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coin is commodity money
2011년 비트코인을 만들었던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라지면서, 비트코인의 개념과 이해는 철저하게 사토시 이후 등장한 자들에 따라 정해졌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난잡한 기술용어들과 새로운 개념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동시에, 암호화폐 시장에 거품이 끼면서 말 그대로 지난 7년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기술 트렌드를 따라잡기 바빴고, 비트코인은 구시대 기술, 이더리움과 같은 다양한 기능을 포함한 새로운 블록체인은 신세대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마이스페이스가 망하고 페이스북이 생겨났던 것처럼, 비트코인 역시 기술의 빠른 성장 속에 대체되거나 공존한다는 논리가 팽배했고, 여전히 그렇다.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을 공부하거나 산업에서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기술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탈중앙성이니 분산화니, 토큰이코노미니 철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그래서 과연 이 기술이 어떻게 적용되고 사용될 수 있는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답을 하진 못할 것이다.
결국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우버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결국엔 킬러앱이 나오겠지"라는 미래세대에 맡기는 비논리적 사고방식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비트코인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적용 (adoption)되는지 개인적으로 바라보는 옳은 방향성이 무엇인지 얘기해보고자 한다.
비트코인은 직관적으로 복합적인 암호기술의 산물이나 IT기술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더 집중해야 하는 영역은 '경제시스템'이다. 비트코인은 알고리즘으로 설정된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설계되었고, 공개키 암호화나 작업증명과 같은 개발적 요소들은 오직 이 불변의 경제구조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즉 경제시스템이 구동되지 않으면, 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
비트코인의 경제시스템은 아주 간단하다.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채굴자들이 돈을 벌지 못하면 네트워크가 유지되지 않는다. 즉 채굴자들이 버는 소득 (블록보상, 트랜잭션 수수료)이 채굴을 하기 위한 비용 (전기세, 대역폭, 스토리지, 하드웨어 등) 보다 커야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구동될 수 있다.
비트코인의 경제시스템은 '사용'되지 않으면 죽게 설계되어있다. 비트코인은 매 4년마다 블록보상이 반으로 줄도록 되어있고, 이를 반감기 (halving)라 칭한다. 발행되는 통화가 4년을 주기로 줄어들게 되니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채굴자들의 소득 (시뇨리지) 역시 감소한다. 물론 네트워크와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으로 대역폭이나 스토리지 비용은 줄어들겠지만, 여전히 채굴자들은 상당한 비용을 들여야하기 때문에 줄어든 블록보상은 트랜잭션 수수료로 대체되어야 한다. 즉 on-chain에서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으면 비트코인의 결말은 죽음이다.
20년 후 비트코인은 굉장히 큰 거래가 일어나거나, 아예 거래가 일어나지 않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 사토시 나카모토, 2010년 2월 14일
지난 두번의 반감기를 거치면서 가격이 상승하는 걸 지켜본 투자자들은, 반감기로 줄어든 시뇨리지 비용을 대체하기 위해 가격이 자연스럽게 두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노동가치설 (labor theory of value)이나 생산비용 (production cost)의 가치이론 같은 경제학적 오류에 근거한 주장이다. 시장에서 판단할 때 사용가치가 없는대도 생산에 비용을 지불했으니 적당한 가치를 가져야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내가 케이크를 팔기 위해 100만 원의 생산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시장에서 사주지 않으면 그 케이크는 100만 원의 가치를 할 수 없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로 사용가치 (트랜잭션)를 제공함으로써 생산비용을 상쇄시켜야 한다. 시뇨리지(Seigniorage)는 처음 네트워크를 구동시키고 화폐의 지니계수 (Gini Coefficient)를 낮추기 위한 일종의 트릭일 뿐, 네트워크 유지와 수익창출에 드는 비용을 결국에는 트랜잭션 수수료로 100% 대체해야 한다. 지금 수준의 비트코인 보안을 유지하려면 결국 수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사용하는 범국가적인 화폐의 스케일을 달성해야 한다.
간단한 산수만 해봐도 비트코인 경제구조가 돌아가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스케일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현재 트랜잭션 당 수수료가 300 사토시라고 감안했을 때, 지금의 블록 당 리워드인 12.5 비트코인을 완전히 대체하려면 블록 당 (10분당) 50만 개의 트랜잭션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초당 약 800건, 하루 약 3백만 건 이상을 처리해야 한다. 즉 비자/마스터카드 이상의 사용이 매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주로 두가지 주장을 펼친다.
1. 트랜잭션 수수료가 많이 올라 적은 트랜잭션으로도 블록보상을 대체할 것이다.
