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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할로윈 풍경

'미국산 단발성 유행'이 파리 시내를 점령하기까지

by 지은필

프랑스 생활 첫 해였던 10년 전 10월 어느 날, 동네에 서너 살짜리 아이들 스무 명 정도가 각양각색의 코스튬을 입고 걸어가고 있었다.

근처 국제학교의 할로윈 행사날이었던 것.

그런데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그걸 보고 혀를 끌끌 차시는 게 아닌가.

마녀, 좀비, 해골 등으로 분장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혼잣말은 대충 '말세다 말세'하시는 듯했고, 외래종 문화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프랑스도 참 많이 바뀌었다 싶은 것 중 하나가 할로윈 풍경이다.

첫째 딸의 생일이 할로윈 날이라 우리 가족에게 할로윈은 아이의 생일에 특별한 재미를 더해주는 수단이 되어왔다.

5-6년 전만 해도 주변 프랑스인들에게 할로윈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날'이었다.

어느 할로윈 날, 미국 친구가 주최하는 '트릿 오 트릭 (Treat-or-trick)'을 하러 코스튬을 입고 길을 지나가는데 모든 이의 의아한 눈빛이 우리 가족에게 쏟아졌을 때 그 어색함이란.

또 잭 오 랜턴을 만들 호박을 사러 파리 외곽에 있는 농장까지 찾아가곤 했고, 할로윈 장식은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족을 만나러 갈 때 미리 사두었었다.


PXL_20211031_094631597_exported_499_1702931694704.jpg 2021년, 미국인 친구가 주최한 할로윈 이벤트

언제부터인가 파리에서도 할로윈이 되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분장을 하고 거리를 걷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작년부터는 할로윈 호박을 우리 집 일층에 있는 슈퍼에서 손쉽게 구하고 있고, 10월이 시작함과 동시에 할로윈 장식을 하거나 할로윈 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아졌다.

예전에 할로윈 행렬을 하던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차시던 할머니가 보시면 기함하실 일이다.


프랑스에 할로윈 문화가 대규모로 유입된 건 비교적 최근으로, 미국 대형 브랜드들이 주도한 마케팅의 영향이 컸다.

1990년대에 파리 디즈니랜드가 처음으로 할로윈 축제를 열었고, 맥도날드와 코카콜라가 호박, 유령, 검은 고양이등의 이미지를 활용한 제품들을 내놓았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단기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과도한 상업화와 반미감정이 맞물려 금세 역풍을 맞았다고 한다.

특히나 할로윈 다음날인 11월 1일은 프랑스의 큰 휴일인 투쌍(Toussaint: 모든 성인의 날)인데,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경건하고 오랜 전통에 반하는 할로윈의 장난스럽고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반감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할로윈은 2000년대 중반 자취를 감추었다가, 2010년대부터 천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목격한 할로윈의 부활은 첫 등장과 다르게 일상에서의 뿌리가 깊어진 듯 보인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 할로윈의 규모가 커지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아이들 학교에서 할로윈 장식을 만들어 오는 것도, 동네마다 자체적으로 할로윈 행사를 조직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는 것도 불과 지난 2-3년간 일어난 새로운 변화이다.

올해는 동네 공원에 대형 귀신의 집을 설치하고 밤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까지 선보였는데, 입장권이 꽤나 비싸서 놀라기도 했다.

적어도 도시의 아이들과 젊은 층 사이에서 할로윈은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축제날로 자리 잡은 듯하다.

20241031_171314.jpg 우리 집 연중행사인 할로윈 파티 (2024)
20251031_170854.jpg 우리 집 연중행사인 할로윈 파티 (2025)

매년 아이의 생일 겸 할로윈 파티를 작게 열어 주변 지인들을 초대하는데, 늘 할로윈을 챙기는 미국, 캐나다, 영국 친구들만 초대하다가 작년부터는 주변의 프랑스 이웃과 친구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최애 캐릭터로 변신한 아이들과 사탕 바구니를 들고 찾아온 부모들은 모두 할로윈을 익숙하게 즐긴다.

그러면서 프랑스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나 때는 말이야, 할로윈이 뭔지도 몰랐어!"


한국의 할로윈 또한 프랑스와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과거에 영어유치원이나 외국인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축제로 존재하던 것이 최근에는 놀이동산이나 지자체의 행사 테마로 자리 잡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문화가 되고 있다니 흥미롭다.

재미와 상업성을 연료로 하는 한국과 프랑스의 할로윈 문화가 어떻게 진화하고 과연 살아남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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