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빠리지엔의 샌드위치, 잠봉뵈르 이야기

프랑스에서 팔리는 샌드위치의 절반은 잠봉뵈르!

by 지은필

얼마 전 남편과 요즘 핫하다는 샌드위치집에 다녀왔다.

<Jean Bonbeurre>

장 봉버흐? 가게 이름을 듣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빠리지엔의 샌드위치인 잠봉뵈르(Jambon-beurre)의 첫음절을 프랑스의 흔한 이름인 장(Jean)으로 바꾸어 사람 이름처럼 말장난을 친 것이다.

20250902_123726.jpg Jean Bonbeurre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 이 작은 가게에서는 모든 불필요한 재료를 덜어낸 궁극의 샌드위치를 만들어낸다.

딱 봐도 바삭해 보이는 바게뜨가 반이 갈린 채로 쌓여 있고, 그 아래로 가염과 무염 버터 동산이 하나씩 있고, 여덟 종류의 햄과 여섯 종류의 치즈, 그리고 코니숑(cornichon, 미니오이 피클) 한 통 - 모든 샌드위치들은 이 재료들 안에서 만들어진다.

20250902_123505.jpg Jean Bonbeurre: 바게뜨
20250902_123508.jpg Jean Bonbeurre: 샤커트리와 치즈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는 당연히 잠봉뵈르 샌드위치.

(한국에서 보통 잠봉뵈르라고 표기하나, 버터를 뜻하는 beurre의 발음은 '뵈르'보다는 '브어흐'에 가깝다.)

잠봉뵈르에는 딱 네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바게뜨, 잠봉 블랑 (jambon blanc), 버터코니숑이다.

바게뜨는 당연 트라디시옹이다. (바게트 트라디시옹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전 글을 읽어보시길!)

잠봉 블랑은 잠봉 드 빠히 (jambon de paris)라고도 불리는데, 이름대로 19세기 파리의 정육점에서 지금과 같이 잠봉을 만드는 방법이 자리 잡았다.

돼지 뒷다리를 염지액에 열흘 동안 담가두었다가 각종 향신료를 넣은 물에 끓여서 만드는 잠봉 블랑은 촉촉하면서도 다른 햄들에 비해 덜 짠 것이 특징이다.

버터는 가염버터가 어울린다.

치즈를 대신해 간과 크리미함을 더해주면서 햄의 맛을 해치지 않는다.

(프랑스 버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 많으니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다.)

코니숑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통파도 있지만, 그래도 새콤하게 톡 쏘는 코니숑 몇 조각은 자칫 올라올 수 있는 느끼함을 사전에 차단한다.

20250902_125205.jpg 오른쪽 위가 잠봉을 곱빼기로 추가한 잠봉뵈르 샌드위치

프랑스 어느 빵집을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잠봉뵈르 샌드위치의 기원은 정확지 않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의 레알 (Les Halles) 시장에서 현재와 같은 잠봉뵈르 샌드위치가 유행을 탔다.

만들기 쉽고, 저렴하고, 생야채가 무르거나 내용물이 기어 나와 지저분해지는 일이 없으니 빠리의 노동자들이 하루를 버티는 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21세기에 이르러 잠봉뵈르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햄버거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잠봉뵈르의 바게뜨가 덜 바삭해지고 잠봉의 양이 박해지는 사이,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프랑스인들의 점심시간을 점령했다.

1979년에 맥도날드가 프랑스에 1호점을 낸 이후 40년 만에, 프랑스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맥도날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패스트푸드뿐만 아니라 한 때 콧대 높기로 유명했던 프랑스의 식당들도 외래종인 버거를 무시할 수가 없게 됐다.

프랑스 식당의 80%가 버거를 판매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런 흐름에 자극을 받아서일까.

최근에는 다시 전통과 정통으로 돌아가 잠봉뵈르 샌드위치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앞서 말한 Jean Bonbeurre는 파리에만 네 곳 지점을 가지고 있고, 팬층이 두텁다.

파리의 전설적인 호텔, 리츠 파리 1층에 위치한 디저트샵인 르 콤토아 (Le Comptoir)에서는 가장 비싸다는 잠봉뵈르를 맛볼 수 있다.

20241217_125039.jpg 리츠 파리 르 콤토아 샌드위치

2024년 세계 최고 파티서리로 선정된 이곳은 프랑스 전통 디저트와 비에노아서리(viennoiserie: 크로와상, 빵오쇼콜라처럼 버터향과 바삭한 식감이 특징인 빵 종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샌드위치를 판다니?

포장도 고급스러운 이 샌드위치는 무려 15유로.

파리의 일반 빵집에서 잠봉뵈르가 5유로 미만인 걸 생각하면 상당한 가격이다.

PXL_20241217_115220976.MP.jpg 리츠 파리 잠봉 콩테 샌드위치

엄연히 말하면 빵도 바게뜨가 아닌 바삭한 패스츄리이고, 콩테 치즈까지 추가되었으니 정통 잠봉뵈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좋은 재료로 기본에 충실한 샌드위치를 만들려는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프랑스 전체에서 판매되는 샌드위치의 절반이 잠봉뵈르라고 하니, 제대로 된 잠봉뵈르를 만드는 일은 프랑스 샌드위치의 명맥을 잇는 과업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Jean Bonbeurre를 다녀온 후 잠봉뵈르에 꽂힌 나 때문에 몇 주 째 우리 가족 주말 점심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샌드위치 한상이다.

20250921_104857.jpg


20250906_181638.jpg


재료들을 준비해 놓고 각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데, 몇 가지 철칙이 있다.


첫째, 바게뜨는 아침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빵집에서 사 온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잠봉은 부쉐리(boucherie, 정육점)에서 직접 슬라이스 해주는 것으로 사는데, 반드시 아주 얇게 썰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매우 중요! 슈퍼에서 산 잠봉은 두꺼워서 빵 안에 착 감겨 들어가지 않고 겉돈다.)

셋째, 버터는 미리 실온에 내놓아서 부드럽게 발려야 한다.

넷째, 코니숑은 역시 Maille 제품이 제일 낫다.


이 정도만 지키면 어떤 화려한 샌드위치 부럽지 않은, 적당히 짭짤하고 고소하며 바삭하고 쫄깃한 잠봉뵈르를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잠봉을 듬뿍 넣어 입안 가득 베어 물 수 있으니, 밖에서 파는 잠봉뵈르는 야박해 보이기 시작한다.

아, 대신 바삭한 바게트에 입천장이 다 까질 수 있으니 바게뜨의 평평한 밑면을 위로해서 입에 넣는 게 팁이다.


<빠리냠냠 레시피> 집에서 푸짐하게 만들어 먹는 잠봉뵈르 샌드위치


재료: 바게뜨, 잠봉 블랑, (가염) 버터, 코니숑

20250913_123550.jpg 홈메이드 잠봉뵈르 재료들

1. 원하는 종류의 바게뜨에 길게 칼집을 내어 펼친 후 양면에 가염버터를 넉넉히 바른다.

2. 얇은 잠봉을 넉넉히 넣는다.

3. 코니숑은 길게 반으로 갈라 듬성듬성 넣어준다.

4. 빵을 닫고 야무지게 쥐고 먹는다.

20250913_124153.jpg 꼬물꼬물 한 손으로 잠봉뵈르 만드는 중
20250913_125314.jpg 통곡물 바게뜨로 만든 잠봉뵈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90년 전통의 프랑스 빵집에서 배우는 단순함의 위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