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평등 체제"와 "불평쟁이 프랑스인"에 대한 느슨한 고찰
최근에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지난 4월 자 르몽드 기사였는데, 제목이 이러하다.
« Les parents français sont les champions d’Europe du pessimisme parental »
프랑스 부모가 유럽에서 '부모 비관주의'로 챔피언이라고?
'부모 비관주의'라는 말부터 궁금증을 자극한다.
유럽 출산율 부동의 1위 나라인 프랑스인데, 부모가 되는 것에 그렇게 비관적이라면 왜 아이를 계속 낳는 걸까?
르몽드 기사는 프랑스 사회학자 로망 델레스 (Romain Delès)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유럽 14개국을 대상으로 한 2012년 설문에 따르면 프랑스 부모의 41%는 "자녀가 본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라고 답했는데 이는 노르웨이(9%), 덴마크(14%), 아이슬란드(7%), 핀란드(5%)와 같은 북유럽 국가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또한 프랑스 부모의 74%는 자녀로 인해 경제적 부담 느낀다고 답했는데, 이는 포르투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델레스는 "불평등한 (성) 평등 체제"(régime d’égalité contrariée)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프랑스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남성의 가사·육아 참여가 충분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이중 부담(double journée)’이 지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유럽 국가, 특히 스웨덴의 경우,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장기 육아 휴직 제도와 남성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를 중시하는 문화적 가치관이 부모들의 양육에 대한 비관주의를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이방인 관찰자 시점에서 주변 프랑스 부모들을 탐구해 온 나는 적잖이 놀랐다.
유행어처럼 번졌던 '프랑스 육아'는 부모가 편안하고 행복한 부모 중심의 육아 아니던가?
수치 상으로만 보면 이제는 '프랑스 육아'를 연구하는 대신 '북유럽 육아' 또는 '스웨덴 육아'를 추종해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델레스의 연구에는 몇 가지 허점이 존재한다.
우선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는 13년 전인 2012년 설문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어 이 결과가 지금도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내가 프랑스에 도착한 2015년부터 10년 간 살펴보면, 프랑스의 양성평등지수는 꾸준히 향상되어 왔고, 유럽 평균치를 웃돌고 있다.
이에 따라 가정 내 양성평등 의식 또한 개선되어 왔을 가능성이 크다.
주변 가족들을 보면 아이들의 등하교, 학교 행사 참여, 장보기, 식사 준비 등등 가사와 육아에서 엄마와 아빠가 고루 역할을 분배한다.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를 위해 2021년에는 기존에 14일이던 남성의 유급 출산휴직이 두 배인 28일로 늘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레스의 주장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사회 변화에 있어 제도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책만 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이에 상응하는 문화적 규범과 사회적 공감이 따라와 주어야 한다.
후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가족 정책은 역사적으로 워킹맘을 지원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만 3세부터 제공되는 무상교육 등에 힘입어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대되는 동안, 이에 비례한 남성의 육아 및 가사 참여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여성들은 집 밖과 집안에서 두 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시기 봉쇄기간은 이러한 '이중 부담'을 지고 있는 엄마들에게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다.
'부모 번아웃 (Le burn-out parental)'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육아의 지친 부모들을 위한 사회문화적 논의와 지원이 활성화된 것이다.
덕분에 부모(주로 엄마)가 수용범위 이상의 육아를 감당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개인적인 의구심을 덧붙이자면, 델레스의 연구에 평소 불평을 많이 하는 프랑스인들의 특성이 반영된 건 아닌가 싶다.
외국인들이 프랑스인들에 대해 자주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늘 기분 나빠 보인다는 것이라는데, 사실 프랑스인들에게 불평은 일상적인 대화법이자 관계 형성의 도구이다.
프랑스는 공개적으로 비평이나 불만을 표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개인이 삶의 질을 낮게 느낀다는 뜻은 아니다.
이를 테면 우리 집에 놀러 온 부부가 두 시간 동안 "울랄라, 애들 키우기 너무 힘들다!" 한탄을 하지만, 표정은 신이나고 손에는 샴페인잔이 들려있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겠다.
'멍청하고 말도 안 되는' 육아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현실일 뿐 그들에게 괴로운 감정을 남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에 비해 북유럽은 흔히들 '속내를 모르겠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설문 조사에서도 프랑스인들에 비해 소극적이고 중립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결국 부모 비관주의는 단순히 ‘정책의 부재’보다는, 부모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제도는 진화했지만, 마음속 균형을 찾는 일은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평을 멈추지 않는 프랑스 부모들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솔직한 행복 추구자들 인지도 모른다.
아이 키우는 일은 힘들지만, 샴페인을 기울이며 불평할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나쁘지 않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