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가 켜진 양자 도약(Quantum Leap)

좀 어설픈 나의 생각들 003

by Quantum 김남효

숲길은 늘 나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똑같은 길인데도 어제와 다른 햇살, 어제는 없던 잎, 어제보다 더 진하게 풍기는 흙냄새. 이 모든 게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은 숲이 나에게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숲에서 내가 갑자기 다른 상태로 툭 하고 넘어가는 듯한 느낀다. 숲길을 걷다가 문득, 아무 생각 없이 걷던 내가 갑자기 숲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마치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말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소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리고, 바람 소리는 숲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이런 순간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툭 하고 나타난다.


.메를로-퐁티가 그랬던가, 우리의 몸은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는 주체라고. 나는 숲을 '보는' 것을 넘어 나의 몸으로 숲을 '느낀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흙의 온도, 손끝으로 스치는 나뭇잎의 까슬함, 폐 속 가득 들어오는 숲의 냄새. 이 모든 감각이 나를 숲의 일부로 만든다.

어쩌면 나의 몸이 숲과 상호작용하면서 갑작스러운 '도약'을 경험하는 건 아닐까? 예를 들어, 걷다가 갑자기 햇살이 쨍하게 쏟아지는 지점에 다다르면, 나의 눈동자가 빛에 적응하며 '찰나의 도약'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기분도 갑자기 확 좋아지면서 숲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치 내 안의 어떤 스위치가 딸깍하고 켜지듯 말이다. 이전까지 멍하니 걷던 내가 갑자기 숲의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순간, 그게 바로 나의 어리숙한 양자 도약(Quantum Leap)인 셈이다.

또는 숲에서 예상치 못한 마주침을 할 때도 그렇다. 나뭇가지 사이로 고라니가 휙 지나가거나, 발밑에서 도마뱀이 쏜살같이 도망갈 때,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것을 느낀다. 이때 나의 몸은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도약한다. 단순히 숲을 걷던 내가 갑자기 숲의 생명과 직접 소통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숲길 한쪽에서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나의 몸이 숲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느껴보려 한다. 그러다 문득,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이는 듯한 기분, 혹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경험한다. 나의 몸이 숲의 미세한 에너지 변화를 포착하고, 그에 반응하여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새로운 상태로 '점프'하는 듯한 느낌.


숲은 나의 어리숙한 양자 도약을 위한 완벽한 실험실이다. 그리고 나의 몸은 그 도약의 매개체다. 다음에 숲길을 걸을 때, 나는 또 어떤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까?

숲의 품속에서 나의 다음 '어설픈 도약'을 기대해 본다.

김님효, ‘우주의 양자도약 888‘ , 숯과 미디엄,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