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육아, 도대체 뭐길래?
2012년 첫 출판된 <프랑스 아이처럼> (Bring Up Bébe)은 미국 전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까지 큰 인기를 얻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십 년 전.
내가 프랑스에서 신혼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이 예쁜 보라색 책을 선물해 주었는데, 사실 그때는 '내가 당장 아이를 가질 것도 아닌데 무슨 이런 책을 선물했지?' 하며 책장에 박아두었었다.
일 년 후, 계획에 없이 첫째가 생기고 나서야 펼쳐든 <프랑스 아이처럼>.
하룻밤새 단숨에 읽어버렸고, 임신과 초기 육아 시절 내내 침대맡에 두고 지냈다.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해 프랑스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미국인이자 전직 기자인 작가는 프랑스에서 경험한 출산과 육아를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으로 풀어냈다.
밤새 통잠을 자는 아이, 음식 투정을 하지 않는 아이, 어른들과 함께 얌전하게 식사하는 아이, 인사성이 바른 예의 바른 아이...
<프랑스 아이처럼>에 등장하는 프랑스 아이들은 하나같이 꿈의 나라에서 사는 유니콘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유행어가 되어버린 '프랑스 육아'라는 게 정말 이런 아이들을 만들어 내는 걸까?
우리 아이도 이런 유니콘이 될 수 있는 걸까?
한동안 나의 아이를 '프랑스 아이처럼' 키워보려고 부단히 애썼다.
어느덧 십 년이 흘렀고, 그 사이 나는 두 아이를 모두 파리에서 낳아 학교에 보내는 연차가 꽤나 쌓인 엄마가 되었다.
프랑스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이 아니라 나의 이웃이고 내 아이들의 친구이며, 지구별 아이들의 보편적 특성을 똑같이 가지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들 또한 여느 아이들과 같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고, 놀기 좋아하며, 배고프면 울고 원하는 것에 떼쓴다.
성장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고, 애착과 보살핌을 갈구하는 본능에 충실한 보통의 아이들이다.
나는 '프랑스 육아' 혹은 '프랑스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여러 글들을 써오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키워드들에는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듯하다.
한쪽에서는 <프랑스 아이처럼>에서 처럼 부모나 교사가 설정한 경계 안에서 아이들이 주체적이고 즐겁게 자라나는 이상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른과 아이가 '따로 또 같이' 협력적인 관계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면이 강조된다.
다른 한쪽에서 프랑스식 육아나 교육은 지나치게 엄격하며 감정억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규율과 경계를 중요시하는 프랑스 부모나 교육자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겉보기에는 순응적이나 내면에는 위축되고 긴장된 감정상태를 가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써온 글들은 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내 생활 반경 내에서 만나게 되는 프랑스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기록한 관찰일지에 가깝다.
프랑스의 육아나 교육에 대한 정형화된 모델을 제시하기에는, 일단 방금 내가 사용한 '프랑스 부모'라는 말 자체부터 허점을 가진다.
일상에서 이민자, 단기체류자, 여행객들이 한눈에 걸러질 때도 많지만,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내 주변만 봐도 미국계 프랑스인 아빠와 남미계 미국인 엄마 부모, 캄보디아계 프랑스인 엄마, 스스로 반은 이탈리아인이라 칭하는 (근데 이탈리아어는 못하는) 반프랑스인 엄마, 18세에 모로코에서 이민온 프랑스 국적 아빠, 당연히 프랑스인인 줄 알았던 불어가 완벽한 러시아인 엄마 등등 -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부모들이 있다.
이런 모두를 어찌어찌 '프랑스 부모' 안에 묶어 넣는다 하더라도, 그다음 문제가 또 있다.
그들이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매우 단편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내가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모습 전부를 알 수 없듯이.
그럼 프랑스 부모들은 프랑스 육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주변 프랑스인 부모들에게 '프랑스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프랑스 육아가 해외에서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꺼내면 더 놀란다.
그러면서 나에게 되묻는다.
"그래서 프랑스 육아가 뭐야?"
프랑스 부모들도 모르는 프랑스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나만의 육아를 찾기 위함이다.
이러한 노력은 다양성에 대한 나의 강한 신념과도 연결된다.
나는 생명, 문화, 사상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다양성을 옹호할 뿐만 아니라, 다양성이 우리 생존에 필수조건임을 믿는다.
유전적 다양성을 무시한 채 개량된 옥수수나 바나나는 강한 생존력을 앞세워 생산량을 독점했으나, 그에 특화된 전염병이 나타나자 속수무책으로 종 전체가 멸종될 위기를 맞았다.
획일화된 조직, 문화, 사회 또한 한 때 안정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것에 대적하는 단 하나의 위협 혹은 대안이 나타나면 금세 무너져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육아와 교육이 단단하고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육아문화와 교육철학에 대한 탐구와 이해가 필요하다.
그들의 속마음, 집안사정까지는 다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표면적으로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들어 죽겠다 말하는 프랑스 부모는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또한 단편적이고 과장된 내러티브일지는 모르겠으나) 육아를 하며 마음과 정신이 가난해져 가는 한국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는 매일 같이 들려온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다양한 육아의 형태가, 이 간극을 설명하는 데에 조금의 도움이나마 되길 바라는 마음.
이것이 내가 '프랑스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