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은 멀고 시간은 많다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은 유투브 활성화를 통해 가장 public화된 직업 중 하나다. 물론 나는 00년대 10년대 초반 애널리스트 선배님들 당시의 분위기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많은 것이 바뀐 것은 틀림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고 매크로 흐름에 관심을 갖고 유투브 댓글에 칭찬과 비난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 이 직업은 어떤 직업인가 고민하게 만든다.
여의도에 들어올 때만 해도 매크로 즉 탑다운 관점에서의 투자 혹은 경제 상황이 주식시장에 주는 영향은 적었다. 그 뜻은 사람들도 큰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20년 3월 코로나 위기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니 22년 3월 연준의 첫 금리 인상이 가장 큰 변곡점일 수도 있겠다. 때 마침 22년은 주가지수가 1월 이후 내리 우하향했던 해이기도 했다.
연준이란 곳에 모든 관심이 쏠렸고 자연스레 통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연준은 왜 기준금리를 밴드로 제시할까? 연준의 자산 매입분은 통화량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이것이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다 역레포에 관한 보고서로 유튜브도 초청받게 되었고 세미나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신기했다. 매크로 애널리스트는 상대적으로 세미나 갯수도 적고 시장의 관심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밌어서 쓰기 시작했지만 고통스러웠던 보고서였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이정도로 관심을 끌줄은 몰랐다.
대략 1년 지난 시점까지도 해당 보고서를 뽑아와서 질문하는 분들도 계신다. 잘했다는 뿌듯함 보다는 재밌었고 즐기면서 주제를 찾았던 보고서였고 다른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도 크게 다루지도 않았던 주제라서 더욱 의미가 컸다.
세미나에서 너무 자신감이 넘쳐도 너무 자신감이 없어도 안된다. 가르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나 내가 다 하는 말이 맞다는 느낌을 줘서는 안된다. 신경 쓰지만 상대방은 다르게 느낄 수 있어 늘 조심스럽고 무섭다. 너무 주눅들어서도 안된다. 경력이 길거나 매크로 관련 커리어가 깊은 분들을 뵈러가기 전에는 괜시리 역사책을 보듯 매크로 지표나 가격 지표의 긴 시계를 한 번 더 살펴본다. 피부로 느낀 사람과 데이터로만 본 사람의 인식과 기억과 그 깊이는 차원이 다름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 여의도에 들어온지 만 4년이 채 되지 않는다. 어느정도 지났다면 지났지만 여전히 선배 애널리스트들을 보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조언 하나하나 감사하고 쓴소리든 칭찬이든 곱씹어보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여전히 즐기고 있고 재밌다. 그거면 됐다 싶다가도 욕심이 나기도 한다.
Variance를 없애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롱런할 수 있고 그래야 즐길 수 있다. 웃으면서 그렇게 말한다. 저는 30년 더 일하고 싶다고. 10년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즐기면서 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