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식 까르보나라
유튜브에 ‘이태리식 까르보나라’라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영상이 하나 있다. 안토니오 까를로쵸(Antonio Carluccio) 할아버지가 알려주는 “Real Spaghetti Carbonara”라는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AAdKl1UYZs
여기서 까를로쵸 할아버지는 크림이 아닌 달걀을 이용한 까르보나라 소스를 선보인다. 아주 분명한 영어로 크림은 ‘Absolutely forbidden’이라 단도리하시며, 달걀 소스 만드는 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정하게 알려주신다. 재료도 별 거 없다. 달걀, 파마산 치즈가루, 후추, 베이컨, 파스타면, 끝. 때문에 영상을 처음 본 몇 년 전, 우리 집 겁 없는 요리사던 나는 보자마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까를로쵸 할아버지의 리얼 까르보나라를 시도했다. 크림 까르보나라라면 크림을 먹지도 못하던 중학생 시절부터 마스터한 내가 아닌가. 하물며 재료도 간단한 이태리식 까르보나라쯤이야!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며칠 간의 대재앙이 시작됐다.
보통 파스타 요리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스터 순서는 이렇다. 토마토 파스타 -> 크림 까르보나라 -> 오일 파스타. 물론 내 뇌피셜이지만, 전반적으로 저 순서로 가야 요리 난이도가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데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맛들리는 순서이기도 하기에 꽤 정확하리라 본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저 뒤에 또 다른 단계를 더 붙이자면 나는 이태리식 까르보나라를 넣고 싶다. 재료가 단순하고 조리법이 만만한 데 비해 요리 테크닉이 가장 필요한 파스타이기 때문이다.
이태리식 까르보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달걀 소스의 농도점을 찾는 것이다. 달걀은 우리가 거의 매일같이 먹는 흔한 식재료이지만 한편으론 그 재료의 특성과 활용법을 온전히 숙지하기 까다로운 재료이기도 하다. 괜히 ‘집밥백선생’에서 백종원 아재가 달걀 프라이부터 시켜보는 게 아니다. 익히는 시간, 조리 속도, 활용법에 따라 달걀의 맛과 텍스쳐가 예민하게 달라지기에 짧은 시간 내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나는 까르보나라를 가장한 달걀 볶음면을 사흘 내내 먹고 나서야 그 재료의 예민성을 오롯이 실감할 수 있었는데, 그 즈음엔 이미 달걀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다.
마침내 까를로쵸 할아버지가 만들었음직한 까르보나라 만들기에 성공한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소스를 면에 부은 다음 불을 켰다 껐다 난리부르스도 떨어보고, 가스레인지 대신 전자레인지도 써보고, 처음부터 파스타볼에서 소스를 비비기까지 해 보며 얻은 결과물이었다...! 글로 설명하긴 조금 어렵지만, 내가 찾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삶은 파스타면을 베이컨과 그 기름에 잘 코팅시키고 나면, 가스불을 약불로 줄인다.
2. 1 위에 달걀 소스를 붓고(주걱으로 그릇 바닥에 남은 소스까지 긁어낼 시간은 된다!) 바로 팬의 불을 끈다.
3. 팬의 잔열을 이용해 소스와 면을 잘 뒤섞고, 아직 달걀 소스가 살짝 끈적이는 물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릇에 담는다. 이때 그릇에 옮겨지는 동안에도 달걀 소스는 면의 온기 탓에 계속 익기 때문에, 아직 소스가 액체에 가까울 때 그릇에 옮기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스테이크를 만들 때 레스팅 과정 중 고기 속이 계속 익어가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 헷갈린다면 차라리 덜 익힌다는 기분으로 꺼내버려라.
4. 혹 아무리 봐도 덜 익었다 싶으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5초 단위로 돌린다. 이때 절대로, 절대로, 달걀말이처럼 보이는, 스펀지처럼 익은 부분이 생기면 안 된다! 그건 까르보나라가 아니야! 달걀 볶음이야!
유난 같아 보이겠지만, 완벽한 이태리식 까르보나라 만들기에 성공한다면 단박에 이해하시리라. 첫 입을 먹는 순간 깨닫는다. 어째서 미국인들이 이태리식 까르보나라를 먹고 크림소스를 떠올렸는지. 이게 과연 내가 알던 달걀이 맞나 싶을 만큼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한편 깊숙하게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남들이 잘하지 않는 홈메이드 파스타라 손님 대접하기에도 제격이다. 성공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요리기 때문에 나는 가능하면 손님상엔 올리지 않지만, 성공한다면 ‘있어빌리티’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동시에 달걀 소스의 농도점을 찾는 그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동안, 우리네 일상사에도 이토록 애매하고 오묘한 지점을 찾아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반추하게 된다. 인간관계도, 글쓰기도, 업무도, 너무 안 익히면 날비린내가 나고 너무 익히면 퍽퍽한 볶음 요리가 되지 않은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부드럽고 고소한 맛의 정점을 찾아내는 것, 우리의 매일도 사실 이런 까르보나라와 같은 순간의 연속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