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슬기로운 까타블(cartable) 생활

프랑스 초등학생의 책가방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by 지은필

C'est la rentrée!

라 항트레, 말 그대로 "귀환"의 시기가 다시 찾아왔다.

두 달간의 대방학 (grandes vacances)이 끝나갈 무렵, 지난해 같은 반이었던 학부모들의 왓츠앱 채팅방에 불이 났다.

"내년 준비물 리스트 가지고 계신 분?"

"학교 앞에 갔는데 아직 아무것도 안 붙어 있어요. 내일 다시 가볼게요."

"이건 작년 우리 큰애가 CP 올라갈 때 준비물 리스트인데 거의 똑같을 거예요. 참고하시길!"


개학을 앞둔 프랑스 학부모에게 준비물 리스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야 하는 신성한 문서이다.

보통 학교 앞 게시판에 붙어 있거나 학부모 대표를 통해 전달되는데, 요구사항이 세밀하다.

아이들이 마테넬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감기철에 티슈 한 박스씩 가지고 오라는 게 전부였는데, 첫째의 CP 입학을 앞두고 준비물 리스트를 받았을 때 얼마나 버거웠던지!

사전과 이미지 검색을 넘나들며 리스트를 분석하고, 몇 날 며칠에 걸쳐 쇼핑을 했었다.


나도 어느덧 4년 차 초등학교 학부모.

준비물 리스트 정도는 당황하지 않고 하루 만에 해결 가능하다.

더군다나 올해 CP에 입학한 둘째의 준비물 리스트는 첫째 때보다 훨씬 간단해졌다.

(알고 보니 파리시에서 모든 CP 입학생들에게 학용품 세트를 무상제공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Screenshot_20250830_215925_WhatsApp.jpg CP(만 6세) 입학생의 준비물 리스트

[CP 준비물 리스트]

* 바퀴 없는 까타블 (아주 큰 공책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사이즈)

* "빈" 필통 2개

* 자녀의 이름이 적힌 지퍼백에 담은 학용품 예비분

- HB 연필 3개

- 대형 딱풀 3개

- 검정 혹은 파랑 화이트보드 마커 3개 (다른 색 안됨)

* 헝겊 1장

* 고무줄이 있는 파일폴더 (21x29.7) "파랑"

* 고무줄이 있는 파일폴더 (21x29.7) "그 외 색깔"


여러분의 자녀는 미술, 음악, 체육 수업을 받게 됩니다. 이 과목들의 수업계획과 담당 선생님 성함은 향후 공지하겠습니다.


*미술 수업을 위해, 비닐봉지 안에:

- 고체 물감 한 상자

- 붓 2개: 중간 사이즈 1개와 큰 사이즈 1개

- 플라스틱 컵 1개

- 헝겊 1장 (화이트보드용과 별개임)

- 방수 천 1장 (약 60 x 80)


*체육 수업에는 운동복 바지 한 벌과 운동화 한 켤레를 착용해야 함


평범한(?) 준비물 리스트에서 눈에 띄는 건 역시 까타블(cartable)이다.

까타블은 직사각형 모양의 각이 제대로 잡힌 책가방인데, 프랑스 초등학생의 상징이다.

10년 전, 첫째 임신 중에 프랑스인 친구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 친구 딸이 CP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 집 식탁 위에 놓여 있던 택도 떼지 않은 까타블을 보여주며 친구가 말했었다.

"프랑스에서 까타블은 큰 전통이고 big deal이야. 더 이상 베베가 아니란 뜻이거든."

그 말이 기억에 남아서, 우리 아이들의 첫 까타블 또한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골랐다.

아이마다 취향도 어찌나 다른지.

첫째는 아무 그림도 알록달록한 색도 없는 가방을 원해서 최대한 심심해 보이는 디자인으로 골라야 했다.

둘째는 최애 만화캐릭터가 화려하게 그려진 가방을 갖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막판에 사은품으로 달려오는 고릴라 키링에 넘어가 내가 처음부터 눈여겨봤던 가방으로 마음을 바꿨다. (야호!)

20250719_155929.jpg 둘째의 첫 까타블 사던 날. 아이는 순전히 가방에 달린 고릴라 모양 키링 때문에 이걸 선택했다.

아이가 처음으로 까타블을 매었을 때, 그걸 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맨몸으로 설렁설렁 다니던 마테넬 학교와는 다른, 크고 험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아이의 뒷모습.

아이의 몸뚱이 만한 까타블이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군장 같기도 하고, 앞으로 아이가 느낄 세상의 무게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학 전 날 밤, 첫째의 슬기로운 까타블 생활 특강이 열렸다.

"트루스(필통)는 여기(앞칸)에 넣고 까이에(공책)는 뒷칸에 넣어야 돼. 선생님이 얘기하면 바로 빼야 돼."

숙련된 조교의 현란한 시범에 둘째의 눈이 존경심으로 반짝거린다.

20250831_211623.jpg 슬기로운 까타블 생활 특강

올해 CM1이 된 첫째의 준비물 리스트는 훨씬 길고 복잡하다.

Screenshot_20250826_171146_WhatsApp (1).jpg 학교 앞 게시판에 붙은 CM1(만 9세) 준비물 리스트

펜도 파랑, 검정, 초록, 빨강 네 가지 색으로 각각 준비해야 하고, 삼각자, 컴퍼스, 계산기까지 준비물의 수준도 높아졌다.

작년에 쓰던 것 중에 상태가 좋은 것은 남기고, 새로 사야 하는 것들은 보통 모노프리(Monoprix) 슈퍼에서 구입했다.

개학 전날인 일요일 저녁, 소화시킬 겸 산책 중에 들린 모노프리는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중고등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공책을 쓸어 담고 있고, 그보다 어린아이들을 가진 엄마, 아빠들은 학용품 담으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잡으랴 고생 중이었다.


드디어 학교 첫날이자 9월의 첫날.

여름 내내 조용하던 학교 앞 골목이 활기가 넘친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피곤해 보이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고 서로 인사하느라 바쁜 부모들, 그 틈을 뚫고 아이들을 겨우 학교로 들여보냈다.

휴, 이제 다시 시작이다.

까타블을 짊어지고 씩씩하게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응원하며, 나도 내 몫을 하러 제자리를 찾아간다.

20250901_082944.jpg 개학 첫날, 인산인해를 이룬 학교 앞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떴다, 6월 주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