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인형 "두두"와 함께 독립으로의 첫 걸음을 내딛는 프랑스 아이들
나는 프랑스에서 두 아이를 낳아 키우는 학부모이자, 마테넬 학교의 첫 학년인 쁘티 섹시옹 (petit section)에서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마테넬 학교에는 쁘티, 모양, 그랑 세 학년이 있는데, 쁘티 학년 아이들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 하나 있다.
바로 이름도 귀여운 "두두"(doudou)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
이는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일상의 전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 유아교육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프랑스어로 "두"(doux)는 '부드럽다'는 뜻인데, "두두"는 부드러움에 부드러움이 한 번 더 붙은 셈이다.
어감마저도 폭신폭신한 이 단어는 아이들이 손에 꼭 쥐고 다니는 인형 또는 천을 뜻한다.
우리말로 하면 '애착인형'쯤 되는데, 프랑스에서 두두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다.
우선 프랑스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가족과 지인들은 앞다투어 두두 후보들을 선물한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두두 에 콤파니’라는 브랜드가 있다.
토끼, 곰, 여우 같은 동물 머리에 폭신한 작은 천을 달아놓은 시그니처 디자인이 유명하다.
여러 후보들을 만져보고, 입에 넣어 보고, 같이 자고, 던져도 보다가 드디어 아이가 한 두두에 정착하게 되면, 간택당한 두두는 그 순간 가족 일원급으로 격상된다.
이제 이 두두는 아이를 따라 어디든 함께 한다.
아이가 낯선 공간에 들어갔을 때, 혹여나 엄마가 잠깐 사라져도, 몸과 마음으로 꼭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작은 버팀목이 되어준다.
과학도 두두의 힘을 인정한다.
대표적으로 위니콧 박사의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의 개념이 있는데, 아이가 양육자의 부재를 감당하도록 돕는 첫 자기 조절 도구를 뜻한다.
이후에 여러 연구에서 애착 인형을 가진 아이는 낯선 상황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가 더 낮게 나타나며, 심박수 안정성(heart-rate variability)이 높아 감정 조절력이 우수하다고 밝혀졌다.
특히 아이의 잠자리에서 두두의 위력은 빛을 발한다.
국제수면재단(ISF)은 애착 물건을 가진 아이는 수면 적응도가 더 쉽게 발달하고, 새 환경에서도 잠자리 전 의식(ritual)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프랑스의 크레쉬(어린이집)와 마테넬 첫 해 동안 두두는 필수 준비물로 통한다.
아이들을 크레쉬에 보내던 시절, 아침마다 아이의 가방 안에 학교 끝나고 먹을 간식, 유사시 필요한 여유분의 옷, 그리고 두두를 챙겨넣었다.
정신 없는 아침, 아차하고 두두를 깜빡한 날이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점심시간 전까지 두두를 가져다 주시겠어요?"
점심 먹고 바로 이어지는 낮잠 시간에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두두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생님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는 아이들이 두두를 가져왔는지 챙기는 게 일과 중 하나이다.
집에서 학교로, 활동시간에서 낮잠으로, 다시 학교에서 집으로 - 일상이 전환되는 순간마다 두두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자기 진정을 돕는다.
특히 학기 초, 아침마다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이 작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 사이에서 두두를 꺼내 안겨주면, 아이는 마치 숨 쉴 틈을 찾은 듯 얼굴을 파묻고 서서히 진정된다.
이 얼마나 기특하고 신비로운 순간인지.
자칫 두두에 너무 의존하거나 버릇될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 부모들에게 애착은 독립의 시작이다.
아이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주면,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가는 발걸음이 훨씬 단단해진다는 논리이다.
아이들이 커서 두두를 내려놓는 시기도 대개 자연스럽다.
두두를 깜빡하고 학교에 도착해도 당황하지 않고, 집에 와서도 가방 안에 두두를 넣어둔 채로 다음 날까지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두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
바로 ‘성장’의 순간이다.
부모의 노력이라기보다, 아이의 선택으로 찾아오는 성장이다.
그 순간 부모는 조금 아쉽고 조금 뿌듯한 마음으로, 아이가 자기만의 날개를 펴는 소리를 조용히 듣게 된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아홉살이 된 첫째는 지금도 여행을 갈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게 털이 다 빠진 엘모 인형이다.
엘모는 낯선 여행지에서 그녀가 편히 잠들 수 있게 도와준다.)
프랑스 아이의 손에 들린 두두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연결해주는 첫 번째 다리이다.
아이의 성장에는 늘 두려움이 함께하고, 두두는 그 두려움을 잠시 품어준다.
오늘도 두두를 꼭 끌어안고 잠든 아이들 안에서 작은 용기들이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