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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음악교육이 시작되는 곳

파리의 공립음악원 콩서바토아(Conservatoire) 체험기 1탄

by 지은필

얼마 전 만 8세가 된 첫째는 파리의 공립음악원인 콩서바토아(conservatoire)에 다닌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우연한 기회에 신청을 하게 되었고, 까맣게 잊고 있던 차에 덜컥 추첨에 붙어 다니게 된 지 벌써 2년 차.

종종 프랑스인 부모들도 콩서바토아를 어떻게 들어갔는지, 지금까지의 경험은 어떤지 우리에게 묻곤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콩서바토아가 들어가기도, 계속 다니기도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파리의 음악 콩서바토아 신청에서 첫 해를 마무리하기까지의 경험을 나눠보고자 한다.


1. 예비신청부터 정식 등록까지


막연하게 아이들이 악기는 하나씩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피아노는 기본이라는 생각에 첫째가 여섯 살 일 때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았다.

피아노 선생님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누군가 일전에 얘기해 주었던 콩서바토아가 생각났다.

검색을 해보니 5월 마지막날부터 2주간 파리시 콩서바토아 웹사이트 (https://conservatoires.paris.fr/)에서 예비신청을 받고, 6월 중순에 있는 추첨에서 뽑히면 정식 등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파리 콩서바토아에는 음악, 연극, 무용 세 가지 과가 있는데, 음악은 CE1 (만 7세)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하니 타이밍도 딱 맞아떨어졌다.


5월 31일. 미리 맞추어 두었던 알람이 울렸다.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과연 그전에 없던 신청 링크가 생겼다.

가장 고민됐던 부분은 어떤 콩서바토아를 선택할 것인가였다.

파리의 20개 구 중에 총 17개 구에 콩서바토아가 있는데, 우리 집은 15구이지만 거리 상으로는 16구 콩서바토아가 더 가깝다.

또 콩서바토아마다 배울 수 있는 악기 종류도 조금씩 다른 듯했다.

고민 끝에 우리는 1지망으로 16구 콩서바토아의 피아노 코스를, 2지망으로 15구 콩서바토아의 '모든 악기' 코스를 선택했다. ('모든 악기' 코스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우리도 나중에야 알았다.)


6월 어느 날, 반가운 메일이 도착했다.

"Nous avons le plaisir de vous informer que la candidature de ELLE-JANE AHN a été retenue(...)"

제인이가 추첨에서 뽑혀 2지망이었던 15구 '모든 악기' 코스에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후, 첨부된 신청서를 작성해 콩서바토아에 직접 제출하라는 이메일이 왔다.

그리고 이때 첨부 파일들을 꼼꼼히 읽어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은, 콩서바토아가 단순히 악기만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매주 음악이론수업 한 시간과 합창수업 한 시간을 들어야 한다는 것.

이는 곧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야 하는 엄마의 일!

아직 정식으로 신청도 하기 전인데 벌써 피곤해져 오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생각보다 일이 커졌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6월 말에 인적사항과 참석 가능한 수업 시간을 적은 신청서를 콩서바토아에 제출했고,

7월 중순, 수요일 음악이론과 목요일 합창 수업에 배정되었다는 확인 이메일을 받았다.



2. 필수과목 - 음악이론과 합창 수업


파리 음악 콩서바토아에는 나이와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총 세 개의 사이클이 있다.

초급 (사이클 1): CE1(만 7세)부터 시작할 수 있고, 3-5년간 매주 악보를 읽기 위한 음악이론(1시간), 합창(1시간), 개별 악기(30분)의 세 가지 수업을 듣는다. 최근에는 보컬 코스가 생겨서, 악기 대신 보컬 테크닉 수업을 받을 수도 있다.

사이클 2: 10세부터 시작할 수 있고,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심화, 확장해 나가는 기간이다. 학생마다 개별화된 코스와 오케스트라, 합창, 악기/보컬 아뜰리에, 재즈 앙상블 등의 단체 활동을 병행한다. 매주 3-5시간 소요.

사이클 3: 14세부터 시작할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진로로 나누어지는데,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프랑스 정부에서 인증하는 "음악 학업 증명서" (Certificat d’Etudes Musicales) 취득을 준비하거나, 파리 콩서바토아의 음악 전공자 과정을 목표로 할 수 있다. 매주 4-6시간 소요.


제인이는 2023년 9월에 첫 번째 사이클을 시작하며 음악이론 수업에서 처음으로 악보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10-15분 복습이 숙제였는데, 음계, 조표, 음표, 그 외 온갖 악보 기호들을 익히는 걸 꽤나 어려워했다.

그나마 내가 기본적인 악보는 볼 줄 알아 도울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불어로는 나도 처음이니 같이 배우다 보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합창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수업이었다.

제인은 유머러스한 선생님을 만나 재미있어했고, 연말인 12월과 학년말인 6월에 콘서트를 두 번 하는 것 빼고는 별다른 과제가 없으니 부담이 적었다.



3. <악기 소개 아뜰리에>에서 악기 선택까지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대망의 악기 수업.

애초에 콩서바토아에 등록한 이유가 악기를 배우기 위함이었으니 기대가 컸는데, 이제나 저제나 해도 악기 수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12월 어느 날, <악기 소개 아뜰리에>를 진행한다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1월에 세 차례 프레젠테이션이 있는데, 첫 번째는 오르간과 만돌린, 두 번째는 금관악기, 콘트라베이스와 아코디언, 세 번째는 목관악기와 비올라를 소개한다는 것이다.

콩서바토아 첫 학년은 출석 필수이고, 학부모도 함께 참석하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이때서야 나는 제인이 등록된 '모든 악기' 코스의 뜻을 온전히 이해했다.

콩서바토아의 첫 번째 해는 다양한 악기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해 보고 배우고 싶은 악기를 선택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2024년 1월, 매주 한 번씩 악기 소개 아뜰리에에 아이와 함께 참석했다.

각 프레젠테이션은 악기마다 선생님들이 직접 연주를 보여주고, 악기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고,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순서로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20240110_164232.jpg 오르간
20240110_161332.jpg 만돌린
20240113_111225.jpg 트럼펫, 트롬본, 튜바
20240113_114009.jpg 아코디언
20240118_182633.jpg 바순, 오보에, 플루트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의 대부분이 (우리처럼)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악기들을 소개하는 아뜰리에를 열어 다양한 악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권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선생님들에게서 아이들을 유치(?)하려는 정성이 느껴졌다.

전문가의 악기 연주를 들으며 귀호강도 하고, 이름만 알았던 악기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배울 수 있으니 아뜰리에 때마다 내가 오히려 더 신이 났다.


세 차례의 <악기 소개 아뜰리에>가 마무리되고, 1월 말 또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희망하는 악기를 세 개 이상 선택해 제출하면, 각 악기를 2-3회씩 체험해 볼 수 있는 소그룹 아뜰리에 일정을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제인이는 고민 끝에 트럼펫, 플루트, 피아노, 기타를 선택했다.

그리고 3월부터 학년말인 6월까지 각 악기별로 30분짜리 수업에 2-3회 참석했다.

각 수업은 총 2-3명의 소그룹으로 진행되었고, 선생님이 악기의 구조와 원리를 설명해 주고, 아이들이 악기를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단다.

매번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의 얼굴이 밝아, 늘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제인은 과연 어떤 악기를 선택했을까?

다음 글에서는 그 답과 더불어 콩서바토아 두 번째 해 진행상황, 그리고 콩서바토아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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