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킨라빈스 하프갤런
안 그런 집이 있겠냐만, 우리집은 베라를 참 좋아한다. 최애는 새콤한 맛이 일품인 레인보우 샤베트. 부대찌개나 샤브샤브로 외식하고 나서 다같이 냠냠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어릴 땐 엄마가 파인트로 겨우 하나 사올 때가 많아서 동생과 서로 먹겠다고 머리끄댕이 잡고 싸웠는데, 그럼 아빠가 '제발 음식 갖고 싸우지 않는 품위 있는 딸들이 되어 줘-', 질린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하프갤런 사이즈는 우리집에서 오랫동안 불가침 영역이었다. 한 통에 2만원이 넘는 아이스크림이라니, 그런 난데없는 돈칠이라니. 나날이 깊어지는 뱃골을 고려하면 결국 한입거리일 게 뻔한데 차라리 스크류바 수십 개를 사먹자 싶었다. 하프갤런이란 베라 가판대에서 구색 맞추기 위해 진열한 모델 사이즈, 뭐 고작 그런 것 아닌가.
그런 무언의 규범을 무시하고 처음 그 사이즈를 주문해본 건 2013년 11월 7일, 목요일이다. 이토록 정확히 기억하는 덴 다아 이유가 있다. 내 하나뿐인 여동생의 첫 수능날이었기 때문이다.
동생과 나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생김새와 목소리, 말하는 방식은 똑닮았는데 서로 잘하는 것과 인생에 대처하는 방식이 판이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잘한다(당연한가?!). 겉으로 보기엔 호불호 없이 무난무난해 보여도 그저 티를 안 내는 것뿐, 공부든 사람이든 아니라고 선 그으면 예의상으로라도 나의 자원을 투입하지 못한다. 반대로 동생은 뭐든 꾸준히, 착실하게 한다. 시작부터 발군인 분야는 없어도 굴곡 없이 공부한다. 하하하 웃으며 맛있는 걸 먹으면 어떤 우울감이든 풀 수 있는 효율좋은 스트레스 처리 시스템도 갖고 있어서, 뭐 하나에 사로잡히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완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니 나보다는 동생의 대입에 부모님이 더 기대를 거신 게 당연하리라. 공부는 곧잘 했지만 싫어하는 건 도저히 건드리지 못하는 나의 성적은 입시 내내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고, 거기 지친 부모님은 한결같이 고르게, 혹 이상치가 있다면 합리적 이유가 있는 동생의 수험을 훨씬 반겼다. 이렇게 군소리없이 공부하는 딸이라면 당신들이 원하는 수준도 가능할 거라고, 그런듯 아닌듯 은근슬쩍 지속적인 푸쉬를 넣었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언니가 그냥 잘하기만 했어도 부담스러웠겠으나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안긴 후에 돌아온 관심이라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순한 동생은 그런 티를 안 냈다. 그저 꾹꾹 누르며 공부하다 너무 버겁고 서러워지면 제 방에서 혼자 조용히 울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너는 어떻게 그러니, 나는 엄마가 한 마디만 해도 온 마음을 다해 정성스럽게 싸우게 되는데.' 동생의 대답은 얘가 내 혈육이 맞나 싶을 만큼 모범적이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잘 되길 바라서 그러는 거니까, 괜찮아.' 와우. 놀라면서도 한편 미안했다. 결국 내 탓이 아닐까. 내가 받아주지 않은, 그리고 견뎌내지 못한 어른들의 기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애에게로 쏠려버린 것 아닌가. 얼른 동생의 수험이 끝나서 그 애가 자기 방에서, 옥상에서 몰래 우는 일이 없길 바랐다.
그런데 대망의 수능날. 시험이 끝나면 동생을 픽업해올테니 외식하자던 엄마가 수능 종료시간 한참이 지나서도 전화가 없었다. 무슨 일이지? 의아함과 불안감이 교차한 나는 간신히 엄마와 연락이 닿았는데, 수험장에서 학생들이 다 빠져나온 후에도 동생이 안 나오고 있다고 했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싸해졌다. 일단 식사하기로 한 이수역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동생과 엄마를 기다렸다. 대학 근처 번화가인지라 사방엔 대중가요가 넘쳐나고 슬슬 연말 분위기가 가득했는데, 문득 첫 수능을 조지고 반쯤 울먹이며 그 곳을 걷던 이 년 전 내 모습이 어른거렸다. 불길했다.
한 시간이 못 돼 나타난 동생은 이 년 전의 나와 정확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머리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때껏 함께 온 엄마에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동생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꾹꾹 참아온 울음을 터뜨렸다. "어, 언니, 흑, 나, 끅, 망했, 어. 나, 끅, 어, 흑, 떡해." 눈물이 멎을 줄 몰랐다. 이수 사거리 한복판에서 통곡소리가 층층이 높아졌다. 나는 괜찮아, 에잇 그쯤 재수하면 돼- 눙쳤지만, 식사 내내 줄줄이 걸려온 아빠, 할아버지, 삼촌, 고모들의 전화는 동생의 눈물이 마를래야 마를 수 없게 했다. 결국 식당을 나올쯤 우리 자리에 남은 거라곤 산처럼 쌓인 젖은 냅킨과 깨끗하다시피 한 동생의 앞접시 뿐이었다.
위로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당최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같은 상황을 겪어봤지만 이런 건 위로받는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라서, 무슨 말을 하든 눈물의 기폭제가 되고 만다. 지친 동생은 이제 집으로 가자며 절인 배추처럼 늘어졌다. 그 애를 끌고 걸어가는데 마침 딱 내 눈에 베스킨 라빈스 간판이 보였다. 그래, 저거야-! 마침 과외를 세 개씩 하던 나는 현금 부자였고, 여느 때보다도 강력한 게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생애 처음 하프 갤런을 주문했다.
처음 사본 하프갤런은 크고 묵직했다. 계속 울기만 하던 동생도 그만한 사이즈는 처음 본지라 울음을 그치고 순진하게 물었다. 언니 그거 패밀리야? 아니, 하프갤런이야- 뿌듯하게 말한 나는 뭘 이렇게 비싼 걸 샀냐는 엄마의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다른 손엔 동생 손을 잡고 집에 갔다. 그 날 동생은 두 시간 동안 울면서 하프갤런 아이스크림을 밥 대신 먹었다. 맛있다고 웃다가 자기 수능 생각이 나면 이제 인생 망했다고 울었다. 너무 짠한데 웃긴 그 짓을 저녁 내내 반복했다. 아이스크림 값이 아깝지 않은 구경이었다.
동생은 결국 재수를 했고, 제가 원하던 대학에 무사히 들어갔다. 그리고 하프갤런 통을 안고 울면서 먹던 날이 까마득할 만큼 나이들어(?) 버렸다. 이젠 취준을 한단다. 내일이 면접이란다. 평생 동생이 애일 거라 생각한 언니는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오늘, 칠 년 전 어느 수능날처럼 하프갤런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살뜰한 말을 잘 뱉지 못하는 내게 이건 최선의 응원이니. 너를 위한 애정이니.
많이 먹고 쑥쑥 자라라, 동생아. 레인보우 샤베트만큼 상큼하게, 슈팅스타만큼 통통 튀듯이.
너는 어디서든 사랑받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