2. 비트코인의 사용가치는 공급량의 제한에 의한 가치보존 (Store of value)의 역할과 정부의 검열이 불가능한 탈중앙성에 있고 이러한 가치때문에 비트코인 가격은 꾸준히 올라 반감기가 와도 블록보상은 충분할 것이다.
첫 번째 주장의 문제는 대체재(Alternative goods)다. 트랜잭션 수수료가 오르면 암호화폐의 중요한 요소인 마이크로 페이먼트 (micropayment)가 불가능해지고, 더 큰 금액을 보낼 때도 기존의 금융시스템이 더 효율적 이게 된다. 즉 시장은 비트코인보다 경제적으로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선택할 것이다.
두 번째 주장의 문제는 그 유명한 디지털 골드 (digital gold) 논리다. 반박할 여지도 없는 경제학적 오류 투성이다. 비트코인의 경제는 '가치(Value) = 사용성(Utility) x 희소성(Scarcity)' 공식에 기반한다. 희소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사용성이 없는 시스템에 가치가 생길 순 없다. 또한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탈중앙화 자체는 어떠한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다. 디지털 골드로는 결코 네트워크를 유지시킬 수 없다.
지금까진 투기자본의 유입으로 '더 큰 바보 이론' (Greater fool theory)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지탱해왔지만, 결국 시장은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영원한 버블은 존재할 수 없고, 암호화폐는 글로벌 규모로 성장하거나 죽거나의 두 가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주변에 비트코인과 다른 경제 메트릭을 설정했다거나, 다른 컨센서스 알고리즘을 쓴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지속 가능한 암호화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어떠한 설정을 했고 무슨 기술을 썼든 간에, 경제는 경제고, 가치를 판단하는 시장을 결코 회피할 수 없다.
범국가적 적용이 이루어지지 않아 암호화폐 산업이 죽을 운명이라면, 당연히 답은 "다 잊고 짐 싸자"가 아니라 어떻게 유지와 적용이 이루어지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미래에 킬러앱이 생기겠지"라거나, "UI/UX에서 혁신을 이루면 된다"라거나 "사람들이 탈중앙화의 철학을 깨달으면 된다" 같은 맘 편한 생각이라면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산업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은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을 듯하다.
1) 비트코인 경제시스템의 유지 :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경제시스템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 즉 위에서 언급한 블록보상의 반감기를 상쇄시킬 만큼의 트랜잭션이 일어나고, 그 수수료로 네트워크가 안전하게 유지되는 선순환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2) 비트코인의 적용 (natural adoption) : 1번에서 말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선순환이 일어나려면, 범국가적 수준의 적용이 일어나야 하는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자연스러운 산업 적용 (natural adoption)은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그저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대해 자연스럽게 쓰거나,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적용하면 되는 걸까?
3) 가격 변동성/화폐로서의 역할 : 2번에서 말한 형태의 적용이 이루어지려면, 가격 변동성이 애초에 적어서 단위 체적 (unit of account)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전한 가치 보존 (stable store of value)의 역할 정도는 해야 하는데 이러한 닭과 달걀의 문제는 어떻게 해소될 것인가.
위 세 가지 질문은 지난 6년 동안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하면서 내가 해소하지 못한 의문들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본질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소하지 않고, 그동안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로 찾으려고 했었지만 역시 답을 찾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사토시 나카모토의 글을 읽어보고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면서 비트코인이 상품화폐 (Commodity money)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최근 비트코인의 원래 모습 (Bitcoin version 0.1)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겨난 포크인 Bitcoin SV (Satoshi Vision)의 방향성을 보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먼저 상품화폐에 대해 알아보자.
화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화폐는 법정화폐 (legal tender) 또는 명목화폐 (fiat currency)라고 부른다. 이러한 법정/명목 화폐는 국가가 법으로 지정한 화폐고 발행의 주체와 권한은 중앙은행이 갖는다. 시중은행이 발행한 화폐는 신용화폐라고 부르고, 우리가 전자적으로 접하는 화폐의 모습은 대부분 신용화폐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거의 모든 국가는 금본위제를 버렸고, 50년의 신용경제 역사가 지속되고 있다.
상품화폐 (Commodity money)는 금이나 은과 같은 원자재 기반의 화폐를 의미한다. 상품화폐와 명목화폐의 차이점은 내재가치 (intrinsic value)가 있느냐의 여부다. 명목화폐는 실질적으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고 국가의 법적권위와 경제기반으로 가치를 생성하기 때문에 내재가치가 태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품화폐는 화폐로서의 가치 이외에, 그 상품 또는 원자재가 어떠한 태생적 가치를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한 내재적 가치때문에 자연스럽게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금의 경우 수천 년 전부터 전 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어떠한 가치 (visceral quality)가 있다고 판단을 했고 긴 역사 속에서 학습되어 그 가치는 보존됐다. 다양한 이론들이 있지만 시각적으로 반짝거리지만 부식되거나 변질되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서 발견되며 쉽게 채취가 가능하지만 희소하다는 사실이 내재가치를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설령 투기자본이 몰려 금 가격에 거품이 끼거나 저평가를 받아도, 시장 가격과 별개로 금 자체만의 용도 (보석/장신구, 산업광물)가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시장은 본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비트코인은 상품화폐다. 그 말은 화폐로서의 역할 이외에 상품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코인' 자체만의 가치 이외 네트워크의 내재적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나도록 이러한 내재적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는 철저하게 사토시의 디자인을 망쳐버린 우리의 책임에 있다.
