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 감정의 안개 속으로 양자 불확정성

좀 어설픈 나의 생각들 004

by Quantum 김남효

요즘 숲을 걷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숲은 언제나 나에게 평화로움을 주지만, 가끔은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하이젠베르크가 그랬다던가? 어떤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면 운동량은 알 수 없고, 운동량을 정확히 알면 위치는 알 수 없다고. 뭐, 그런 복잡한 양자역학 이야기 말고, 그냥 내 감정 상태가 딱 그렇다.


숲길을 걷다가 문득 기분이 좋아지면, 그 기분이 왜 좋은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좋다. 반대로 갑자기 우울해지거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마찬가지다. 내 감정의 '위치'를 알 것 같으면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고, '왜' 그런지 따지고 들려고 하면 그 감정 자체는 또 모호해지는 느낌이랄까. 마치 숲 안개가 걷혔다 스며들었다 하듯이, 내 감정도 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내버려 두면 또 불쑥 나타난다.


메를로-퐁티 말처럼, 내 몸은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는 통로다. 나는 숲을 걷지만, 숲도 나의 몸을 통해 나에게 다가온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흙의 촉감, 코끝을 스치는 풀내음,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따뜻함. 이 모든 감각이 나의 몸을 통해 들어와 내 감정을 형성한다.

어쩌면 내 감정의 불확실성은 나의 몸이 숲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숲길을 걷는 동안 나의 몸은 수많은 감각 정보를 받아들인다. 어떤 새소리는 나에게 평화로움을 주고, 어떤 바람 소리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안겨준다. 이 모든 미세한 감각들이 뒤섞여 내 감정이라는 복잡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은 내가 '관찰'하려고 하는 순간, 붓 터치가 흐트러지듯 모호해지는 게 아닐까?


나는 숲길 한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본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숲의 모든 소리와 냄새가 나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이때 나의 감정은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진다. 어떤 감정은 강렬하게 다가왔다가 이내 희미해지고, 어떤 감정은 아주 미세하게 존재하며 나의 기저에 깔려있다. 내가 이 감정들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할수록, 그것들은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잡히지 않는다.


숲은 나에게 감정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고. 때로는 그저 느끼고, 경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나의 몸이 숲과 교감하며 만들어내는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의 파동들을 그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숲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어리숙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다음 숲 산책에서는 또 어떤 감정의 안개가 나를 감쌀까?

나는 그 불확실한 감정의 여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김남효, ‘우주의 양자도약 03’ 숯, 복합 미디엄. 2024