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학부모들의 몸과 마음이 탈탈 털리는 6월 풍경
프랑스 학부모들의 정신과 체력이 탈탈 털리는 달, 6월이 무사히 지나갔다.
프랑스의 학사일정은 9월 새 학기부터 6주 수업, 2주 방학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4월 말에 부활절 방학이 끝나면 5월부터 7월 첫째 주까지 무려(?) 9주 연속으로 학교를 가야 한다.
그랑드 바캉스 (grande vacances), "대방학"을 향해가는 이 시기는 프랑스의 학부모들이 가장 바빠지는 때이기도 하다.
방학 전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는 5월에는 매주 공휴일이 있다.
올해 5월에는 5일의 휴일이 있었는데, 여기에 주말까지 더하면 딱 14일을 놀았다.
아이들이 한 달의 반을 학교를 안 가고, 봄날씨가 찾아와 야외활동은 많아지니 한 달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문제의 6월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전, 6월은 파리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러 즐기기에 바쁜 시기였다.
이제는 6월이 오면 신발끈 단단히 동여매고 장거리 경주에 나가는 듯한 비장함을 느낀다.
올해 6월, 나와 내 주변의 학부모들은 이렇게 한 달을 보냈다.
1. 새 학기 학교밖 활동 준비
아이들이 9월 새 학기부터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정하고, 시범수업도 데려가고, 미리 등록을 해야 한다.
이미 하고 있는 활동들을 계속하고 싶다면 5-6월에 우선권이 주어져 미리 등록을 할 수 있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면 6월에 시범수업을 들어볼 수 있는지 알아봐서 신청을 하고, 아이의 반응을 살피고,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방학 동안 천천히 생각해 보고 개학하면 등록하지 뭐, ' 했다가는 인기가 없거나 애매한 시간대의 활동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9월을 보내게 된다.
첫째는 기존에 다니던 음악원과 태권도를 계속할 예정.
테니스, 피아노도 하고 싶다는데 일단 엄마, 아빠가 가르쳐주겠다고 달래 놓았고, 갑자기 친한 친구를 따라 배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대기자 명단에 등록을 해두었다.
둘째는 원래 하던 축구에, 유도까지 하고 싶다고 한다.
평소 막춤을 즐겨 추는 흥이 많은 아이라 공립 음악원에 있는 무용반에도 신청을 했는데 대기자 1번을 받았다.
예체능 활동만큼은 아이들이 관심 있다고 하면 최대한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데, 그걸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아직 세 달이나 남은 9월부터의 일정을 짜며 엄마, 아빠들은 벌써부터 지친다.
2. 학년말 발표회 참석
아이들이 하는 활동 개수만큼 발표회 일정도 꽉 차있다.
6월 동안 첫째는 기타, 합창, 태권도 발표회가 있었고, 둘째는 축구 클럽 파티가 있었다.
주말마다 온 가족이 음악원으로, 상드니 대성당으로, 태권도장으로, 축구장으로 출동했다.
한 시간짜리 발표회라도 오고 가는 시간에, 앞뒤로 기다리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선생님께 감사인사 드리고 하다 보면 반나절이 걸린다.
아이가 셋인 친구네는 주말마다 엄마팀, 아빠팀 나누어서 움직였단다.
모두에게 평일보다 주말이 더 바쁜 한 달이었다.
3. 학교 연말 소풍, 축제 참석
학교에서도 학년말을 준비하며 일이 많다.
그중에서도 연말 소풍과 케르메스(kermesse: 학교 축제)는 아이들에게 일 년 학교 생활의 꽃이다.
아이들은 이 행사들에 어찌나 진심인지, 마치 이 두 날을 위해 열심히 일 년을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연말 소풍과 축제는 학부모들의 참여 없이는 진행이 될 수가 없다.
소풍에는 아이들을 챙길 인솔자가 필요하고, 학교 축제에는 뷔페 테이블과 각종 게임 진행을 도와줄 봉사자들이 필요하다.
나는 올해도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소풍에 따라갔고, 남편 등을 떠밀어 학교 축제에 깡통 볼링게임 도우미로 세웠다.
소풍에 따라가지 않고 축제에서 봉사를 하지 않더라도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소풍 도시락을 싸고, 축제에 가져갈 음식을 만들고, 몇 주 동안 소풍과 축제에 대한 기대의 말을 무한반복하는 아이들 장단도 맞춰줘야 하니 말이다.
4. 폭염주의보로 인한 가정보육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6월, 여기에 결정타가 더해지니 그건 바로 폭염이다.
해마다 최고 온도를 갱신하고 있는 유럽의 여름.
아이들 방학이 시작하기 전 꼭 폭염주간이 한 번씩 찾아온다.
이번해에는 첫째 학교의 축제날 낮기온이 39도라는 예보가 있어 사흘 전에 축제 날짜를 변경하는 유래없던 일도 있었다.
파리 전체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이 날, 가능하면 가정보육을 하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둘째 담임선생님께서 단체 게시판에 올린 사진에는 빈교실에서 41도까지 올라간 수은주가 있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집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반응.
제대로 된 에어컨이 있는 집이 드물다 보니 똑같이 한증막인 집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학교에서 하루 종일 물싸움 하고 노는 게 낫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나는 하나라도 머릿수를 덜어드리는 게 선생님을 돕는 일이란 생각에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있었다.
6월 마지막주 화요일, 아이들과 선풍기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까먹으며 나는 방학이 며칠 남았는지 손가락을 꼽아 세었다.
폭염이 계속되던 6월의 어느 날, 내년도 등록 관련해 질문이 있어 첫째가 다니는 음악원에 들렀다.
안내 데스크에 직원이 어찌나 불친절한지, 질문에 대한 답은 대충 얻었지만 맘이 영 개운치 않았다.
음악원 문을 나서는데 마침 아는 친구 엄마를 만났다.
방금 있었던 일을 풀어놓으니 그 친구가 말한다.
"6월이라 그래. 사람들이 다 화가 나있어."
그랑드 바캉스를 앞두고 지난 한 해를 정리해야 하는 분주함과 아쉬움이 뒤섞여 있는데, 숨 막히는 더위까지 더해지니 나도 모르게 날을 세우게 되던 6월.
그 어려웠던 한 달을 무사히 보낸 우리 가족과 주변의 학부모 동지들에게 크게 외쳐본다.
본 바캉스! 아 라 항트레! (Bonnes vacances ! À la rentrée !: 즐거운 방학 보내세요! 새 학기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