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경로가 오직 하나뿐일까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양자중첩

by Quantum 김남효

어느덧 해가 져버린 밤, 창밖을 바라본다.

하늘은 온통 코발트블루 물감으로 칠해진 듯하고, 어둠이 짙게 깔린 마을은 고요하다. 창틀 걸이에 붓을 걸어두고, 잠시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저기, 저 별빛들을 보라. 작은 점으로 보이는 저 빛들은 사실 수많은 빛의 알갱이들, 즉 광자들의 흐름일 것이다. 한 알의 광자는 별을 떠나 내 눈에 닿기까지 어떤 경로로 여행했을까? 그 경로가 오직 하나뿐일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붓을 다시 쥐었다. 내가 그리는 한 획 한 획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는 행위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밤하늘의 모든 가능성을 그리는 것이다. 저 별빛 하나하나는 동시에 여러 개의 경로를 따라 나에게 오고 있었을 것이다.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은 그 모든 가능성이 겹쳐져 있는, 일종의 중첩 상태일지도 모른다.


저기 저 달은 또 어떤가.

밝게 빛나는 저 달도 사실은 수많은 '달의 가능성'들이 중첩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내가 붓으로 달을 그리는 순간, 그 모든 가능성들이 한순간에 캔버스라는 현실로 수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에 내 영혼을 불어넣는다.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붓 터치들은 내가 바라본 밤하늘의 모든 가능성을 담아낸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는 대지와 하늘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처럼 보인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현실 너머의 가능성을 가진 상태의 밤하늘을 그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 그림이 엉성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캔버스 속 밤하늘은 그 어떤 밤하늘보다도 진실에 가까운 풍경이라는 것을. 모든 가능성이 중첩된, 살아 숨 쉬는 밤하늘의 초상화라는 것을.


언젠가 내가 본 것을 세상에 증명하리라.

시선이 닿았던 모든 곳에 펼쳐졌던 중첩들을.


​ -빈센트 반 고흐, 작가 관점에서 그림 읽어 가기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주로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