비트코인의 내재가치는 불변의 글로벌 분산 데이터베이스 (Globally distributed immutable database )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사실이지만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라. 정보가 저장되려면 저장 공간이 있어야 하고, 저장공간이 없는 데이터베이스는 어떠한 사용가치도 없다. 사토시의 비전과 멀어진 지금 형태의 비트코인 (BTC)는 트랜잭션 (OP_RETURN) 당 80byte 밖에 처리하지 못하는 최악의 데이터베이스다.
비트코인의 결제/송금 이외 비트코인의 원장을 탈중앙 데이터베이스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이더리움을 포함한 현존하는 모든 블록체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다. 데이터 저장의 확장성 (scalability)이 없기 때문에 블록체인의 내재가치를 이용할만한 적용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난 10년 동안 산업에는 "블록체인에 데이터를 넣는 건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사람들은 정작 데이터 대신 그 데이터의 해시값을 블록체인에 넣고,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느니, 데이터의 정합성 (integrity)를 증명할 수 있다는 등의 논리로 서비스를 만들었다.
법률계약서나 진본 증명서처럼 위변조가 되선 안되는 데이터를 해시화 (hashing)해서, 그 해시값을 블록체인에 넣는 서비스들이 2014년 정도부터 꾸준히 생겨났고 대부분 망했다. 이러한 스타트업들이 간과한 사실은 블록체인은 결코 데이터를 '진실' (truth)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데이터가 위변조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비가역적으로 기록할 뿐이다. 예를들어 1+1=3이라는 잘못된 명제를 블록체인에 넣으면 1+1=3이라고 영원히 기록된다. 즉 기록을 하는 주체가 권위성 (authority)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그 해시화의 특성상 단방향 암호화기 때문에 해시값만으로 원래 데이터를 볼 수 없으니, 원본 데이터는 어느 주체의 서버에 기록되어야 한다. 해시화를 통해 '결과'에 대한 진본성을 보존할 수 있어도, 그 결과 자체에 대한 증명은 중앙주체가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서비스의 실제 '사용'에 있어서 중앙 주체가 필수적이다.
즉 기록을 하는 주체가 권위를 필요로 하고, 기록 자체도 중앙 서버에 하게 되면 더 이상 블록체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사실상 지금까지 대부분의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인증, 공증, 계약, 메세징 서비스들을 이런 방식으로 구현했고 당연히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가정해보자, 만약 트랜잭션에 넣을 수 있는 데이터의 양에 대한 제한이 없다면 어떨까? 의미없이 해시값을 넣기보다, 본래 데이터 전체를 넣을 수 있다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진다. 전자계약서의 경우 기밀성이 필수기 때문에 암호화한 상태로 전체 데이터를 트랜잭션에 입력하고, 복호화할 수 있는 키를 접근이 필요한 사람이 가지게 된다면, 계약 당사자들은 온라인 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신뢰할 필요 없이 비트코인 네트워크 기반의 탈중앙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정보를 직접 꺼내볼 수 있게 된다.
독립된 데이터베이스나 AWS (아마존 웹서비스)와 같은 소유 기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느 누구도 신뢰할 필요 없고 비가역적인 탈중앙 데이터베이스가 생긴 것이다. 트랜잭션을 통한 한 번의 데이터 기록으로 어떠한 보안도 책임질 필요 없이 영원이 조회할 수 있는 영속적인 데이터베이스 말이다. 사진, 영상, 게임,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들이 블록체인에 직접 기록될 수 있다. 모든 적용사례들이 블록체인 기반이 될 순 없겠지만, 이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거다.
비트코인 SV진영은 이러한 형태의 비트코인 데이터베이스, 즉 결제/송금으로서의 코인 이외 내재적 가치를 상품원장이라고 부른다. 비트코인은 상품화폐이고, 그 상품화폐의 내재가치가 상품원장인거다. 이제 이 내용을 이해했다면 위에서 언급한 의문점 세 가지와 연결지어 생각해보자.
