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립학교의 백인 담임 선생님과 이민자 보조 선생님
어느 평범한 저녁시간,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쏟아내고 있었다.
둘째가 말하길, 캉틴 (cantine, 학교식당)에서 몇몇 아이들이 심하게 떠들어서 벌을 받았단다.
선생님이 크게 소리치며 아이들을 혼냈다고 하자, 첫째가 하는 말.
"그 선생님은 피부가 까맣지?"
첫째의 이 짧은 질문에는 파리 보통 공립학교의 여러 현실이 담겨 있다.
아이의 추리 경로를 짐작해 보면 이러하다.
캉틴에서 일어난 일이니, 일단 담임 선생님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모든 담임 선생님은 백인 여성이다.
반면 점심시간과 그 앞뒤 노는 시간, 특별활동 시간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다.
출신 국가로는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등의 불어권 아프리카나 아랍 국가가 많고,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의 서남아시아 국가도 있다.
아이가 말한 대로 "피부가 까만" 선생님들이다.
한국말로는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다 선생님으로 통칭하지만, 불어 호칭은 확연히 분리되어 있다.
매트르/매트레스(maitre/maitresse)는 초등교육(l'éducation primaire)으로 분류되는 마테넬(3-5세)과 엘레망텔르(6-10세) 학교의 담임선생님이다.
교육부에 소속된 국가 공무원이며, 국가 교육과정에 따른 정규수업시간을 책임진다.
앗셈(ATSEM: Agents Territoriaux Spécialisés des Écoles Maternelles)은 마테넬 학교의 보조교사이다.
3-5세 아이들이 다니는 마테넬 학교인 만큼 어른의 손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업 준비 및 진행, 교실 청소, 아이들 낮잠시간 등을 돕는다.
AEPE(Accompagnant Éducatif Petite Enfance)라는 아동교육 보조교사 자격증을 필요로 하며, 시에서 관할하는 선발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아니마터/아니마트리스 (animateur/animatrice)는 폭넓은 의미로 다양한 활동의 진행자를 뜻한다.
학교에서는 정규수업 외 시간을 담당하는데, 크게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관리한다.
둘째, 일주일에 두 번, TAP(Les temps d'activités périscolaires)이라고 불리는 특별활동시간에 여러 가지 활동 - 뜨개질, 보드게임, 체스, 영화감상, 줄넘기, 블록놀이, 독서 등등 -을 지도한다.
셋째, 오후 네시반부터 여섯 시까지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한다.
아니마터/아니마트리스는 파리시에 고용된 인력이며, 마테넬 학교에서는 앗세요 교사가 아니마터/아니마트리스 일까지 하기도 한다.
정리해 보면, 초등교육기관인 마테넬과 엘레망테르 학교의 인력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학교장을 필두로 하는 담임선생님들,
두 번째는 REV(Responsable Educatif Ville: 지자체 교육 담당자)를 필두로 하는 보조교사(앗셈) 및 활동지원교사들(아니마터/아니마트리스)이다.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을 함께 가르치고 보살피는 협력 관계에 있지만, 이 두 집단 간에는 분명한 장벽이 존재한다.
우선 시각적으로 첫 번째 그룹은 모두 백인이면서 대부분 여성이고, 두 번째 그룹은 예외 없이 이민자 출신이다.
눈으로 보지 않고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이름만 들어도 어떤 팀(?)에 속한 선생님인지 알 수 있다.
버지니(Virginie), 오헬리(Aurélie), 티팬(Tiphaine), 마농(Manon), 파스칼(Pascale), 프랑수아즈(Françoise) 등 전형적인 불어 이름은 담임 선생님들이다.
바이쟈(Baija), 사미아(Samia), 노리아(Noria), 수마티(Sumathi) 등 다소 생소한 이름들은 담임 선생님이 아닐 확률이 크다.
두 팀으로 나누어진 교사들 사이에서 학부모가 혼란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학업이나 태도에 관한 문제는 담임선생님과 상의하지만, 그 외 점심시간이나 특별활동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담임선생님 업무 밖이다.
지난 학기에 한 아니마트리스가 방과 후 활동 시간에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동안 개인적인 통화를 하고,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매번 소리를 지르며 다그치는 일이 있었다.
몇몇 학부모가 학교 측에 항의를 했는데, 교장 선생님은 본인의 권한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
보조교사들을 관리하는 REV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주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덧붙여 해당 아니마트리스가 소리를 지른 것은 맞으나 일부는 '문화적인 차이'도 있다고 설명했단다.
아랍 출신의 아니마트리스가 고성으로 말하는 게 그 문화권의 소통 방식이라는 것인데, 학부모 입장에서 시원한 답변은 아니다.
국가에서 인증한 교사 자격증을 가진 담임교사와 특별한 자격요건 없이도 지원할 수 있는 아니마터/아니마트리스 사이에 존재하는 질적 차이.
이것은 내가 프랑스 학교의 학부모로서 느낀 몇 안 되는 아쉬운 점 중 하나이다.
나의 염려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의 첫 7-8년은 무의식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다.
7-8세가 되어 비판적 사고에 눈을 뜨기 전까지, 아이들은 주변 어른들과 본인이 속한 공동체의 신념을 의심 없이 흡수하고 내면화한다.
이때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 중 '흰 피부'의 선생님들은 늘 불어와 수학을 가르쳐주고, '까만 피부'의 선생님들은 늘 교실 청소를 하고 급식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다면?
인종에 따른 직업과 역할에 대한 아이들의 무의식 형성에 상당항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한다.
시민 5명 중 1명은 이민자이고, 유럽에서도 가장 큰 다문화 도시로 꼽히는 파리.
이곳에서 이민자들이 상대적으로 열약하고 임금이 낮은 직업군에 집중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학교 밖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매일 마주치는 쓰레기차 아저씨들도, 공원에서 만나는 누누(베이비시터)들도 대부분 흑인 또는 아랍계 이민자들이다.
사회경제적 구조의 한계를 이해하면서도, 아이들이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사는 집, 먹는 음식, 입는 옷, 어느 하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돼.
모두 누군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거야.
모든 일은 다 중요하고 소중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더 좋고 나쁜 일은 없는 거야.
학교에서, 길에서, 가게에서... 우리가 하루 중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