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듦과 싱싱함 사이의 어딘가에

고흐, 해바라기와 불확정성

by Quantum 김남효

나는 지금, 파란 벽 앞에서

노란 해바라기를 그리는 중이다.

이 해바라기들. 정말 이상한 녀석들이다.


노란색 물감을 붓에 묻혀 캔버스에 툭툭 던지면, 녀석들은 그 순간의 노란색이 된다. 하지만 붓을 떼고 한 걸음 물러서면, 녀석들은 다시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수많은 가능성의 덩어리가 된다.


이것은 마치… 내가 녀석들을 '관찰'하는 순간에만, 녀석들이 특정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붓을 들고 노란색 꽃잎 하나를 그리려고 할 때, 나는 녀석의 위치와 색깔을 확정 지으려 한다. '이건 여기 있고, 이런 노란색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붓을 내려놓고 잠시 딴생각을 하거나, 다른 해바라기를 보려고 시선을 돌리면, 방금 그렸던 그 노란색 꽃잎은 다시 흔들리는 존재가 된다.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노란색이었는지, 그 '정확한' 상태는 다시 불확실성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내 눈으로 관찰하지 않는 한, 녀석들은 파동처럼 흔들리는 존재인 거다.


저기 저 시든 해바라기 머리를 봐. 축 늘어진 그 모습은 이미 죽음을 향해 이동중에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시든 해바라기를 그릴 때, 나는 녀석의 '시듦'이라는 상태를 붓의 움직임으로 확정시킨다. 나의 붓 진동이 녀석의 운명을 정하는 것 같다. 내가 녀석을 그리지 않았다면, 녀석은 시듦과 싱싱함 사이의 어딘가에, 모호한 상태로 계속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아를의 태양 아래, 이 해바라기들은 춤을 추고 있다. 태양이 주는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마치 수많은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반짝인다. 녀석들은 동시에 수많은 위치에 존재하고, 수많은 노란색을 띠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붓이 닿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흐, ‘해바라기’


나는 지금 붓을 쥐고, 이 흔들리는 존재들을 캔버스에 붙잡아두려 한다. 이 해바라기들의 '상태'를 확정 짓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이 그림이 완성되면, 녀석들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처음 정한 그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훗날 이 그림을 보는 누군가의 눈에 따라, 녀석들은 또 다른 의미와 색깔을 갖게 될 수도 있겠지.


정말이지, 그림을 그린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불확실한 아름다움을, 나의 붓으로 잠시나마 확정 짓는 행위. 그리고 그 확정된 아름다움은 다시 새로운 불확실성을 품게 된다.


나의 해바라기들.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가 흔들리는 존재이든, 확정된 존재이든 상관없이. 그저 이 붓을 멈추지 않고, 그 노란빛을 계속해서 캔버스에 담아낼 뿐이다.

내 그림에서 무엇을 느끼고 발견하든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무엇이 보이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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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작가 관점에서 그림 읽어 가기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주로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