1) 비트코인 경제시스템의 유지
비트코인은 애초부터 결제/송금으로만 이루어진 트랜잭션의 수수료로 살아남을 수 없다. 블록사이즈의 제한을 없앤다고 한들 초당 800건이 이루어지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스케일의 어답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래 3번 문제인 가격 변동성/화폐로서의 기능을 못하면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 자체를 데이터베이스로 보게 되면 달라진다. 지금 현재 100mb 정도 사이즈의 데이터를 입력하는데 수수료 7만 원 정도가 든다. 어떤 적용사례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초기엔 사이즈는 크지 않으면서 보안과 비가역성이 중요한 데이터가 입력되기 시작할거다. 비트코인의 기본 경제원칙은 채굴자들 사이의 수수료 경쟁이기 때문에 비트코인 트랜잭션의 수요가 늘어날수록 수수료는 줄어든다. 모든 경제가 그렇듯, 가격경쟁 속에서 지출비용과 소득(트랜잭션 수수료) 사이의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이 생기고 가격은 네트워크가 확장할수록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줄어든다.
비트코인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큰 데이터를 입력하는데 저렴한 수수료가 든다는 의미이다. 애초부터 비트코인 SV진영은 사토시가 처음 설계했던 것처럼 스크립트 사이즈와 블록 사이즈의 제한을 없애고 채굴자들의 자본주의적 경제논리로 확장하는 것을 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 비트코인의 적용 (natural adoption)
비트코인 산업에서 자주 쓰는 말 중 "사용자가 블록체인을 쓰는지도 모르는 서비스"는 바로 이걸 두고 얘기하는 것이다. 비트코인 자체를 데이터베이스로 쓰는 기업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는, 이 기업이 블록체인을 쓰는지 중앙서버를 쓰는지 알 필요가 없다. 비트코인을 화폐로서 쓰지 않아도 서비스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다. 전자계약서의 경우, 계약 플랫폼을 믿지 않고 영원히 기록 (trace)이 남는 기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결국 상품원장으로서의 기능을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은 두 가지 옵션이 생긴다. (1) 내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AWS에 가입해 신용카드로 매월 비용을 지출하면서, 보안 개발자를 고용하고 데이터의 해킹이나 손실을 막기 위해 지속적인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2)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해 트랜잭션을 보냄으로서 비트코인을 데이터베이스로 사용할 것인가.
사용자는 알 필요 없지만, 기업들이 비트코인 상품원장의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구매할거다. 잘 생각해보면 비트코인의 내재가치를 통한 실질적인 수요가 생긴 것이다. 그동안 철저하게 투자시장에 의해 가치평가 되던 비트코인에서 실질 수요에 의한 내재가치 평가가 가능해진 것이다.
3) 가격 변동성/화폐로서의 역할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받아들여지려면 가격 변동성이 줄어야 하고, 가격 변동성이 줄어들려면 투자시장 기반의 가치평가에서 실질 사용수요 기반의 가치평가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완벽하진 않겠지만, 상품원장으로서의 수요가 증가하면 그 규모에 맞게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한다. 만약 많은 기업들이 각자가 고안해낸 적용사례를 구현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투기(speculation)나 투자(investment)가 아닌 상품원장으로서의 사용(usage)을 목적으로 구매하면 트랜잭션에 포함되는 데이터의 양과 채굴자들이 가져가는 수수료 등을 기반으로 어느정도 명확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절대 투기적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거나, 가격 변동성이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내재가치나 사용가치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 또는 투기 기반의 가치평가 모델을 가지고 있는 현재 비트코인 모습보다는 실질 사용수요 기반의 가치평가 모델을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이 훨씬 더 적은 변동성을 가질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현실적 가치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수요기반 모델이어야 국가와 기관의 투자가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실사용 수요에 의해 유동성이 증가하고 가격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비트코인은 충분히 교환수단 (medium of exchange)과 가치저장 수단 (store of value)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거래소가 가격 스프레드를 줄여주는 중개를 해줌으로서 교환수단이 되는게 아니고, 통화 발행량에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가치저장 수단이 되는게 아니라, 비트코인 자체가 가진 내재적 가치와 그에 따른 수요 때문에 교환수단과 가치저장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최종적으로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예측 가능한 수준이고, 보관하면서도 실생활에 피해가 없는 수준으로 자리 잡히면 그때부터 우리가 고대하는 킬러앱들이 탄생할 거다. 지금까지 시도되었다가 사라진 수 많은 스타트업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이유는 사용자들이 암호화폐를 화폐로서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아서다.
이번 글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내가 개인적으로 가진 의문을 모두 해소한 유일한 가능성이다. 투자가 아닌 기술 때문에 이 업계에 있다는 흔해빠진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앞으로 20년을 투자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이제야 알 것 같다. 결국 시간이 답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