배 공직자 2명에 대한 자발적 멘토링을 제안했다. 민원 응대, 법령 해석, 보고서 작성, 실무 등등 내가 가진 10여 년의 공직경험을 그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겠노라 선언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고 '90년대' 후배이 조금씩 마음을 열 기미를 보인다. 겉으론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속은 나름의 고민과 상처가 있었다. 그냥 들어주고 내가 아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것뿐이다. 나는 궁금하다. 3개월 후 이 멘티들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딱 10년 걸렸다. 조직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걸 여기에 풀어놓고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들은 지나  나의 경험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인 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기록이 될 것이다.

이제 앞서 소개한 콘티넨탈 항공 사례의 결과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까지 두 번의 법정관리 신청, 10년 동안 10명의 CEO 교체, 1994년 벤튠 부임 당시 6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이 조직에 과연 변화가 생겼을까. 베튠 취임 이듬해 2억 5천만 달러 흑자 기록했고, 미국에서 일하기 좋은 회사로 명성까지 얻는다. 사이먼 사이넥은 벤튠의 성공 비결을 '신뢰(trust)'라고 말한다. 베튠은 그 자신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는 일에 집중했고, 항공사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비행기를 정시에 운항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미국 10대 항공사 중에서 시간 엄수 부분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던 콘티넨탈 항공. 그는 상위 5위 내 드는 달마다 모든 직원에게 65달러 지급을 약속했고 그것을 충실히 지켰다. 급여와 별도로 지급된 이 보너스 수표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콘티넨탈항공을 최고로 만드는 데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일반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사람들' 굴러가는 조직에서 변화, 혁신, 좋은 리더십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아주 작은 것에 대한 '실천' 이를 바탕으로  '신뢰' 구축이 바로 우리가 찾는 열쇠가 아닐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뭐가 안되 있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조직은 지탱된다 -사이먼 사이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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